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전장연 여름수련회를 마치고|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는 도구_나택권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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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전장연 여름수련회를 마치고

하나님의 손에 쓰임 받는 도구

나택권 장로·호산나교회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자”란 주제로 열린 수련회는 은혜 중에 막을 내리
고 또 내년 수련회를 기약하며 회원 모두가 아쉬움의 발걸음을 모두 옮겼다.
이번 수련회의 주제는 빠르게 변화되고 있는 사회 현상에 맞추어 장로님들
의 영적 상태와 지도력과 도덕성의 변화를 촉구하는 의미로 선정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수련회에 참석한 모든 장로 회원들이 강사들이 주신 말씀에 귀를 쫑긋 세우
고 온 마음으로 들었다면 그 에너지로서도 속도를 가속화하여 사회, 교회, 
가정에 부끄럽지 않는 지도자로 변화 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흐른다. 아무것도 한결 같은 존재로 머물러 있
지 않는다”고 했다. 세상도 변하고 인간도 변하고 사회도 변하고 교회도 변
하고 있는데 나는 아직도 과거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변화에 둔한 상태
로 머물러 있어야 할 것인지 
한 번 생각할 문제이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한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이 세상을 본받지 않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는 
것이라고(롬 12:2) 말했다.
금번 수련회의 주제도 주님의 성품을 닮자고 했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보좌
를 버리시고 몸소 겸손과 사랑의 모본(模本)을 보여주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자고 한 것으로 여겨진다.
의학계에 의하면 인간의 세포는 끊임없이 교체하고 있다고 한다. 즉 11개월
에 한 번 몸의 세포는 완전히 다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우리의 육신의 세
포도 이렇게 교체를 통하여 변화되는데 영적인 내가 변화되지 못하고 과거
와 현재에 붙잡혀서 밝은 미래를 창조하지 못한다는 것은 참 부끄러운 사실
이다.

1. 받은 은혜 결단으로 연결하자

이번 수련회를 통하여 각자 받은 은혜가 무엇인가? 각자 받은 마음의 충격
은 무엇인가? 그 은혜와 충격을 잊지 말고 속히 결단하여 변화된 삶으로 연
결해 나가자.
기독교 교회의 존립 체제를 확인한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저서 ‘고백론’
에서 그는 육욕에 사로 잡혔던 자기 자신에 대한 과거를 고백
하고 있는데 그
가 32세 때 회개를 하면서 어머니 모니카 신앙의 영향을 받게 되어 기독교
에 눈을 띄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32세 되는 해 8월 어느 날 그가 신에게 호소하기를 “하나님이여! 왜 저를 
멸망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지 않는 것입니까? 저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
까?”라고 외치며 그는 매일 괴로운 마음의 회한 속에서 울고 있었다고 했
다. 그때 이웃집으로부터 “잡아! 읽어! 읽어!”라는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반복해서 들려왔다. 그 소리는 그의 마음에 충격을 주어 그에게 성경을 손
에 잡게 했고 눈에 띄는 첫 장을 읽게 했다.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질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3-14)는 구절이었다. 이 말씀은 그의 이기적인 마음에 큰 동요를 일으켰
고 완전히 변화를 주어 그 후 그의 삶은 경건과 영적인 삶으로 변화되었다
고 한다. 
성경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엡 4:22)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된다(고후 5:17)고 
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
님께서 개입하시면 말씀 속에서 완전히 새로운 피조
물이 되는 것이다. 
이번 수련회를 통하여 직간접적으로 받은 그 충격을 변화의 씨앗으로 삼자. 
우리가 받은 말씀의 충격은 능히 우리의 옛 구습을 좇는 옛사람들을 벗어 던
지고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믿는다. 말씀 앞에 
무릎 꿇자 그리고 기도하자. 우리가 완전히 변화되어 경건과 영적인 삶으로 
변화될 때까지…..

2. 더 겸손한 위치에서 일하자

성경은 교만하면 낮아지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는다고 했다(잠 
29:23). 그 이유는 교만한 마음은 그를 패망의 길로 인도하지만 겸손은 그
를 존귀의 길로 이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항상 자신을 돌아보고 무
엇보다도 자신을 지으셨고 살게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보잘 것 없는 
자라는 사실을 알고 겸손하게 살아야 한다. 장로의 자리는 더욱 더 겸손의 
위치이며 섬김을 받는 위치가 아니라 섬기는 위치에 있다. 누가 나에게 대접
해 주기를 기대하지 말고 내가 남을 대접하기를 즐겨하자.

3. 돌보고 사랑하는 일에 전력하자

예수님께서 부할하시고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 
잡는 일곱 제자에게 나타나셔
서 제자와 함께 손수 준비하신 아침식사 후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이 
모든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고 3번 질문하셨다. 베드로 역시 주님
을 사랑한다고 3번 대답하였다. 여기에서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돌보아라. 내 양을 먹이라”고 분부하셨다. 
어떤 신학자는 세 가지 경우를 이렇게 설명했다.
처음 사용된 양은 어린양 즉 갓 태어난 나보다 유치한 사람을 말한다. 나보
다 수준이 낮은 사람에 대하여는 깔보기가 쉽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
나 예수님은 이러한 형편에 있는 사람까지도 반드시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고 하셨다. 
두 번째 양은 청년기에 있는 양으로 나와 수준이 비슷한 사람을 말한다. 나
와 수준이 비슷한 사람은 경쟁관계에 있는 자로서 사랑하기란 참 어려운 문
제이다. 그러함에도 예수님은 사랑하라고 하셨고 돌보라고 하셨다. 
세 번째 양은 나보다 수준이 훨씬 높은 사람을 말한다. 나보다 수준이 나은 
사람에 대하여는 굴종의 대상, 질시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렇지만 예수님
은 모든 사람을 구별하지 말고 사랑의 대상으로 삼고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
고 하셨다. 
교회가 부흥하면 성도의 수가 증가한다. 교인의 수가 증가하는 것도 매우 중
요하지만 못지 않게 성도를 보살피는 일 또한 중요하다. 각종 교회 행정을 
통하여 목회자와 함께 성도를 보살피는 일, 이 일에는 자상함과 편견 없는 
보살핌이 중요하다.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온전히 이룬 것이나 다름없으며
(롬 13:8)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롬 13:10) 하였다.

4. “다 이루었다” 유언할 수 있는 인생으로 살자

사람은 죽기 전에 세 가지 후회를 한다고 한다. 첫 번째가 좀 더 참을 걸, 
두 번째가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그리고 내 눈앞에 있는 사람들
에게 좀 더 주었으면 좋았을 걸, 세 번째가 좀 더 귀한 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라고… 우리 인생에 있어서 후회 없는 삶을 위하여 우리 모두 최선을 
다하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삶을 이 땅 위에서 33년이란 짧은 생을 사셨지만 아낌
도 없이 몸소 실천하시며 살으셨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자녀 주님의 제자라
면 낭비 없이 조금도 아낌없이 실천하면서 살아갈 때 우리도 죽을 때 유언
이 “다 이루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을 
눈치보는 현재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자리로, 하나님의 일
을 위해서는 민감한 책임감으로, 자기 중심의 태도와 욕심에서 돌이켜 하나
님 나라에 부합하는 삶을 살도록 우리 모두 다시 한번 힘을 내야 한다. 뽑아
야 할 쓴 뿌리와 못된 습관을 이제나저제나 타이밍만 신경 쓰다가는 뽑지 못
한다. 신속한 결단과 행동이 필요하다. 지도자의 삶이란 겸손과 사랑으로 닦
을 때에야 본래의 빛을 발하는 신비한 보석이 되는 것이다.

5. 교인들의 시범자가 되자

1) 장로는 양 무리의 뒤에서 양 무리에게 앞으로 가라고 호령하는 것이 아니
고 앞에 가면서 나를 따르라고 해야 한다. 성경에 양들 앞에서 걸어가면 양
들은 목자의 음성을 알기 때문에 그의 뒤를 따른다고(요 10:4)하였다. 
여호수아 3장과 6장에 보면 여리고를 함락시킬 때에 장로와 지도자들이 일
반 백성보다 앞에서 행동했다. 장로가 교인들의 뒤를 따라 가면 존경을 받
지 못한다. 신앙 생활은 앞서야 되고 뒤에서 따라 가는 것은 좋지 않다.
중동 전쟁이 일어났을 때마다 이스라엘과 아랍에서 포로를 잡기도 하고 포
로가 되기도 하는데 이스라엘이 잡은 아랍 포로는 대부분 
졸병들이고 아람
이 잡은 이스라엘 포로 중에는 장성급과 고급 장교가 많았다고 한다. 이것
은 아랍 장교는 뒤에서 싸웠고 이스라엘의 장교는 앞에서 싸웠다는 결론이
다. 
소수의 군인으로서도 전쟁 때마다 승리하는 이스라엘은 바로 이와 같은 앞장
서서 싸우는 지휘자들 때문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양 무리의 앞에서 나를 따
르라고 하면서 나아가는 자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2) 장로는 양무리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의 본(本)으로써 다스리고 
돌보는 자이다(벧전 5:3). 말하는 것이나 행하는 것을 교인들이 본받고자 
할 때 진정한 지도자, 장로가 될 수 있다. 교인들이 따라 오지 않을 때 지도
자라는 직위는 가지고 있을지 모르나 더 이상 지도자는 아니다. 
바울 사도는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 받는 
자 되라(고전 11:1)고 고린도 교회에 대하여 권면하였다. 빌립보서에는 “형
제들아 너희 함께 나를 본 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 같이 그대로 행
하는 자들을 보이라”(빌 3:17)고 성도들을 격려하고 권면하는 모범적인 신
앙을 엿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들의 현실 생활 가운데서 항상 그리
스도의 영광과 은혜를 구하
며 또 그 영광과 은혜를 먼저 남들에게 나타낼 수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할 
것으로 교훈하고 있다.
3) 목사와 장로가 부여받은 지도권은 정치적 권세 행사도 아니고 집단적인 
독재 정치도 아니고 일인의 카리스마적 통제도 아니다라는 것을 명심할 필요
가 있다. 그저 섬기는 종으로서 충성스럽게 일할 뿐 그 어떠한 특권도 없
다. 
맥케인은 거룩한 사람은 하나님의 손에 들려 있는 무서운 도구라고 했다. 하
나님의 쓰임 받는 도구가 되기 위해 존귀하고 거룩한 그릇이 먼저 되자. 그
리고 사역 현장에서 일꾼으로 일하는 모습을 입체적으로 나타내 보이자. 
그렇게 함으로써 금년 여름 수련회의 주제인 ‘예수님을 닮아가자’라는 표
어에 걸 맞는 모임의 열매로 나타나 보일 때 충성된 종이라고 부르시지 않을
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