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K 캠프를 마치고| “더이상 부끄럽지 않은 P.K”_손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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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이상 부끄럽지 않은 P.K”

손지현 (2 / 아름다운호산나교회)

 

나는 중학교 때부터 P.K로서의 삶을 강요받았다. 교회의 집사님이시던 중1 담임선생님께서는 나의 잘못을 꾸짖으시던 중 “아빠가 목사님이신데,,.” 이런 얘기를 했다. 또 중2 담임선생님은 신기한 직업이라 여겼는지 수업시간에 자주 아빠가 ‘목사란다’ 라는 얘기를 꺼냈고 큰 교회에서 개척교회로 나올 그즈음, 숨긴 적은 없지만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내가 목사의 딸, 즉 P.K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다 세계사 수업 중 중세시대의 비윤리적이고 탐욕적인 기독교를 비판하던 선생님이 나의 눈치를 살피는 것을 자주 느꼈다. 또 아이들은 그 시대의 신부, 목사를 아빠에 대입시켜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때부터 점차 아빠가 목사라는 것이, 내가 목사의 딸이라는 사실이 부끄럽고 상처가 되기 시작했다. 중3이 되어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하였는데 상담 중 부모님의 직업에 대해 말하게 되었다.

나는 아빠가 목사라는 것이 싫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이 마음을 모를 것 이라며 눈물을 보였다. 이제는 정말 완전히 숨기고 싶은 비밀, 상처가 되어버린 것 이다. 내가 잘못한 것도 부끄러운 일도 원래는 아닌데 말이다. 중3이 되어 이제는 그것을 친구들에게 말하지 않았고 아빠가 교회에서 집에 돌아올 때면 아빠가 회사에서 오셨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때 이미 나는 아빠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 차 있었나보다. 이젠 친구들과 다니던 재미있는 교회도 아니고 늘 외롭고 힘든 교회가 되었다. 정말 교회가 싫었고 설교시간과 찬양도 당연히 하지 않았다.

P.K로서 강요받는 부담감과 중학교 시절의 여러 상처들로 나는 완전히 맘을 닫았고 하나님이란 존재를 의심 했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사이는 원만하지만 아빠의 능력을 탓하게 되었고 엄마가 고생하시는 것 또한 모두 아빠 때문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가끔씩은 ‘아빠도 이렇게 힘든 목회를 원하지는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에 미안함도 들었다.

미안함과 원망감이 늘 내속에서 싸웠던 것 같다. 원망하고 그것이 뭉치고 단단해져 큰 아픔으로 자리 잡았지만 큰 용기를 내어 이 수련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나 같은 아이가 있을 것 이라는 기대도 물론 했다. 역시나 나만의 아픔이 아니었다. 모두들 P.K로서의 바른 삶을 강요받은 적이 있었고 아픔도 가지고 있었다.

혼자만의 고민이라 생각했던 것들을 수련회를 통해 공유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동시에 아빠를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P.K로서의 삶을 강요받은 나도 이렇게 힘든데 목사로서의 그 부담감의 무게는 얼마나 컸을지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엄마, 아빠가 늘 나의 일에 무관심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목회하며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감당하기에 힘들었을 엄마, 아빠가 이해되고 선생님 말씀대로 늘 뒤에서 기도하고 응원하셨을 것 같다.

한편으론 이 모든 아픔에도 굳건한 믿음이 나에게 있었다면 힘들지 않았을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겐 그럴만한 믿음이 아직 없다. 그래도 이번 수련회를 통해 엄마, 아빠를 이해하고 하나님이란 존재를 믿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 믿어질 것 이라는 기대가 생긴 것이 가장 큰 변화인 것 같다.

또 이번 수련회에서 열심히 참여하고 예배드리는 같은 P.K들을 보며 비슷한 환경 속에서 난 불평만하고 부모님을 힘들게 한건 아닌지 반성도 들었다. 정말 부끄러웠다. 이번 수련회는 믿음을 강요받기보다 믿음을 가질 수 있는 마음을 열게 한 수련회였던 것 같고 그것이 나에게 엄청난 변화이다. 이 글을 씀과 동시에 나는 P.K로서의 상처를 다 날려버릴 생각이다. 그리고 이제는 P.K라는 것이 부끄럽지 않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