|긴/급/진/단| 21세기 새찬송가의 우리말 연구_변이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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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진/단

21세기 새찬송가의 우리말 연구

변이주_알곡교회 목사

Ⅰ. 들어가는 말

십년의 각고 끝에 ‘21세기 새찬송가’가 발간됐다. 1983년 통일찬송가가 
발간된 지 23년만의 일이다. 그러나 새로운 찬송가에 대한 비판의 소리 역
시 만만치 않다. 통일찬송가에 비해 개선된 점은 무엇이며 아직도 개선해야 
될 부분은 어떤 것인지 살펴본다. 
여기서는 경어법에 관한 것과 어휘 및 성분에 관한 문제 등 크게 두 가지
로 나누어 살펴본다. 밑줄 친 부분이 통일찬송가 가사 혹은 잘못된 부분이
며, 빗금(/)의 앞부분이 장, 뒷부분은 절을 나타내는 숫자이다. 

Ⅱ. 개선된 부분

1. 경어법 관련
(1) 주여→ 주님(8, 46장 등), 예수여→ 예수님(60, 144, 262장 등)
국어 문법에서 호격조사로 ‘아/야, (이)여, (이)시여’ 등이 쓰인다. 이 중
에서 ‘(이)여, (이)시여’가 높임의 호격조사로 쓰이는데 성삼위 하나님과 
연관하여서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시여’
가 쓰여야 합당하다. 최상·
최대·최고의 경외의 대상이신 하나님께는 최고의 존칭어를 써야 하기 때문
이다. 
그런데 우리 성경이나 찬송가에서는 ‘(이)시여’형이 쓰인 예는 아주 드물
고, ‘(이)여’형이 보편적으로 쓰였다. 그러나 이는 개선해야 할 부분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통일찬송가에서 쓰인 ‘주여’를 ‘주님’으로, ‘예
수여’를 ‘예수님’으로 고친 것은 참으로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운율
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찬송가의 특성상 ‘주여, 예수여’의 대치어로 
‘주님, 예수님’은 제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많은 곳에서 ‘주여, 예수여’를 그대로 둔 것은 참으로 아쉽다
(56, 57, 137, 184, 190, 316, 367, 549장 등).
(2) 주옵시고→ 주시옵고, 하옵시고→ 하시옵고(296, 426, 479, 557장 등) 
대상을 특별히 높일 때는 주체높임선어말어미 ‘시’와 공손선어말어미 
‘옵’을 함께 쓴다. 이때 표기순서는 언제나 ‘-시옵-’이다.
그런데 우리 성경이나 찬송가에서는 보편적으로 이를 거꾸로 쓰고 있다. 
‘하시옵고’ 해야 할 것을 ‘하옵시고’로, ‘주시옵고’를 ‘주옵시고’
로 잘못 표기한 것이다. 

이참에, 비록 몇몇 구절이기는 하지만 의도적으로 이를 바로잡은 것은 의미
가 크다고 할 것이다. 

2. 어휘 및 성분 관련
(1) 합소서, 줍소서→ 하소서, 주소서(15장)
국어의 ‘상대높임법’의 체계는 네 단계로 나뉘는데 그중에서 아주높임을 
나타내는 것이 ‘합쇼체’이다. ‘합쇼’는 ‘합시오’의 준말로 현대어에서
는 ‘하십시오’가 쓰인다. 그러나 관례상 ‘합쇼’라고 한 것이다.
이참에 ‘합소서, 줍소서’ 등을 ‘하소서, 주소서’ 등으로 바로잡은 것은 
참으로 잘 한 일이다.
(2) 아무 일을 만나도→ 무슨 일을 만나도(81/3, 543/후렴 등) 
‘아무’나 ‘무슨’이나 관형사로서 꼭 무엇을 지정하지 아니하고 가리키
는 말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하지만, ‘무슨’은 특히 어려운 일이나 우려되
는 일 등이 예상될 때 주로 쓰인다.
그러므로 이 문장에서는 ‘아무 일을 만나도’보다는 ‘무슨 일을 만나도’
로 표현하는 것이 더 좋다.
(3) 피로서→ 피로써(259/1)
‘~(으)로서’는 ‘어떤 지위나 신분이나 자격을 가진 입장에서’란 뜻을 나
타내는 조사이고, ‘~(으)로써’는 ‘재료·수단·방법’을 나타내는 조사이
다. 우
리는 예수님의 보혈로써 죄 씻음 받았다. 그러므로 ‘피로써’라고 바
르게 고친 것은 잘한 일이다.
(4) 우리들의 싸울 것은→ 우리들이 싸울 것은(350/ 1, 2)
우리들의 싸움의 대상은 ‘혈기’도 아니고 ‘육체’도 아닌, 영적 존재인 
마귀임을 각성시키는 내용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 문장 자체가 세련되지
는 못했지만 아무튼 이 문장에서는 주격조사가 와야 할 자리에 관형격조사
를 써서 비문을 이루었는데 이참에 바로잡았다.

Ⅲ. 바로잡아야 할 부분

1. 경어법 관련
(1) 몸소(27/4), 친히(135/4, 228/1 등)
‘몸소’나 ‘친히’는 윗사람이 어떤 일을 직접 할 때 쓰는 표현이다. 본 
찬송들에서는 성도가 주님을 뵈올 때의 상황이므로 ‘몸소’나 ‘친히’로 
표현하면 무례가 된다. ‘직접’으로 표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2) 반말투(58, 63, 210, 251, 324, 374, 528장 등)
잠 잘 자게 했으니(58/1), 주가 세상을 다스리니(63/1), 주가 친히 세웠다
(210/1), 거저 주네(251/4), 예수 나를 오라 하네(324/1), 주가 붙드네
(374), 예수가 우리를, 우리를 기다리네(528/1) 등에서 밑줄 친 부분은 모
두 반말 투의 표현이다.

n운율에 맞추다 보니 부득이한 일일 수도 있겠으나 만왕의 왕이시며 구세주 
되신 주님과 직접 관련된 동작의 표현으로는 지나치게 무례하다. 마땅히 적
절한 표현으로 바꾸어야 할 것이다. 

2. 어휘 및 성분 관련
(1) 명령문(67/1,2, 91/2, 102/2, 115/1, 124/2, 359/1, 451/1 등)
국어 명령문에는 발화 장면 및 내용에 따라 직접 명령문과 간접 명령문 및 
허락 명령문으로 구분된다.
이 중 직접 명령문은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얼굴을 맞대고 하는 것으로서, 
대표적인 형태는 ‘-어라’로 상대 높임의 등분을 가진다. 또한 듣는 이가 
분명하며 시킴이나 지시성이 강하고(해라체의 특징) 권고, 제의, 탄원의 뜻
이 강하다(하게체 이상의 특징).
반면 간접 명령문은 매체를 통한 명령문으로 특정한 독자나 듣는 이를 고려
하지 않으며 주로 문장체에서 쓰이고, 어미 ‘-(으)라’가 대표적이다. 
이와 같은 특징을 감안할 때 찬송가의 표현은 직접 명령문으로 하는 것이 좋
다.
그런데 찬양하라(61/1), 방패 삼으라(91/2), 성전 삼으라(102/2), 만백성 맞
으라(115/1), 그 소식을 전하라(124/2), 두려워 말라(359/1), 길이 참으라
(451/1) 
등은 간접 명령문으로서 찬송가의 의도와는 맞지 않는 표현이다.
당연히 ‘해라체’로 바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찬양하자’와 같이 청
유형으로 바꾸는 것도 괜찮으리라고 본다. 
통일찬송가에는 ‘삼아라, 맞아라, 말아라, 참아라’ 등 직접 명령문으로 
된 것을 ‘21세기 새찬송가’에서 간접 명령문으로 고쳤다. 이는 잘한 일이 
아니다.
(2) 격조사(86/1, 95/2, 199/1, 318/1, 380/1, 384장 등)
나의 사모하는(95/2), 나의 사랑하는 책(199/1), 순교자의 흘린 피가
(318/1), 주의 흘린 보혈로(380/1), 나의 갈 길 다가도록(384) 등에서 관형
격 조사 ‘의’는 잘못 쓰였다. 
관형격 조사 ‘의’는 명사와 명사 사이에 나타나 두 명사를 더 큰 명사구
로 묶어 주는 구실을 한다. 그런데 위에 예시한 구절들은 명사와 동사 사이
에 ‘의’를 썼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주격 조사를 쓰든지, 아니면 문장
을 바꾸어야 한다.
예를 들면 ‘내가 사모하는, 내가 사랑하는 책, 순교자들이 흘린 피, 주께
서 흘리신 보혈로, 나의 길을 다 가도록’ 등과 같이 바꾸어야 한다.
(3) 창검도 겁 없네(88/3)
이는 ‘겁 없는 창검’이라는 뜻이 된다. 
마땅히 ‘창검을 겁낼 것 없네’, 
또는 ‘창검이 겁날 것 없네’ 등으로 고쳐야 제대로 된 표현이다.
(4) 영 죽은 내 대신(94/1)
이 찬송에서 ‘나’는 죽었다가 살아난 상태이다. 그냥 놔뒀더라면 영원히 
죽었을 텐데 지금은 주님의 은혜로 살아났다. 그러나 ‘영 죽은’이라는 표
현은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에도 ‘죽은 상태’를 나타낸다.
마땅히 ‘영 죽을 내 대신’으로 표현해야 한다. 이는 통일찬송가에서 제대
로 된 것을 새 찬송가에서 긁어 부스럼을 만든 예라 하겠다.
(5) 증거하다(161/2)
‘증거’란 동작성이 없는 단어이다. 그러므로 ‘하다’라는 접미사와 호응
하여 동사를 이루지 못한다. ‘증거를 대다’로 하든지 아니면 ‘증명하
다’ 혹은 ‘증언하다’ 등으로 바꾸어야 한다.
(6) 자유하다(321/3)
‘자유’라는 어근에는 ‘-롭다’라는 접미사를 붙여야 한다. ‘자유롭다’.
(7) 성경에 쓰였네(563 후렴)
통일찬송가에 ‘써 있네’로 되어 있는 것을 바로잡는다고 ‘쓰였네’로 고
쳤지만 ‘쓰였네’ 역시 바른 표현이 아니다. ‘씌어 있네’가 바른 표현이
다.
‘글씨를 쓰다’에서 ‘쓰다’의 피동형은 ‘쓰이다’
인데, ‘쓰이다’의 준
말은 ‘씌다’이다. 따라서 ‘써 있네’의 바른 표현은 ‘쓰이어 있네’이
고, 그 준말은 ‘씌어 있네’이다. ‘쓰이어’가 줄었으니 당연히 ‘쓰여’
가 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뜨다→ 띄어’, ‘트다→ 틔어’를 생각하면 이해가 잘 될 것이다.
물에 띄어라(쭚), 물에 뜨여라(×)
길이 틔어 있다(쭚), 길이 트여 있다(×)
(8) 살든지 죽든지(549/3)
이는 주님의 처분에 맡기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말이기 때문에 피동형을 써
야 한다. 이를테면 ‘살리시든지 죽이시든지’로 해야 한다.
(9) 죽으셨다(148/2,149/2, 156/3, 등)
성경이나 찬송가 등에서 잘못된 말을 바로잡으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잘못된 말을 쓰는 것은 첫째, 공공질서에 어긋나기 때문에 사회적 혼란을 가
져올 수 있으며 둘째, 교양인으로서의 자격을 상실하는 것이며 셋째, 신학
상 혼란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바른 신학용어’란 문법과 어법에 맞아야만 한다. 신학용어가 교
회에서만 사용하는 말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두루 통용하는 말이기 때문
에 문법과 어법에 맞지 않으면 신학용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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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셨다’는 말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잘못되었다.
1) ‘돌아가시-’는 ‘죽-’에 ‘-시-’가 결합된 상태라 할 수 있는데, 그
러나 우리말에 ‘죽으시-’라는 어형은 존재하지 않는다(한국의 언어, 이익
섭 외 2인, 신구문화사, p. 253.).
2) ‘-시-’라는 선어말어미 자체가 존칭을 나타내는 것인데, 존칭을 나타내
는 어미와 결합하기 위해서는 ‘죽다’라는 일반 동사보다는 존칭을 나타내
는 ‘돌아가다’와 결합해야 문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그리고 신학에서는 비
문법적인 표현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문법적인 표현들로 수정이 
되어야 한다(국립국어연구원).
3) ‘죽다’는 단어가 다의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즉 ‘죽다’는 말
은 목숨이 끊어지다는 뜻 외에도 사람이나 동물이나 움직이는 모든 것의 작
용이 중지되는 것을 뜻하는 한편 어떤 기운이 약화된 것을 뜻할 수 있다(뉘
앙스풀이를 겸한 우리말사전, 임홍빈, 아카데미하우스).
4) ‘죽으시-’라는 어형이 비교적 자연스럽게 쓰이는 경우가 있는데, 예를 
들면 ‘아버님은 풀이 죽으셨어’라든가 ‘아저씨는 기가 팍 죽으셨어’ 등
이다. 그러므로 ‘죽으셨다
’는 말은 어떤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목숨
이 끊어지다’는 뜻으로는 쓰이지 않는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목숨이 완전히 끊어지셨기 때문에 ‘죽으셨다’는 표현은 참으로 적절하지 
못한 표현이다.
5) 그리스도의 특별하신 위치를 고려해서 ‘죽으셨다’는 말로 표현해야 한
다면 음식을 잡수신 것은 ‘먹으셨다’로, 주무신 것은 ‘자셨다’는 표현
이 가능한데 그것은 어불성설이다.이와 같은 이유로 ‘죽으셨다’는 말은 신
학과 아무 상관이 없는 말이다. 상관없는 정도가 아니라 여차하면 이단시비
까지 불러올 수도 있다.
‘죽으셨다는 표현의 비합리성 고찰’이라는 대학졸업논문이 나와 있고 ‘죽
으셨다’는 표현을 문제삼은 ‘개똥신학’이라는 제하의 단편소설도 있음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Ⅳ. 나가는 말

이상 ‘21세기 새찬송가’에서 개선된 부분과 바로잡아야 할 부분을 살펴보
았다. 더 검토해야 할 부분이 남아 있지만 지면 관계상 여기서 멈춘다.
특히 576, 578, 579장 등은 마치 ‘어버이 찬미가’라는 인상을 주는 것이어
서 찬송가에 포함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또한 635, 636장은 
‘주기도
문’인데 수정하지 않은 주기도문을 가사로 사용했기 때문에 의미가 없다. 
이런 것들은 참고자료로만 사용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개혁신보 제 453호(2007.4.21) 4면에 대한 견해는 인터넷 ‘자유게시판’에 
실었기 때문에 여기서는 생략한다. 아무쪼록 어렵게 발간된 ‘21세기 새찬송
가’가 개선에 개선을 거듭하여 제대로 된 찬송가로 거듭나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