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직자수련회특강| 신자들의 궁극적 양식과 하나님의 말씀_김영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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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자수련회특강

신자들의 궁극적 양식과 하나님의 말씀

김영규 목사
뉴욕학술원 회원
개혁주의성경연구소 소장

| 신명기 8장 2- 6절 |

창조이래 교회는 존재해 왔고, 하나님께서 교회를 가르치는 내용도 질적으
로 큰 발전이 있는 것이 아님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에 있어
서 발전이 있다는 것은 약간 서두른 개념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회의 
본질을 가장 잘 나타내는 은혜언약의 내용인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 되
시고 우리는 그의 백성이 되는 내용’은 계속해서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완성이 되지 않은 교회를 위한 계시의 내용으로 모든 시대에 계시되어 왔지
만, 우리의 하나님이 최고의 상급으로 계시되는 일은 창세기 15장 1절에서 
아브라함에게 처음이요 마지막이었습니다. 
칼빈 이래 하나님이 ‘너의 지극히 큰 보상’이라는 이 본문은 우리 장로교
회의 성경인 제네바 성경을 필두로 하여 개혁교회 안에서 ‘오직 하나님 

에서 우리 선(善)들의 최고의 그리고 가장 완전한 충만이 있다’는 가장 중
요한 신앙고백의 기초가 되어 왔습니다. 
로마서에 나타난 사도 바울의 가르침 중에 몇 가지 말씀들은 오늘날 우리의 
연약한 교회나 시대 혹은 성공적 교회의 정체성을 완전히 뿌리 채 흔드는 말
씀이 되기 때문에, 종종 설교의 말씀으로 선포되는 것으로부터 제외되거나 
왜곡되게 해석하여 영원히 땅에 묻혀 버리는 경우가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연약함이 말씀을 왜곡시켜

로마서는 유대인들에게 뿐만 아니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물론 로마
서 3장에 나타난 극단적 궤변론자들에 대한 대답이기도 합니다. 그 궤변론자
들에 의하면,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하리요? 그
리고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신 것이 아니냐? 나의 거짓말로 하나
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으면 어찌 나도 죄인처럼 심판
을 받으리요? 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들을 대상하여 사도 바울은 그의 논박
을 차근차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어떤 불의든 반드시 심판이 있다. 창세로부터 만물 안에 하나님의 속성들
과 
지식들을 분명히 보여 주셨음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은 스스로 불의
들에 대해서 핑계할 수 없다. 그들의 죄들로 내버려두어 죄들로 인한 스스
로 보응을 받도록 길이 참으신다. 유대인들에게는 은혜를 더하여 거기에 하
나님의 말씀을 주셨지만, 그런 은혜를 받지 못한 이방인들에게 더 부끄럼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들에 대한 신뢰를 버리시지 않으셨다. 이는 이방인들처
럼 그들도 여전히 죄인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죄인이었을 때, 차별이 없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으니,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난 의다. 율법이 있기 전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일할 것이 없는 그
런 믿음에 의한 의에 기초하였다. 그렇게 유대인들이든, 이방인들이든 그리
스도 안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입었다면, 더욱 더 죄를 지을 수 없다
(롬 6:1,15). 이는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서 죽었고 그런 그리스도의 죽
으심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여전히 곤고한 자로 남아 있는 자들에게 율법이 죄들을 지적하지만, 그리스
도 안에서 결코 정죄함은 없다. 그러나 율법의 요구들을 이루도록 모든 것
이 이루어 질 영생의 때까지 그리스도의 
영이 도우신다. 결국 하나님의 작정
에 따라 그리스도의 형상과 동일한 형상을 얻기 위해서 예정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신 대로,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불가항
력적이다. 
유대인들과 헬라인들로부터 온 참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오직 하
나님의 의지에만 원인이 있다. 그의 사랑하는 택한 자들 중 이방인들의 수
가 차기까지 이스라엘은 완악하여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었던 
것처럼,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다. 그런 역사의 비밀 안에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 그 판단과 그의 길이 있다.> 

그런 하나님 앞에 사도 바울은 결론적으로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롬 11:35)라고 되묻고 있습니다. 그 대답으로 모든 것들이 다 하나
님으로부터 나와 하나님께 돌아간다(롬 11:36)고 하였습니다. 역시 욥기의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것들의 신비의 원인자로 자
신을 증거하시고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갚게 하였느냐? 온 천하에 있
는 것이 내 것이니라”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만이 유일한 구원의 원인

이런 하나님의 말씀은 이미 욥을 책망하는 엘리후의 말 가운데 확인이 되고 
있습니다. 범죄하고 죄악이 관영해도 하나님께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하
고 “네가 의로운들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겠으며 그가 네 손에서 무엇을 받
으시겠느냐? 네 악은 너와 같은 사람이나 해할 따름이요 네 의는 인생이나 
유익하게 할 뿐이니라”(욥 35:6-8)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이 화자가 욥기 처음에서 언급되고 있는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일어난 욥의 
고난에 대한 깊고 다양한 원인들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
도 불구하고 먼저 하나님에 대한 욥의 불평과 쟁변에 대해서 하나님은 구원
하시기를 원하시고 좀더 긍휼과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서 반복하여 말씀하시
기도 하고 모든 일들을 행하신다고 변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서와 같
이 하나님으로부터 악이 나오지 않고 항상 공의를 행하시사 피조물이 스스
로 보응을 받도록 하신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산상보훈처럼 그의 사랑과 은
혜는 피조물들 사이에 차별이 없으
시고 우리를 교육하시기를 땅의 짐승에게 하심보다 더하시며 우리에게 지혜
주시기를 공중의 새에게 주심보다 더하시는 것처럼 다만 그의 자비로 기다리
실 뿐이라고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 대신 스스로 곤고한 자가 되어 의를 하
나님께 돌리는 경배를 행하고 하나님의 하신 일을 찬송할 것을 권하고 있습
니다(욥 36:3,24). 

선하심의 극치이신 하나님

속성들에 있어서 가감되지 않으시며 사랑과 은혜와 자비만을 베푸시는 하나
님에 대한 엘리후의 지식은 자신에 관한 하나님의 결론적 말씀의 핵심과 상
당히 일치함을 비교해 주고 있으며 나아가 이스라엘 밖에도 그런 지식의 소
유자가 있음을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서 있고 존재하는 것으로 이미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고 존재의 가치를 크
게 하기 위해서 사용되는 자연과 섭리의 수단들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더
하는 역사적인 증거로 남아 있는 이상, 그런 은혜들을 받기만 한 자로 있기 
때문에 그런 계시들을 목격하고 그의 말씀을 들으며 그로부터 감사하고 영광
을 돌리는 일만이 남아 있다고 결론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로마서의 
가르침이나 욥기의 가르침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없음을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모든 역사에 있어서 하나님의 속성들이 
가감되지 않는다는 사실로 인하여 인간 스스로의 의나 공로에 대한 근거가 
전혀 없어진 셈입니다. 

인간의 의나 공로는 근거 없어

그러면 로마서와 욥기 사이에 차이는 무엇입니까? 욥기는 변명할 수 없이 충
분하고 판명한 일반적인 하나님의 계시에 기초한 하나님의 지식에 관한 것
이 기본적인 내용으로 포함되어 있지만, 로마서에서 일반적인 하나님의 계
시 이외에도 거기에서 전달될 수 없고 이스라엘을 통해서만 선포되어 왔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것이 주 내용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에서는 그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참된 양식으로 표현되어 있
지 않습니다. 율법이나 계명의 기능이 죄를 깨닫고 죄를 죄 되게 하는 기능
에 제한되어 있습니다. 욥기에서도 다만 “내 발이 그의 걸음을 잡고 그의 
길을 지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내가 그의 입술의 명령과 그의 규례로부터 
떠나지 않으며 내가 그의 입의 말을 간직하였다. 이것은 일정하니 누가 돌이
킬까? 그의 마음이 하고
자 하여 그가 행하신다”(욥 23:12-13)는 욥의 말이 
기록되어 있을 뿐입니다. 
오늘날 히브리어 원문(MT)에는 일부 번역이나 우리 말 번역처럼 “일정한 음
식보다 그 입의 말씀을 귀히 여겼구나”라고 표현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음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인용하신 말씀 속에서
만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신성에 따라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분으로서 인성을 입으시사 극한 굶주림
에 처하여 있을 때 예수님은 그의 참된 양식에 대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때 그리스도께서 지금 신명기 8장 3절에 의해서 마귀의 시험을 이기셨습니
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야곱의 우물가에서 어떤 사마리아 여인과 만난 
자리에서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
루는 이것이니이다”고 말씀하셨을 때, 그의 양식이 무엇인지를 다시 확인
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만이 유일한 구원의 방도

히브리서 10장 9절의 가르침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의식법으로서 율법은 그리
스도 안에서 폐하여졌으나, 십계명과 같은 거룩하고 신령한 법으로서 율법
은 폐하여진 것이 아니라, 그
리스도께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셨음으로 그런 
율법을 오히려 굳게 세우신 것입니다(롬 3:30). 율법에 의해서 스스로 의인
이 되게 하는 일이 일어나거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된 자가 율법에 의해
서 정죄받는 일은 없으나, 하나님의 거룩한 선한 뜻으로서 율법은 우리의 매
일 양식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명기 8장의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원리가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시험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동안 시험을 받은 
것은 그런 참된 양식에 대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시험이 중요한 것은 그
런 광야생활에서의 양식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
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신 8:12-13)에 무엇이 양식인지
를 알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마치 아담이 하나님의 선물로 받은 에덴동산과 창조된 자연 속에 살
도록 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고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
도록 하는 
참된 양식에 대한 말씀이 있었던 것과 같았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서 율법의 모든 요구가 성취되어 더 이상 율법에 의한 정죄가 없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에 대해서 살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
나님에 대해서 살도록 하는 삶의 형식은 무엇이겠습니까? 
유일한 생명의 원인으로 주어진 말씀

확실히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은혜로만 살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말씀
으로 사는 복된 삶의 형식일 것입니다. 창조이래 인류를 향한 역사와 제사장
의 나라 이스라엘 안에서 이루신 역사 및 그리스도의 구원의 성취에 이르기
까지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 앞에서 창조된 사람의 참된 양식
에 관한 것이라면, 그 양식은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 재물을 얻었
다” 함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신 
8:17-18)이라는 복의 내용과 관련되어 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1-27절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
니이다”라고 베드로가 대답하였을 때, 주는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
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고 하였습니
다. 복이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일하심이 복입니다. 

말씀 성취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

우리 본문에서도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모든 역사들이 우리에게 우리의 참
된 양식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임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모든 기적
들과 만나가 비유이듯이 창조를 통해서 각인된 우리의 매일 양식도 비유라
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매일 양식으로 주신 것은 그것을 통해서 진정한 
복을 주시기 위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매일 일하심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선포된 말씀들이 우리의 참된 양식이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
께서 그의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서 일하시는 뜻이 그 매 말씀에 표현되어 있
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양식만이 우리의 진정한 양식이요 하나님이 가
장 큰 복을 누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조될 때나 이스라엘이 출애굽 될 때나 마지막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으로 
부름을 받을 때나 하나님의 뜻을 매일 양식으로 먹는 자로 초대되었다는 것
이 하나님의 마지막 복에 관한 초대라고 설명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명령하시지 않고 설명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좋은 것을 주실 

때 가장 좋은 방식으로 주시고자 하는 뜻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런 복의 실
제적 내용이 내 안에 이루어지고 있다면, 그것은 인류에게 내리신 최대 마지
막 기적이요 복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