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8회 정암신학강좌<3>_설교학적 관점에서 본 정암…_정창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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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회 정암신학강좌<3>

설교학적 관점에서 본 정암 박윤선의 설교

정창규 교수_합신 설교학

들어가는 말

정암의 삶은 신학자요 주석가요 설교자라는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
다. 그리고 신학교 강의와 주석 저술, 그리고 강단의 설교는 정암이 평생토
록 자신의 신학과 말씀의 깨달음을 표현하고 선포하는 결정적인 방편이었
다. 이 세 가지 일은 정암이 자신의 “삶을 바친 세 가지 일”이었을 뿐 아
니라, “뼈에 사무치는 열정을 가지고 일생 동안 수행한 일”이기도 하였
다. 
정암의 설교에 대한 연구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 가지 
분야의 자료의 확보가 필수적일 것이다. 그가 가지고 있었던 설교론 혹은 설
교신학이 무엇이었는가를 보여주는 자료와 그가 실제로 행한 설교들이 그것
이다. 그러나 정암의 설교를 연구하는 데는 자료 확보라는 점에서 몇 가지 
한계가 있다. 
그러나 정암의 설교론을 연구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육성으
로 남
아있는 정암의 설교 가운데 거의 절반에 가까운 설교가 신학생이나 목회자 
등 교역자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고, 정암은 그 설교들에서 자주 설교와 관
련한 자신의 견해나 주장을 언급하고 있으며, 또한 그의 많은 저술들 이곳저
곳에도 그의 설교론을 포착할 수 있는 여러 진술들을 하고 있으므로 이러한 
자료들을 근거로 정암의 총체적인 설교론을 도출해내는 것이 가능하다.

1. 설교자 박윤선

전기적 관점에서의 정암의 인생과 학문, 그리고 경력과 사역 등에 대한 언급
은 여러 연구자들에 의하여 다양한 측면에서 이미 널리 알려져 온 것이 사실
이다. 그리고 정암 자신이 ‘성경과 나의 생애’라는 제목으로 기록한 자서
전이 남아있다. 
정암이 처음 교회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그가 17세 때였다. 그는 유교 가풍
에서 태어나 아홉 살 때부터 한학을 배우기 시작하여 사서오경을 다 마치고 
그 중에서 예기와 주역을 제외한 사서삼경은 암송할 정도로 통달하였다고 스
스로 밝히고 있다. 더욱이 논어와 맹자는 그 주해까지 다 외울 정도로 한학
에 깊이 빠져있었다. 
그러한 그가 17세 때에 자기 동네에는 예배당이 없어서 
다른 동네에까지 스
스로 교회를 찾아감으로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이었다. 훗날 자서전에서, 
“예수를 잘 믿어보려는 마음으로 예배시간마다 반드시 참석하였으며, 특별
히 설교를 주의 깊게 들었다”고 그 시절을 진술하고 있다. 
이와 같이 그의 설교에 대한 관심과 열정은 그가 교회에 첫 발을 내디딘 순
간부터 자연스럽게 시작된 것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가 가진 설교에 대
한 관심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해석의 문제이었다. 그는 “특별히 
설교를 주의 깊게 들었다”고 말하고 있다.

2. 박윤선의 설교목록

정암의 설교들은 세 가지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그의 주석에 1047편의 설교
가 수록되어 있으며, 그의 3권의 설교집에 240편, 그리고 녹음 테이프에 육
성녹음 상태로 171편이 보존되어 있다. 

1) 주석
설교 자료를 방대하게 수록하고 있다는 것은 박윤선 주석이 갖고 있는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정암은 두 가지 방식으로 설교에 대한 자료를 주석에 수록
하고 있다. 첫째는 “설교”라는 표제아래 자신의 설교를 수록한 것이고, 둘
째는 “설교재료”라는 표제 아래 설교자들을 배려한 본문과 관련한 여
러 설
교를 해볼만하다고 여겨지는 주제나 메시지 아이디어들을 나열식으로 제시
한 것이다. “설교”는 설교의 체제를 갖추어 요약된 설교문 형식이고, “설
교재료”들은 번호를 매기면서 몇 줄씩 간단하게 기록한 항목별 제안 형식
을 취하고 있다. 
그는 거의 모든 성경마다 자신의 설교를 수록하였으며 그 총수가 1047편에 
이른다. 물론 이 설교들은 요약 설교의 형태로 수록되어 있다. 그가 처음 고
린도후서 주석을 시작한 것이 1938년이고, 에스라/느헤미야/에스더 주석을 
간행함으로써 신구약 주석을 완필한 것이 1979년임을 감안하면 그의 주석은 
정암의 40여 년 간의 설교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설교집
정암의 설교는 현재 그의 주석에 구약 설교473편과 신약설교574편으로 총
1047편, 그리고 그의 세 권의 설교집에 구약설교 51편과 신약설교 189편으
로 총240편, 그리고 녹음 테이프에 구약41편과 신약127편 그리고 그 외의 3
편을 포함하여 총171편이 수록되어서, 전체적으로는 구약설교 565편과 신약
설교 890편, 그 외의 3편을 포함하여 총 1458편의 설교가 보존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이 설교들은 그 설교가 어
디에 수록되어 있는지는 물론 연대
순, 본문순, 제목순, 설교 장소별에 따른 검색이 가능하도록 데이터 베이스
로 구성됨으로써 정암의 설교를 연구하려는 이들에게 편리한 자료 형태로 보
존되어 있다. 특히 이미 테이프 세트로 일반에 보급된 1-13집은 물론 공개되
지 않은 14-17집에 이르는 설교들까지 모두가 녹취문으로 보존되어 있어서 
정암의 설교를 실제로 그가 행했던 그대로 접하려는 사람이나 정암의 설교 
연구자들에게는 유익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

3. 박윤선의 설교신학

위의 설교목록에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정암은 주석에 수록한 설교 외에 3권
의 설교집을 발간하였다. 정암은 1970년에 간행된 자신의 첫 설교집 “영생
의 원천” 머리말에서 그의 설교론 혹은 설교신학의 핵심을 극명하게 보여주
는 중요한 진술을 매우 단언적인 어법으로 다음과 같이 진술하고 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경을 깨닫는 순
간에 생명의 약동을 느낀다. 그 생명의 움직임을 말할 때에 설교가 된다. 설
교는 강연도 아니고, 변론도 아니고, 영적 생명의 움직임이다. 이와 같은 역
사는, 간절한 기도
와 성경에 대한 경건한 연구와 특별히 그 말씀 순종에 따
라서 하나님의 선물로 임하는 성령의 열매이다.”

5년 뒤인 1975년에 그의 마지막 설교집인 “주님을 따르자”를 간행하면서 
다시 간략한 머리말의 거의 절반을 자신의 설교론을 천명하는데 할애하면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설교는 성경 말씀을 그대로 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성경을 바
로 깨닫고 전해야 된다. 설교자는 성경 연구를 깊이 하는 동시에, 기도를 많
이 해야 되며, 무엇보다도 설교자 자신이 그 말씀대로 살아야 된다. 그대로 
살지 않으면서 전함은 무력하다.”

위 두 진술은 설교에 대한 정암의 일관된 입장을 담고 있는데, 이러한 진술
에 근거할 때, 정암의 설교신학은 4개의 축을 중심으로 구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1) 말씀의 경건하고 깊이 있는 연구(본문 해석) 2) 간절하고 많이 
하는 기도 3) 성령의 감화 그리고 4) 말씀 순종으로 나타나는 설교자의 인격
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정암에게 있어서 설교는 단순히 건조한 연설이 아니
다. 그에게 있어서 설교는 약동하는 생명이고, 영적 생명의 움직임이다. 

1) 성경 본문의 경건하고 
깊이 있는 해석
정암의 설교론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설교의 본문이 되는 성경에 대한 신학
적 입장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정암에게 있어서 설교
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본문 해석의 문제이고, 본문 해석의 문제는 성경관의 
문제로부터 출발한다. 즉, 정암의 설교신학의 출발점이자 가장 중요한 핵심
은 성경관과 관련되어 있다. 
구체적인 본문의 해석과 관련하여 그가 집착하는 해석의 원리나 방법들은 근
본적으로 그의 성경관을 배경으로 하여 수립된 것들이다. 그러므로 그는 자
신의 설교신학을 밝히려 하면서, “나의 설교신학을 말한다는 것은 간단히 
말해서 성경관의 문제이며, 나의 설교신학이라는 말은 나의 성경관이라고 말
을 고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와 같은 성경관은 필연적으로 그에게 이 성경을 바로 깨달으려는 열정을 
불러일으키게 되었고, 그리하여 그의 최대의 관심은 성경 말씀을 바로 깨달
으려는 집착과 열성으로 나아가게 한다. 그리고 그에게 있어서 성경을 바로 
깨닫기 위하여는 두 가지 전제가 필수적인데, 그것은 경건하고, 깊이 있는 
연구이다. 

2) 간절하고 많이 하
는 기도
정암의 평양 신학교 시절부터 그의 말년에 이르기까지의 평생의 기도생활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는 그야말로 기도일관의 삶을 살았다. 
정암에게 있어서 설교자의 설교를 위한 기도는 단순한 경건 행위의 일부가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기도는 설교를 수행하는 과정의 필수적인 행위요 절
차이다. 
말씀의 해석과 성령의 감화로 설교가 능력을 나타내게 되는데 기도는 성령
의 감화가 설교자와 그가 전하는 설교에 나타나게 하는 데 필수적인 설교자
의 행위인 것이다. 그는 “성령의 감화는 기도에 녹아져야 받아지는 것”이
라고 단언한다. 
물론 그는 본문에 대한 올바른 깨달음으로 설교가 잘 준비되어야 할 것을 무
엇보다도 강조한다. 그리하여 그는 설교 준비에 있어서 기도도 많이 해야 되
지만, 먼저 설교 내용이 성경에 의한 올바른 깨달음으로 준비되어야 하며, 
자신의 체험으로 보아도 기도를 아무리 하여도 성경을 잘 준비 안한 다음에
는 설교에 은혜가 없다면서, 기도가 먼저가 아니고 성경이 먼저라고 주장한
다. 

3) 성령의 감화
정암에게 있어서 설교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며, 그러므로 
그것은 
건조한 연설이 아니라, 생명의 움직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생명
의 움직임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열매라고 믿는다. 그
러므로 그의 설교론에 있어서 성령의 감화는 설교로 설교되게 하는 데 있어
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성령의 감화 없이는 설교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한 마디로 단언한다. 
사실, 그의 논리에 의하면, 성령의 감화 없이는 설교를 제대로 할 수가 없
는 정도가 아니라, 설교가 설교일 수도 없는 것이다.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
하는 방법은 성령의 감화뿐이라고 그는 확언한다. 그리고 설교가 성령의 감
화로 말미암은 영적 생명의 움직임의 역사이기 위하여는 무엇보다도 설교자
가 성령의 감화를 입은 사람이어야 한다고 그는 믿는다. 그리고 설교자가 성
령이 감화를 입는 중요한 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라고 그는 믿고 있다. 

4) 말씀대로 순종하는 인격
정암은 설교에 있어서 설교자의 인격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는 
설교자는 인격을 바르게 가져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그 인격의 구체적인 내용
을 여러 가지로 설명한다. 그것은 말씀을 깊이 
파고 들어가는 말씀에 대한 
진실성을 말하기도 하고, 교인들 앞에서 자신에 대하여 정직한 것을 말하기
도 한다. 
그가 설교와 관련하여 설교자의 인격을 말할 때는 무엇보다도 말씀과의 관련
성 아래서 말하는 것이 주도적이며, 그 가운데서도 말씀을 순종하는 신앙인
격을 지칭하는 것이 절대적이다. 그는 이미 그의 설교론을 천명하는 글에서 
설교자는 성경연구를 깊이하고, 기도를 많이 해야 되지만 무엇보다도 설교
자 자신이 그 말씀대로 살아야 된다고 하면서, 자신이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서 하는 설교는 무력하다고 단언하였다. 

4. 박윤선의 설교

1) 본문의 결정
정암의 설교본문은, 성경을 연구하다가 깨달음이 와서 그 깨달음을 설교로 
선포하고 싶은 설교적 욕구가 발동하여 그것을 설교본문으로 선택하는 것이 
거의 대부분의 경우이며, 이것이 정상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주석에 첨부되
어 있는 1,000편 이상의 설교는 사실상 그렇게 하여 된 설교들이다.
그러나 한편 정암은 그가 본문을 선택했던 또 다른 경우들을 설교자들에게 
공개하는데, 그것은 설교의 제목이 먼저 떠올라서 그 제목을 붙이기에 적합
한 본문을 
찾는 방식으로 본문이 결정되는 경우도 있으며, 혹은 본문이 먼
저 떠올라서 설교를 준비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깨달음이 많은 어떤 예화
를 만나게 되어서 그 예화를 효과적으로 사용하기에 적합한 본문을 찾는 방
식으로 본문을 결정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2) 본문의 해석과 적용
정암은 설교자들이 본문을 자세히 봐야하고, 깊이 깨달아야 하고, 본문의 바
닥까지 내려가야 한다는 등 여러 수사학적인 표현들로 설교자들의 정확한 본
문 해석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 책임을 제대로 감당하니 않는 설교자들을 언
제나 강하게 질타한다. 그러면서 설교자가 본문을 정확하게 깊이 있게 해석
하는 구체적인 원리와 방법이 무엇인가를 자신의 경우를 들면서 명확하게 제
시한다. 
“그런데 이 해석 작업에 있어 나는 단편적(atomistic) 으로 하지 않고 구속
사적으로 그 본문의 뜻을 찾는다. 그리할 때에 거기서 굵고 심오하고, 영적
인 능력이 있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 뿐 아니라, 언제나 본문에서 그리스
도 중심의 요소들을 찾는다. 그 이유는, 성경은 어느 부분이든지 직접 혹은 
간접으로 그리스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심지어 성경의 
윤리적 부분들이나 
성도들의 믿음과 덕행까지도 그리스도의 속죄와 구원을 배경하고 계시되어 
있다. 그러므로 나는 그것을 단순한 윤리문제나 모범적 훈화로 취급하지 않
고 그런 기사도 구속사적 관련으로 해석한다. 그와 동시에 그 본문이 오늘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고 있는가를 생각하며 현실적 의의를 찾는다.”

정암은 본문을 해석할 때는 언제나 기억하고 그대로 힘써야 할 원리가 있으
며, 자신은 그렇게 해오고 있다고 강조하는 것이 있다. 그 가장 중요한 원리
를 정암은 한 마디로,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하는 것이라고 규정한다. 그
가 말하는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성경을 성경의 다른 부분
의 말씀으로 해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해야 
하는 근거는 성경이 가지고 있는 신적 차원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정암의 설교들은 거의가 본문의 낱말이나 어구에 대한 해석으로부터 
시작하며 설교의 전개도 많은 경우에 그 단어나 어구들, 혹은 병행구의 해석
을 차례대로 진행해나가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그의 해석은 단순
한 주석이나 주해의 단계에서 머물지 않고 그 해
석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청중
의 삶이나 현실의 어떤 점으로의 연결로 이어진다. 곧 적용으로 진행해나가
는 것이다. 

3) 설교의 제목
정암은 설교에 있어서 제목을 매우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가 이렇게 제목을 중요시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설교의 제목은 곧 그 설
교의 주제를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정암에게 있어서 설교의 제목은 단순히 설교의 타이틀이라는 개념 이상이
다. 그에게 있어서 설교의 제목은 설교의 내용 혹은 주제에 대한 요약을 말
하는 것이며 어떤 점에서는 제목이 설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
서는 제목이 그의 설교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4) 도입부와 맺음부
그의 설교에는 흔히 서론이라고 말하는 설교의 도입부가 거의 없다. 일반적
으로는 청중의 관심이나 긴장을 사로잡아 설교본론에로 끌고 가기 위한 치밀
하게 구성된 도입부를 구성할 것이 제안되고 있는 것이 현대 설교의 경향이
기도 하다. 그러나 정암은 제목을 공포하고 그 제목에 대한 설명을 몇 마디 
하든지 한 다음에는 곧바로 설교의 본론으로 진입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5) 설교
의 형태와 전개
정암이 본문의 문학적 스타일을 그의 설교 형식이나 전개에 고려했다는 증거
는 필자로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일반적으로 그의 설교 형태나 설교 전개는 
제목을 말한 다음, 그 제목이 담고 있는 단어(이런 경우 그 제목의 핵심 단
어는 대개 본문으로부터 취해진 경우이다)를 해설하거나 아니면, 그 제목을 
설명해주는 본문의 어떤 단어나 어구 혹은 개념을 해석하고 설명하고, 또 청
중을 향하여 적용하는 방식으로 진행해나가는 형태를 취한다. 
대개의 경우 대지로 설교를 구성하는 대지 설교의 형태를 취하지만 그것이 
전통적인 3대지 설교, 즉 본문의 깊은 해석적 결과와는 상관없이 기둥 세 개
를 제시하면서 다른 예화나 신앙적인 요소들을 앞 뒤 대지의 연결이 본문에
서의 필연적 연관성 없이 나열되는 그러한 3대지 설교는 물론 아니다. 어느 
경우는 본문의 흐름에 있어서의 중요한 단락들이 대지로 제시되기도 하고, 
어느 경우는 핵심 단어들에 대한 해석이 각각의 대지를 형성하기도 한다.

6) 예화의 사용
정암은 설교에서의 예화 사용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예화 사용은 성경 본
문의 진리를 밝히려는 것뿐이다. 
설교자가 청중을 즐겁게 하려고 예화를 사
용함은 기생의 수법과 같은 것이다”라는 입장을 단적으로 진술한다. 그는 
예화 사용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조건을 붙여 매우 신중한 입장을 취한
다. 
정암은 본문의 진리를 밝히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예화를 사용해야한다는 것
과 같은 원리의 적용으로 다른 종교의 교리나 혹은 다른 이론들을 설교에 길
게 설명하는 것에 대하여도 부정적인 입장을 취한다. 본문의 진리를 변증하
기 위하여 다른 종교의 교훈이나 다른 이론들을 동원하여 길게 사용하는 것
은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진리를 가리거나, 혹은 설교의 박진감 있는 전개를 
단절시켜서 설교에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암이 설교에서의 예화의 사용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 자신
이, 어느 때는 깨달음이 많은 어떤 예화를 만나게 되어 그 예화를 사용함으
로 잘 드러낼만한 본문을 찾아서 설교의 본문으로 정하는 때도 있다고 진술
하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의 설교에도 간간이 예화가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거의 어느 경우에나 공통적인 것은 예화가 많지 않을 뿐 아니라, 사
용되는 예화의 길이도 매우 간
략하고 짧다는 사실이다. 
그의 설교에는 예화보다는 오히려 다른 성경 구절이나 성경의 사건들, 혹은 
병행 구절의 인용을 통한 본문의 의미 설명 등이 더 보편적이라고 할 수 있
다. 병행구절의 의미 설명이나 병행구절이 담고 있는 사건의 제시가 예화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설교의 전개가 주로 본문의 낱말이
나 어구의 의미를 깊이 해석하고 그것을 적용하는 방식을 취하는 데서 오는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즉 그의 설교 전개 방식에 있어서는 예화를 사용할 
여지가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맺는 말

그의 설교의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그의 설교 행위는 두 가지 분명한 신학
적 확신에 뿌리를 박고 이루어지고 있다. 첫째는 성경의 권위에 대한 절대
적 신뢰이며, 둘째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대한 신학적 확신이다. 그에게
는 이것이 단순한 신학적 입장의 견지 정도가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걸만
한 신앙의 문제요, 신앙 고백의 문제로 언제나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자기가 깨달은 개혁주의 혹은 칼빈주의의 핵심이라고 이해했
고, 그것을 한국교회의 후배들에게 가르칠 열정을 유학에서 돌아올 때
부터 
품었다고 진술한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후, 자신은 그렇게 해왔다고 그
의 자서전에서 천명하였다. 
그러한 확신을 가지고 파고 들어간 성경에서 얻은 것이니, 그의 메시지는 언
제나 강력한 선포의 형식을 갖추었고, 말씀에 대한 이러한 확신을 근거로 하
여 나오는 그의 메시지는 언제나 단호하고, 단정적이고, 자신에 차 있었던 
것이다. 
그가 자신이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음을 의식하면서 소천하기 얼마 전에 가
족들에게 하였다는, “모든 친구들이 다 갔으니 나도 가야 하지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설교를 못하는 것이다”는 말은 단순히 정암이 설교하기를 즐거
워하고 사모하였다는 차원을 넘어서 우리에게 함축하는 바가 크다. 그는 신
학자요 주석가로 알려져 왔으나, 정암 자신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무엇
보다도 설교자로서 인식하고 있었다는 단서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의 성경해석이나 그의 신학이나 그의 삶을 논하고 밝히는
데 노력한 만큼 그의 설교를 논하거나 밝히는 일에는 관심을 갖지 않은 것
이 사실이다. 한국 교회의 더 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를 만난 적이 없는 다
음 세대들에게도 여전히 효용
성과 현실적 유익을 끼치는 자료가 되어 다가
갈 수 있도록 그의 설교에 대한 학문적 연구와 그의 설교의 이 시대에의 효
용성 등을 밝히는 연구가 여러 설교학도들에 의하여 지속적으로, 그리고 전
략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