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찬송가’의 가사 검토
베일에 가려졌던 ‘21세기찬송가’가 발간되었다. 이에 총회21세기찬송가위
원회에서 ‘21세기찬송가’ 검증작업에 들어갔다. 이와 관련 ‘21세기찬송
가’의 신학적·문학적·예술적 수준에 대한 가사 검증을 먼저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이종섭 목사/찬미교회,총회 21세기찬송가 검토위원
1. 가사 검토의 필요성과 범위
21세기찬송가가 출간되어 신학적 입장과 음악적 입장에서 검토를 필요로 하
고 있다. 신학적 입장이란 찬송가 하나하나를 신학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뜻이며, 찬송가집을 교회가 사용하기 때문에 실천신학적 입장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뜻이다. 음악적 입장이란 ‘가사’와 ‘가락’과 그 ‘정신’을 살피
고 ‘작사가’와 ‘작곡가’까지 살피는 일이다. 나아가 가사가 속한 분야
가 ‘시(문학)’와 ‘음악’이기 때문에 예술성에 관한 수준까지도 살펴야
만 한다.
이 글은 가사를 살펴보는 것으로 그
범위를 한정한다. 두 가지 이유가 있
다. 첫째, 찬송가의 기본이나 방향에 대한 문제는 가사를 통해 먼저 드러나
기 때문이다. 둘째, 21세기찬송가에 ‘신학’과 ‘문학(문법)’과 ‘상식(보
편성)’에 미치지 못하는 가사들이 상당히 많이 채택되었기 때문이다. 이 글
에서 지적한 곡들만 오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지면 관계상 필요한 것들을
추렸을 뿐이다. 기존 찬송가가 아닌 새롭게 추가된 곡들을 살핀다는 것도 부
언해둔다.
2. 가사 검토
찬송가의 장과 제목을 밝히고 가사의 문제점을 지적한 후 적절한 대안을 제
시하겠다. 수정된 가사는 오류를 밝히기 위한 것에 목적이 있다. 이후 더욱
정교하게 다듬어야 할 것이다.
■ 13장 영원한 하늘나라(김윤국, 1981)
-‘영원한 하늘나라 보좌 위의 하나님’(1절)
이 가사는 창작 가사이다. 그럼에도 우리말 어법과는 전혀 관계없이 영어 번
역투로 쓰였다. ‘보좌 위의 하나님’은 구어체로 말할 때도 이렇게 쓰는 법
이 없고, 노래를 할 때도 ‘의’ 발음이 나지 않고 ‘에’ 발음을 하게 한
다.
– ‘영원한 하늘나라 보좌 위에 계신 주’
-‘갈구하는 심령에 충만하
게 하시어 / 성결케 하옵소서 보혜사 성령이여’
(3절)
이 가사의 문제점은 삼위일체 골격을 가진 가사의 구조와 관련된다. 1절과 2
절은 각각 하나님과 예수님을 말하고 마지막 서술도 ‘찬양을 받으소서’와
‘영광을 받으소서’로 끝난다. 그러나 성령에 대해서는 그렇지가 않다. 일
관성이 없다. ‘성령’과 ‘성령이여’라고 호칭하는 것과 찬양으로 끝나지
않고 간구로 끝나는 것이 문제다. 이 문제는 성령론까지 연결된다. 성령은
‘하나님’이시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을 받으실 분이다(엡 1:3-
14). 성령님께 찬양할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이 심히 아쉬운 대목이다.
– 이 내용의 공감이 이루어진다면 충분히 수정할 수 있다.
■ 17장 사랑의 하나님(김희보, 1991)
-‘주 영광 이 성전에 가득히 넘치네’(1절)
‘성전’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주의해야 한다. 구약의 성전은 더 이상 존
재하지 않고 예수님이 성전 되시며(요 2:13-22) 우리가 또한 성전이 되기 때
문이다(고전 3:16). 구약의 말씀을 인용하거나 가르칠 때는 가능하지만 이렇
게 창작 가사의 경우에는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쵈 ‘교회’라고 해도
무리가 없다.
-‘율법의 멍에에서 해방해 주시니’(2절)
이런 가사가 등장하는 것이 놀랍다. 문법적으로 재해석하면 ‘율법의 멍에
를 벗겨주신다’라는 뜻이 된다. 목적격조사 ‘를’이 쓰일 곳에 ‘에서’
가 쓰이고 ‘해방시켜 주신다’라는 표현을 ‘해방해 주신다’라고 한 것이
잘못이다. 처음부터 좋은 가사로 작곡을 했어야 하지만, 이미 작곡된 가락
의 음절에 맞게 다음과 같이 재수정을 할 수 있다.
– ‘율법의 무거운 짐 벗기어 주시니’
■ 24장 왕 되신 주(번역 가사)
– ‘휘장을 걷고 보좌 오르사 / 우리 위해 중보 되신 주님’(2절)
성경에 있는 사실을 가사로 쓸 경우 설명이나 묘사가 성경과 맞아야 한다.
성경과 다르거나 모호하게 처리하는 경우 그것은 애초부터 작사가나 번역가
의 기본적인 소양 문제라고 할 수밖에 없다. ‘휘장’은 ‘걷어진’ 것이 아
니다. 휘장은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져 둘이’ 된 것이다(마 27:51). ‘중
보 되신 주님’이라는 표현도 문제다. ‘중보’라는 단어를 쓰려면 ‘하다’
라는 형태와 연결해야 하고, ‘되신’을 써야한다면 ‘중보자’가 와야 한
다.
쵈 ‘하늘 보좌
로 오르신 예수 / 우리 위해 중보자 되신 주
■ 51장 주님 주신 거룩한 날(김이호, 2005)
-‘내게 주신 귀한 물질 하나님께 드리오니 / 기뻐 받을 제물로서 열납되게
하옵소서’(1절)
‘물질’이라는 표현은 개인적으로 사용할 수 있으나 공인찬송가집에 들어
갈 가사로는 적합하지 않다. ‘제물’이라는 표현도 ‘성전’과 같은 경우
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제물이 되시기 때문이다. ‘열납되게’라는 수동태
표현도 문제다. 우리말은 수동태가 발달하지 않았다. 우리말에서 수동태가
나타나는 것은 영어 때문이다. 가급적이면 올바른 표현을 사용해야 한다. 문
장의 내용도 애매하다. ‘제물’ 때문에 ‘열납되는’ 것인가? 제물은 ‘하
나님께서’ ‘받아주시는’ 것이 아닌가?
– ‘내게 주신 귀한 것을 하나님께 드리오니 / 나의 마음 나의 정성 주님께
서 받으소서’
■ 100장 미리암과 여인들이(정숙자, 2005)
-‘미리암과 여인들이 춤을 추며 노래하고’(1절 앞부분)
-‘마리아는 이웃들과 기도하며 노래하고’(2절 앞부분)
이 곡의 가사는 ‘전쟁 무기 멀리하고’, ‘역사 안에 살아계신’, ‘평화
세상 바라보며’, ‘분열
분쟁 사라지는’, ‘평등 인간 창조하신’ 같은 내
용들로 이루어져 있다. 연합이라는 한계적 차원에서 이런 노래가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도 좋은 작품을 선정해야 하지 않겠는
가? 이 가사에 ‘미리암’과 ‘마리아’가 있는 것은 성경이해나 문장력 자
체가 부족하다는 것을 증명할 뿐이다.
–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뻐하며 노래하고’
– ‘성도들이 이웃들과 기도하며 노래하고’
■ 113장 저 아기 잠이 들었네(번역 가사)
-‘왕 되신 주님께 / 다 나와 천사 따라서’(후렴)
밑줄 부분은 자체 문장도 그 다음의 문장과도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문장이
다.
– ‘왕 되신 주님께 / 다 나와 찬양 드리며’
■ 127장 그 고요하고 쓸쓸한(번역 가사)
-‘그 고요하고 쓸쓸한 저 달빛 아래서 / 저 하늘 천사 찬양이 사방에 퍼지
네’(1절)
가사를 번역하게 될 때 음절이 부족하거나 못갖춘마디일 경우 ‘저, 그,
이, 다, 참’ 같은 말들을 첨가하게 된다. 그러나 신중을 기해야 한다. 안
써도 되는 곳에 이런 표현들이 들어가면 문장의 수준이 낮아지게 된다. 더
문제인 것은 밑줄 부분이다. ‘고요하고’까
지는 좋았으나 ‘쓸쓸한’이 문
제다. ‘달빛’이 ‘쓸쓸하다’는 것인데, 문장의 오류는 없으나 ‘하늘 천
사 찬양이 사방에 퍼지네’와 연결해서 생각해 보면 내용상의 심각한 오류
와 직면한다. ‘천사의 찬양이 들리는 하늘’이 과연 쓸쓸하겠는가?
– ‘그 고요하게 빛나는 저 달빛 아래서’
■ 129장 마리아는 아기를(번역 가사)
1절: 마리아는 아기를 구유 안에 뉘고
이 세상에 나신 주 강보 속에 싸여
천한 곳에 나신 주 우리 구주시라
자비하신 주께서 영광중에 오셨네
2절: 천사 찬송 부르며 동방박사 오고
반짝이는 별빛과 주의 영광 비춰
천사들의 찬양을 목자들이 듣네
어둔 밤은 빛나고 높은 산은 진동해
3절: 마리아는 아기를 구유 안에 뉘고
이 세상에 나신 주 우리 구주시니
아기 예수 탄생은 아름다운 소식
온 세상은 노래로 소리 높여 찬양해
이 번역가사는 1, 2, 3절 전체가 문제다. 처음부터 끝까지 문장이 수준 이하
이고, 4마디로 이루어진 작은악절이 두 개씩 묶여 큰악절을 이루고 이 큰악
절이 노래의 기본구조라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이 번역한 것이다. 조악하기
짝이 없는 이런 가사는
선정위원들의 실력이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 이 곡은 삭제하든지 다시 번역해야 한다.
■ 223장 하나님은 우리들의(나채운, 1992)
-‘예수님은 우리들의 참된 스승님’(2절)
-‘사도들은 우리들의 장한 선배들’(3절)
-‘스승님께 잘 배워서 좋은 제자로 / 선배들을 본받아서 좋은 후배로’(4
절)
1절에서 4절까지 고르게 등장하는 ‘스승님’, ‘선배’, ‘후배’ 같은 단
어들은 개인적으로 또는 한 목회자의 영향 아래 있는 교회에서는 사용할 수
있으나 모든 교회가 사용하기에는 부적절하고 찬송가집에 실리는 것도 격에
맞지 않는다. 나아가 ‘하나님은 아버지’(1절)이고, ‘예수님은 스승님’(2
절)이고, ‘사도들은 선배들’(3절)이라는 구조는 신학적으로도 타당하지 않
고 보편적 입장에서도 어울리지 않는다.
쵈 이 가사는 창작 가사라는 점, 전체가 문제라는 점 때문에 가사 수정이 어
렵다. 따라서 이 곡은 삭제되어야 한다.
■ 244장 구원받은 천국의 성도들(번역 가사)
-‘믿음으로 주 / 고백했기에’(1절)
-‘새하늘과 새 / 땅의 영화라’(2절)
-‘하나님께 큰 / 상급 받으니’(3절)
밑줄 친 부분의 ‘ /
’는 마디를 구분한 것이다. 이 가사의 ‘주’와
‘새’와 ‘큰’은 모두 다음 마디의 가사와 연결된다. 그러나 앞당겨서 번
역한 관계로 ‘믿음으로주’, ‘새하늘과새’, ‘하나님께큰’과 같이 ‘로
주’, ‘과새’, ‘께큰’라는 단어로 노래 부르게 한다.
– ‘믿음의 주를 고백했기에’
– ‘새하늘과 새땅의 영화를 저 천국에서 함께 누리리’
– ‘하나님께서 상급주시니’
■ 443장 아침 햇살 비칠 때(황금찬, 1977)
-‘우리 주님 내 맘에 빛나는 태양 / 문 앞에서 머무시는 주님 영접해’(1
절)
‘문 앞에서 머무시는 주님 영접해’는 요한계시록 3:20의 내용인데 이것은
성경을 잘못 이해한 경우다. 또한 바로 앞의 ‘우리 주님 내 맘에 빛나는 태
양’이라는 표현과 함께 생각해 보면 더욱 어색하다. ‘주님이 내 맘에 빛나
는 태양’인데 어찌 ‘문 앞에서 머무시는 주님’이라는 표현이 이어서 나오
는가?
– 문맥에 맞게 다시 수정해야 한다.
■ 444장 겟세마네 동산에서(한경직, 1981)
-‘풍파 이는 세상에서 지금까지 살아옴도 / 주의 은혜 크신 사랑 잠시라도
잊을쏘냐’(3절)
문장의 오류가 심한 가사다. 3절 시
작하는 부분인데 첫 줄과 둘째 줄이 서
로 맞지가 않는다. 각각 다른 문장인 것이다. 이 문장을 분석해보면 중간에
한 문장 정도가 생략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풍파 이는 세상에서 지
금까지 살아옴도’ (내 힘이 아닌 주의 은혜 때문이니) ‘주의 은혜 크신 사
랑 잠시라도 잊을쏘냐’라고 풀어보면 이해가 된다. 혹시라도 존경받는 분
의 가사이기 때문에 손대면 안 된다는 말은 없어야 한다. 오히려 분명한 오
류가 있는 상태로 사용하는 것은 두고두고 그분에게 누를 끼치는 것과도 같
다. 오류를 바로 잡아 사용하는 것이 오히려 그분에게 더 도움이 되지 않겠
는가?
– ‘풍파 이는 세상에서 지금까지 살아온 나’
■ 465장 주 믿는 나 남 위해(번역 가사)
-‘주 믿는 나 남 위해 진실하고 / 날 보는 자 위해서 정결코’(1절)
-‘저 원수도 내 참된 친구 삼고 / 남 주면서 행한 일 잊으리’(2절)
이 가사는, 번역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 한 것이다. 문장도 엉터리고, 번역
의 센스도 없다.
– ‘주 믿는 자 언제나 진실하고 / 어디서나 정결하게 사네’
– ‘내 몸처럼 원수를 사랑하고 / 내 이웃을 섬기며 살리라’
■ 468장
큰 사랑의 새 계명을(신세원, 1988)
-‘악한 무리 막으려고 검을 빼는 제자에게 / 죽기까지 인내하라 조용하게
말씀했네’(2절)
앞에서도 지적했듯이 성경의 특정 사실에 대한 설명은 성경과 같아야 한다.
예수님은 검을 휘둘렀던 제자에게 ‘죽기까지 인내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다. 이것은 순전히 자기 생각일 뿐이다.
– 알맞은 가사로 당연히 고쳐야 한다.
■ 541장 꽃이 피는 봄날에만(손양원, 1902-1950)
-‘추운 겨울 주릴 때도’
-‘솔로몬의 지혜보다 욥의 인내 아름답다’
한 사람의 신앙을 기억하는 것은 아주 귀한 일이다. 그러나 점검 없이 어떤
것을 사용할 경우 불편함은 당연히 있다. 시대의 배경이 다르고 처한 환경
이 다르기 때문이다. 추운 겨울을 ‘주릴 때도’라고 하는 것이 지금과 동떨
어진다. 이 정도는 괜찮다고 할지라도 ‘솔로몬의 지혜보다 욥의 인내 아름
답다’라고 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다.
쵈 토의를 거쳐 수정해야 한다.
■ 558장 미더워라 주의 가정(문익환, 1967)
-‘미소하는 얼굴들에’(2절)
-‘향기롭다 주의 가정 기도하는 이 제단’(4절)
‘미소하다’라는 말은 쓰
지 않는 말이다. ‘제단’이라는 말도 가정과 관련
해서 쓸 수 없고 창작가사에서도 쓸 수 없다.
– ‘웃음짓는 얼굴들에’
– ‘기도하는 우리들’
■ 573장 말씀에 순종하여(박지혜, 2005)
-‘육신 위해 살던 자가 말씀으로 살아가라’(1절)
동일한 작사가가 467장도 작사했다. 두 곡 모두 문장의 오류가 있다. 이런
가사를 두 곡씩이나 채택할 이유가 있는가? 혹시라도 오타라고 할지 모르겠
다. 그렇다고 하면 그 많은 오타를 제대로 교정하지 않은 문제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오타 이전에 문장의 기본이 없는 가사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 안
타깝다.
– ‘육신 위해 살던 자여 말씀으로 살아가라’
■ 576장 하나님의 뜻을 따라(정치근, 1980)
-이 곡은 처음부터 끝까지 어머니를 찬양한다. 하나님만이 찬양을 받으시는
예배의 성격과도 맞지 않고, 이미 오래 전에 ‘어머니날’을 ‘어버이날’
로 바꿔 부르고 있는데도 ‘21세기’ 찬송가에서 여전히 ‘어머니날’과 관
련된 찬송가를 실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찬송가는 미래지향적이어야 하지
않는가?
– 이 곡은 선곡 자체가 문제가 있으므로 삭제해야 한다.
■ 577
장 낳으시고 길러주신(김수진, 2005)
-‘하나님을 경외하신 어버이의 크신 사랑’(1절)
처음부터 끝까지 어버이 노래다. 어버이를 너무 칭송하다 보니 ‘기도하
신’, ‘기뻐하신’ 같은 표현이 거슬리고, ‘하나님을 경외하신’에 이르러
서는 불편하기까지 하다. ‘하나님’을 말하면서 ‘어버이’를 더 높이고
‘어버이의 크신 사랑’까지 들먹인다. 이는 우리 말법도 모르는 소치다. 아
버지 앞에서 형을 이야기할 때는 형에 대한 존칭을 쓰지 않는다. 하물며 하
나님 앞에서 말할 때에는 더욱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더군다나 이런
노래들이 교회력에 맞는 노래인지도 의문이다.
– 당연히 삭제하거나 교체해야 한다.
3. 수준 이하의 21세기찬송가 가사
지금까지 21세기찬송가에 새로 추가된 곡들 중에서 몇몇 곡들의 가사를 살펴
보았다. 이에 대한 종합적인 내용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① 문장의 기본조차 없는 수준 미달의 가사들이 수두룩하다.
② 개인적인 경험과 공적인 영역을 구분하지 못한 가사들이 많다.
③ 성경의 사실과 다른 가사들이 있다.
④ 번역할 실력이 없는 사람들의 가사가 많다.
⑤ 최근에 작
사한 것들이어서 가사 검증과 작사자 검증에 문제가 있다.
⑥ 시와 노래라는 문학적, 음악적 차원의 예술성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21세기찬송가는 이미 지적한 가사의 오류뿐만 아니라, 분류와 편집과 악보
표기와 교정에도 일관성이 결여되어 있다.
21세기찬송가의 머리말을 보면 ‘10년 동안 신학자, 목회자, 국문학자들과
교회음악 전문가가 대거 참여하여 수많은 모임을 통해 더 좋은 찬송가를 만
들려고 함께 노력’했다고 한다. 그러나 누가 이 말을 믿을 수 있겠는가? 단
지 노래들을 수집하고 선정하여 분류만 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21세기찬송가의 잘못된 가사는 마땅히 수정되어야 한다. 수정에 대한 입장
은 ‘개역개정판성경’이 좋은 예가 된다. 성서공회는 ‘개역개정판성경’
을 출판한 이후 각 교단의 의견을 듣고 4차까지 개정판을 냈다. 21세기찬송
가 역시 이런 절차를 따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