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설립25주년특집|복음주의 관점에서 본 연합운동과 합신의 역할_김명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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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설립25주년특집

편집자주 : 교단설립 25주년을 맞아 우리 교단의 현 주소와 향후 방향성을 
함께 생각하는 기회를 갖고자 25주년 대회에서 개최하는 
포럼 중에서 발표되는 발제 원고들을 모았다. 이번 호에는 ① 김명혁 목사
의 “복음주의 관점에서 본 연합 운동과 합신 교단의 역할”과 
② 윤석희 목사의 “합신교단 제25주년의 역사적 평가”를 게재한다.

<교단설립 25주년대회 포럼 발제 1>

복음주의 관점에서 본 연합운동과 합신의 역할 

김명혁 목사_강변교회 담임쪾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

오늘 우리 사회와 교회가 당면한 문제 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세속화의 문제
와 함께 분열 갈등 및 양극화의 문제이다. 분열과 갈등과 양극화의 문제는 
신라와 백제 시대로 소급할 수 있는 역사적이고 민족적인 문제이다. 역사적 
지역주의와 배타적인 민족주의가 사회적 양극화의 근원적인 문제이며 신학
적 논쟁과 교파적 경쟁이 교회적 양극화의 중요한 문제이다
. 내 지역과 내 
파와 내 생각과 내 신학과 내 신앙만이 절대로 옳다는 배타적이고 독선적인 
주장에서 모든 종류의 양극화는 비롯한다. 

지금 한국 교회와 정치 사회는 극단적인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 그래서 정
치권은 저마다 양극화를 극복하여야 한다고 소리를 지르고 있지만 그 소리들
마저 양극화를 해소하기보다는 부추기는 것 같이 보인다. 교계의 지도자들
도 연합과 일치를 오래 전부터 주장은 해오지만 보혁의 갈등은 해소되기보다
는 심화되는 것 같다. 그래서 한기총의 대표 회장으로 새로 취임한 박종순 
목사는 ‘화해와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것을 새해의 목표로 삼았다. 올바
른 설정이다. 

나는 여기서 연합과 화해와 균형과 조화에 대한 ‘원리적인’ 이야기를 하
기보다는 하나의 ‘고백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지금 한국이 처한 정
치 사회 교회적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분석할 때 정치 사회 교회 안에 연합
과 화해와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너무 어렵게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
하고 하나의 개인적인 ‘고백’을 피력해 본다. 
이와 같은 하나의 개인적인 고백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바
r
리새주의적인 위선의 잘못을 범할 가능성이 많음을 인정한다. 그래서 나는 
최근에는 긍정적인 글 이외에 문제성이 있는 주제의 글을 쓰는 것을 싫어하
게 되었다. 그러나 할 수 없이 여기 하나의 ‘고백적인’ 글을 쓴다. 

첫째, 나는 본래 근본주의에 가까운 극단적인 보수주의를 지향하던 보수적
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에큐메니칼 신학이나 자유주의 신학이나 오순절주의 
신학은 무조건 비판하고 반대했다. 교회사를 전공했고 특히 어거스틴을 전공
했는 데도 그러했다. 그러나 나는 차츰 어거스틴의 양면성과 포괄성을 보다 
깊이 배우면서, 존 스토트 박사의 균형과 조화의 사상을 보다 긍정적으로 수
용하면서, 신학적 배타성과 독선성을 조금씩 포기하게 되었다. 
결국 나는 최근에는 칼빈도 절대로 옳은 것은 아니고 루터도 절대로 옳은 것
은 아니고 웨슬레도 절대로 옳은 것은 아니라고 중얼거리게 되었다. 이단이 
아니라면 모두에게서 배울 수 있다는 포용적인 입장까지 취하게 되었다. 

둘째, 나는 본래 여러 사람들과 사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내성적인 
사람이었다. 자기와 성향이 맞지 않는 사람들과의 사귐은 더욱 더 
힘들어 했
다. 그래서 북한 사람은 물론 일본 사람도 중국 사람도 러시아 사람도 싫어
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인생은 만남”이라고 말하면서 여러 종류
의 사람들과 만나서 사귀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사람들에게는 모두 나름
대로의 인간미와 종교성이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북한 사람은 물론 일본 사람도 중국 사람도 러시아 사람도 좋아
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모슬렘 사람들도 좋아하게 되었다. 결국 내가 비판하
던 소위 자유주의에 속한 사람들과도 친하게 사귀게 되었고 보혁 인사들의 
사귐의 중매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셋째, 나는 본래 학문 연구와 신학 연구에 몰두하던 사변적인 사람이었다. 
그러나 차츰 사람들과 만나서 함께 일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다. 교수의 일
을 하면서도 목회 사역을 겸하게 되었고 선교와 구제와 봉사와 연합과 평화 
사역에까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게 되었으며 일의 중요함과 즐거움을 배우
게 되었다. 
그러면서 나는 “설교는 은이고 신학은 동이고 삶은 금이다”라는 말을 중얼
거리게 되었다. 따라서 목회와 선교와 구제와 봉사와 연합과 평화 사역을 수

하는 가운데 통합측에 속한 수많은 교회 지도자들과는 물론 내가 비판하
던 강원용 목사님을 비롯한 기장 측에 속한 분들과도 조용기 목사님을 비롯
한 순복음에 속한 분들과도 친밀한 교제와 협력을 이루게 되었다. 

넷째, 나는 우리 신앙의 선배들이 지녔던 순수한 신앙과 포용적인 사랑의 삶
을 새롭게 되돌아보고 배우는 가운데 교회와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보다 폭 
넓은 이해와 동정과 사랑을 지니게 되었다. 특히 성 프랜시스의 섬김의 신앙
과 사랑의 삶을 새롭게 되돌아보고 배우는 가운데, 손양원 목사 등 신앙의 
선배들의 순수한 신앙과 희생적인 사랑의 삶을 새롭게 되돌아보고 배우는 가
운데, 나는 교회와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보다 폭 넓은 이해와 동정과 사랑
을 지니게 되었다.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지역주의는 물론 인종주의도 민족주의도 국가주의도 
넘어서서 모두를 품고 모두를 사랑하며 모두를 구원하려고 했다. 나는 우리 
신앙의 선배들의 삶과 죽음을 되돌아보면서 처절한 고뇌와 절망적인 부끄러
움을 느끼게 되었다. 

다섯째, 나는 진리와 성결을 유지하기 위해 분리의 타당성을 인정하면서도 
우리 나라와 
같은 조그만 나라에 장로교회가 100여 개 이상으로 나뉘어져서 
대립하고 경쟁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받아드릴 수 없는 죄악임을 알게 
되었다. 분파의 죄는 배교의 죄와 같은 죄라고 누군가가 말하지 않았던가! 
그래서 나는 내가 분열의 죄를 조장한 ‘원 죄인’임을 공개적으로 고백하
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비판하고 떠나온 합동측 교단에 대
해서 항상 죄송하고 빚진 마음을 지니고 있으며 내가 비판하던 기장측이나 
순복음측에 대해서도 죄송한 마음을 지니면서 교제와 협력을 힘쓰고 있다. 
비슷한 교단끼리 강도사와 목사를 서로 인정하며 교류하기를 바라고 때가 
될 때 합동을 추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여섯째, 나는 대부분의 경우 분열과 분파를 조장하는 것이 복음의 본질이 
아닌 정치 사회적인 이슈에 집착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교회가 정치 사
회 문화 일반에 복음적 영향을 미치면서 폭 넓게 참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만, 편향적으로 치우치면 교회는 반드시 분열하고 양극화로 치닫게 된다. 
나는 이 점에 있어서 세 단계의 개인적인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로잔 이전
에는 정치 사회 참여를 비판적으로 
보았고, 로잔 이후에는 긍정적으로 보면
서 박정희 정부와 전두환 정부를 비판했는데, 9.11 이후에는 차츰 정치 참여
를 부정적으로 보게 되었다. 결국 교회는 복음에 집착하여야 함을 늦게나마 
발견하고 깨닫게 되었다. 교회가 진정한 영적 각성을 체험하고 복음적 선교
에 매진할 때만 연합과 협력을 이룬다. 

일곱째, 나는 대부분의 경우 분열과 분파를 조장하는 것이 자기 개인의 입
장과 자기 개인의 지위와 자기 개인의 자리와 자기 개인의 명예에 집착하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성임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일을 하기 위해서 때로는 지위
와 자리를 차지하여야 함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위와 자리와 명예에 집착하게 될 때,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서
로 높아지려고 하며 서로 다투게 된다. 
한국교회는 지금 커지기를 바라고 높아지기를 바라고 강해지기를 바라는 것 
같다. 대형화와 세력화를 지향할 때 교회는 세속화와 분파화로 치닫는다. 그
래서 나는 최근에 “복음은 약한 것인데, 복음은 착한 것인데, 복음은 주변
적인 것인데…”라고 중얼거린다. 

여덟째, 연합과 화해와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오늘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분석할 때 그것이 가능하다고 쉽게 말하기는 힘들다. 그
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국교회 안에 연합과 화해와 균형과 조화를 이루도
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우리와 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
(요17:11)가 주님의 마지막 기도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1)서로 만나서 교류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2)자기의 신
학적 입장을 상대화하고 상대방의 신학적 입장을 포용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
다. 3)비판과 경쟁을 지양하고 다양성 가운데 조화를 이루도록 힘써야 할 것
이다. 4)함께 일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5)비슷한 교단들의 통폐합을 힘쓰
며 비슷한 연합 기관들의 통폐합도 힘써야 할 것이다. 
아홉째,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도저히 하나 될 수 없는 ‘극단적인’ 주장들
이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재건파적인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주장과 함께 
종교다원주의적인 포용적이고 사회, 문화주의적인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
러나 대부분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대부분의 ‘비 극단적인’ 사람들이 교
제와 협력을 힘쓰므로 소수의 ‘극단적인’ 사람들의 
주장들을 잠잠케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다양한 교단의 지도자들과 개인적인 교제를 나누고 한기총의 지도자들
이나 KNCC의 지도자들과 개인적인 교제를 나누는 가운데 신앙적인 입장에서 
‘연합’과 ‘협력’을 이루지 못할 이유를 별로 발견하지 못한다. “성령
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고 하신 주님의 명령을 조금이
라도 지킬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열째, 합신 교단의 역할은 분열 갈등 및 양극화로 치닫고 있는 한국 교회
와 사회 안에 연합과 화해와 균형과 조화 운동을 일으키는 중매자와 화해자
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사하고 다행한 일은 그 동안 우리 합
신 교단이 한국 교회로부터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고 신뢰를 얻게 된 것이
다. 그래서 중매 혹은 화해자의 역할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 죄송하지만 나는 지난번 부활절연합예배를 준비하
는 일에 중매자와 화해자의 역할을 했었는데 깨질 뻔 깨질 뻔하던 연합예배
가 부족하지만 나와 손인웅 목사의 중매와 화해의 역할로 한기총 한교협 순
복음 등이 양보와 양해와 연합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너
무나 다행하고 감사
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