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도 총회 교직자수련회 강설3|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않으시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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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도 총회 교직자수련회 강설3

2003년 5월 21일(수요일) 22:00 
설교자 : 김성수 목사

본문 : 시편 44:23-26
제목 :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않으시나이다

<이 원고는 2003년 총회교직자수련회 셋째 날 김성수 교수의 강설을 서광신 
목사(경기중노회)가 녹취한 것으로 독자들이 읽기 쉽도록 편집했다. 이 강설
은 이 시대의 목회 방향과 교회가 마땅히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제시한 내
용으로 김 교수의 양해 아래 전문을 게재한다. 혹 입력 과정과 편집 과정에
서 원 강설의 취지를 모호하게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이것
은 전적으로 편집자의 불찰에 의한 것임을 밝힌다. 편집자 주>

새벽시간에 박 목사님께서 정복이라는 말을 쓰지 말라 그래서 군대 얘기를 하
기가 상당히 겁이 납니다. 그래서 제가 오늘 설교하기 이전에는 정복이라는 
말을 꼭 한 단어 쓰는데, 뺏습니다. 하지만 아침에 설교를 들으면서 참 큰 은
혜가 되었고, 하신 말씀 마음에 와 닿았고, 
제가 박 목사님의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결국 동일한 것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이 됩
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면서 시내산에서 그들과 언약
을 맺어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또 율법을 주신 후에 이스라엘을 계수하시
고 조직하신 내용을 유심히 살펴보면 일종의 군대 조직인 것을 알 수 있습니
다. 자세한 내용을 다 말씀드리지 않습니다마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신령한 
전쟁을 수행할 군대로 세워진 것입니다. 
여호수아의 인도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여리고와 아이를 함락 진멸한 다음
에 세겜에 있는 그리심산과 에발산에서 율법을 선포해서 이 땅은 하나님의 법
에 의해 다스려지는 곳이라, 하나님의 통치 영역이라, 그가 다스리시는 나라
가 세워지는 곳이라고 선언하게 하신 일은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이 땅 위
에 세워 가시는 것이 일종의 전쟁이요, 교회는 그의 군대라고 하는 사실을 명
백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후에도 가나안 땅에는 전쟁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이 땅에서 죄악 세력을 
진멸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를 세우는 신령한 전쟁은 다윗 때까지, 다윗
을 
통하여 죄악이 관영한 가나안 땅, 곧 죄악의 세력을 다 굴복시키시고 안식
을 주실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로 이런 영적 전쟁을 위해 세
워진 하나님의 군대로서 전쟁을 수행해야 했던 것입니다.

끊임없이 전쟁에 임한 이스라엘 군대

하나님의 군대인 이스라엘은 자기를 위해 싸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전쟁
을 싸운 것이요, 자기 힘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시는 
전쟁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전쟁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전쟁이라, 전쟁은 하나
님께 속하였다,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시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전쟁은 수가 많다고 이기는 것이 아니요, 수가 적다고 지는 전쟁도 아니었
습니다. 전쟁의 관건은 하나님께서 그의 군대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느냐 함
께 하지 아니하느냐에 달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시편에서도 고백하기
를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우리를 치려 일어나는 자를 주
의 이름으로 밟으리이다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도 나를 
구원치 못하리이다 오직 주께서 우리를 우리 대적에게서 구원하시고 우리를 
미워하는 자로 수치를 
당케 하셨나이다”(5-7)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이스라엘은 때때로 하나님께서 이스라
엘의 군대와 함께 하지 않으시는 일을 경험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
어 싸우는 전쟁이요,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서 친히 싸워주셔야만 승리할 수 
있는 전쟁에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으신다면 얼마나 난감하고 곤혹스러
운 일이겠습니까? 그 절망감과 두려움과 낭패감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습니
까? 대적과 목숨을 건 전쟁을 하는 순간에 하나님께서 침묵하시고 잠잠히 계
신다고 하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볼 수가 있겠습니까? 

전쟁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셔야

시편 기자는 이런 경우를 당하여 느끼는 절망과 낭패감을 하나님께 부르짖어 
아뢰기를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케 하시고 우리 군대와 함께 나
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9)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늘 그랬던 것처
럼 무슨 범죄나 불신앙의 허물이 있어서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는 경우라면 회
개하고 긍휼을 구하기라도 하겠지만 오늘 시편에서 말씀하는 경우는 이런 경
우도 아닌 것으로 보여 집니다. “주께서 
주의 백성을 무료로 파심이여 저희 
값으로 이익을 얻지 못하셨나이다”(12).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대적 앞에서 비겁하게 돌아서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도
살할 양같이 탈취 당하여 열국 중에 흩어진 이스라엘의 모습이 하나님께 아
무 이득이 되지 않을 것 같은데 우리를 버려 욕을 당케 하시는 이는 하나님께
도 욕이 될 터인데, 어찌하여 이스라엘로 이 지경에 내버려두시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주께서 우리로 이웃에게 욕을 당케 하시니 둘러 있는 자가 조소하고 조롱하
나이다 주께서 우리로 열방 중에 말거리가 되게 하시며 민족 중에서 머리 흔
듦을 당케 하셨나이다 나의 능욕이 종일 내 앞에 있으며 수치가 내 얼굴을 덮
었으니 나를 비방하고 후욕하는 소리를 인함”(13-16)이라고 호소하면서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
지 아니하였나이다”(17)라고 시편기자는 아뢰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고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않았음
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막힌 재앙이 임하였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마음이 퇴
축지 아니하고 우
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나 주께서 우리를 시
랑의 처소에서 심히 상해하시고 우리를 사망의 그늘로 덮으셨나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렸거나 우리 손을 이방 신에게 향하여 폈더면 하
나님이 이를 더듬어 내지 아니하셨으리이까 대저 주는 마음의 비밀을 아시나
이다.”
아무리 내 마음과 행동을 살펴보아도 하나님께서 침묵하시고 나를 대적의 수
중에 내버려두시는 까닭을 알 수 없으니 답답하고 기막힌 일이요,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며 도살할 양같이 취급을 당하는 것이 더욱 비참하고 서러
울 뿐입니다.

하나님의 외면 앞에 서 있는 이스라엘

오늘 교회의 형편은 비단 우리 사회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불신 세력에게 
짓밟히고 있지 아니한가 여겨집니다. 개 교회나 또 지역에 따라서 복음의 역
사가 힘있게 일어나며 구원의 은혜가 풍성하게 임하는 곳도 있겠지만 전체적
으로 본다면 교회는 힘을 잃고 깊은 영적 침체 상태에 빠져 있지 않은가 생각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힘있게 전파되며 불신 세력이 무너지는, 하나님을 향하여 높
아진 이론과 철학과 권세와 행사가 문자 
그대로 무너지는 굉음을 들은 지가 
참 기억에 아물아물할 뿐입니다. 기독교 국가라고 일컫든 서구 사회에서 교회
는 오랜 정체기 끝에 오히려 불신 이론이나 풍조나 철학에 밀려서 유명무실해
지지 않았나 여겨집니다. 
물론 겉보기에 가라앉은 것 같은 모습 저 아래에 여전히 신앙의 저력이 도도
하게 흐르고 있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마는 때때로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 같은 새로운 움직임이 있어서 그 소문을 좀 자세
히 들어보면 참으로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긍휼히 여기셔서 복음의 역사를 힘
있게 이어가신다는 느낌보다는 
사람의 잔재주나 새로운 이론의 힘으로 반짝했다가 사라지는 진품이라기보다
는 모조품에 가까운 것들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제가 사실을 제대로 모르고 
폄론하셨다면 용서하십시오. 그저 제가 느끼기에는 그렇다는 말씀입니다. 복
음으로 뭇 심령을 굴복케 하는 전도의 일이나 교회의 성결한 모습, 그 신령
한 힘과 권세로 불신 세력과 당당하게 맞서거나 저들을 압도하는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보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끼니를 굶는 가난 속에서도 목사라는 직분에 대해서 불신자가 
일단 인정하고 
수궁하던 영적 권위는 옛말이 되었고, 사회는 교회의 영적 도덕적 우월성을 
더 이상 기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사회로부터 비웃음과 조롱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그저 제 느낌입니다마는 우리 사회에서 개신교는 여러 종교 
중에 그저 이 등 아니면 삼 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된 원인을 따진다면 어느 한두 가지로 못 박을 수는 없고 여러 가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는 어쨌든 일차
적인 책임은 교회에 돌려야 할 것이요, 교회의 부패와 타락이 부른 불행한 결
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형편과 맞물려서 목회사역에 불리한 여러 
사회적 규제나 경제적인 어려운 여건까지 농촌이나 여러 열악한 환경 등을 합
치면 현재 목회 상황은 형편은 참 사면초과의 형편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비슷한 상황에 처한 한국교회

교회를 하나님의 신령한 전쟁을 수행하는 영적 군대라고 한다고 하면 이 전쟁
에서 이미 패색이 짙고 하나님의 군대로서 그 사기는 땅 바닥에 떨어졌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평안의 복음으로 그리고 그 성결함으로 죄의 세력을 진멸
해야 
할 교회가 안타깝게도 안팎의 죄의 세력과 싸우는 신령한 전쟁에서 너무
나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 이르기 훨씬 전 교회의 외적 성장세가 여전할 때에 이미 교회 내
에 영적 윤리적 위험 요소를 감지하고 염려하던 분들이 없지 않았고, 이에 대
한 분명한 경고와 반대의 소리를 내었던 분들 중에 일부에 의해서 개혁 교단
과 합동신학교가 시작되었으며 이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우리가 한 교
단의 울타리 속에서 큰 흐름에 동승하고는 있으나 개인과 교회의 사정이 각각
인지라 지금까지 지나온 일들에 대한 평가가 다를 것입니다. 
대체로 만족하시는 분도 있을 것이고, 또 불만스러울 분도 계실 것이며, 또 
바라는 것도 각각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시작할 때에 가졌던 그 목표와 
이상을 생각한다고 하면, 세속에 오염된 교회의 모습이 정결하여지기를 바랐
던 그 목표를 생각하면, 교회의 성결을 회복하려 하였던 본래의 목적을 생각
한다고 하면 아마 아무도 100% 만족할 사람은 없으리라 여겨집니다.
더욱이 날로 허망하여져가는 영적 환경을 생각하면 죄악으로 망해 가는 세상
을 향하여 신령한 전쟁을 
벌이도록 부르심을 받은 목적을 생각하면 저들에게 
복음을 힘있게 전파하며 교회의 성결한 아름다움과 영광의 빛을 비추어 저들
로 사모하게 할 그 사명을 생각하면,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이방의 빛이라 
하신 그 말씀을 생각하면 우리 자신의 현재의 모습에 만족할 사람은 아마 없
을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영적 전쟁을 벌일 준비가 되어 있는가 라는 물음 앞에
서 대부분 고개를 가로 저을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고 그 추구했던 목표와 이
상에서 아직은 요원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의 신령한 군대로서 
영적 전쟁을 수행해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바는 아마 오늘 시편 기자의 느낌과 매우 비슷하지 않겠는가 생각됩니
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였으나 역부족이라 생각하든지 나는 나름대로 열과 성
을 다하여 오직 진실과 사랑으로 애를 썼으나 왜, 이 모습에 머무르고 말았는
가, 하나님께서는 왜, 침묵하시는가 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게으르고 악한 종이라고 하는 자책으로 괴로운 저 같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신자 개인으로서나 개 교회로서
는 복음의 강력한 역사와 하나
님의 넘치는 축복과 은혜로 기쁨이 충만할 수도 있겠습니다마는 우리나라나 
세계 전체 교회를 두고 말한다고 하면, 그리고 개인이나 개 교회 다수는 현재
의 상황이 참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군대인 교회와 함께 나아가지 않으시고 침
묵하시는 형편이라 느끼실 것이라 여겨집니다. 

영적 전쟁 앞에 무력해지는 교회들

주께서 우리를 버려 욕을 당케 하시고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
이다 하는 시편 기자의 호소에 대해서 우리 중 대다수는 깊이 공감하리라고 
생각됩니다. 이런 난감하고 곤혹스러운 처지에서 신자 개인으로서나 교회로
서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과연 우리는 이런 형편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
야 하는가? 
신령한 전쟁을 수행해야 하는 그 영적 전쟁의 특수성에 대해서 이미 말씀드렸
습니다마는 이 전쟁에서는 승패가 사람에게 달려 있지 않습니다. 수가 많다
고 이기는 것도 아니요, 수가 적다고 지는 것도 아닙니다. 전쟁의 승리는 오
직 하나님께서 우리 적은 무리와 함께 하시는가 아닌가에 달려 있는 것입니
다. 하나님께서 앞서 우리를 이끌어 나가시며 친히 대적을 멸
하여 나가시는 
이 전쟁에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이러한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가
운데 뒤쫓아가는 것뿐입니다. 
믿음과 순종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걸음을 뒤따를 뿐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친히 힘있게 역사하시고 그 영광과 능력을 나타내실 때에는 뒤따
르는 우리도 힘이 나고 즐겁겠으나 하나님께서 침묵하시고 잠잠하시면 참으
로 낭패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때에는 오히려 모든 일이 내 수중에 있지 
않다는 사실이, 일의 승패가 내 재주와 힘과 지혜와 능력에 달려 있지 않다
는 사실이 더욱 견디기가 어렵습니다. 
차라리 내 힘으로 되는 일이라면 깨지든지 터지든지 만사 벗어 던지고 한번 
달려들기라도 할 것인데, 신령한 전쟁에서는 내 힘으로는 되지 않을 뿐 아니
라 또 내 힘으로 하려고 해서도 안 되니 속수무책이요, 답답하기 그지없는 것
입니다. 대적은 거대한 성과 같이 내 앞에 버티어 서 있고 하나님의 군대는 
이미 패색이 짙어서 사방에서 죽어 넘어지고 사로잡혀 끌려가고 산지사방으
로 흩어져 지리멸렬의 상태에서 내 힘도 쓰지 말라고 하시니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r
앞으로 나아가서 이루어야 할 목표는 요원한데 아직 그 목표를 향해서 한 발
짝도 떼지 못했거나 한 걸음 떼기가 천금같이 무겁다고 하면, 그저 그 자리
에 주저앉아 버리고 싶다고 하면 이런 좌절과 낙심 속에서 도대체 어떤 기대
와 소망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좌절과 낙심만 보여

바로 이런 상황에서 모든 것이 무너지고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은 
형편에서 오늘 시편 기자는 오직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습니다. “주여 깨소
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영히 버리지 마소서 어찌하
여 주의 얼굴을 가리우시고 우리 고난과 압제를 잊으시나이까 우리 영혼은 진
토에 구푸리고 우리 몸은 땅에 붙었나이다 일어나 우리를 도우소서 주의 인자
하심을 인하여 우리를 구속하소서”(23-26). 
우리의 각자 처한 형편과 걸어온 길은 세부적인데 있어서는 각각 다를 것입니
다. 그리고 현재 형편에 대한 생각과 느낌도 다를 것입니다. 나 자신이나 교
회가 무력하게 된 것이, 하나님께서 침묵하시고 잠잠한 것이 내 죄 때문이라
면, 내 불신앙과 게으름과 허물 때문이라고 하면 먼저 우리는 주 앞에 주저앉
아야 
할 것입니다. 
‘내 죄가 주로 외면하시게 하였나이다. 주께서 침묵하시게 하였나이다. 내 죄
의 가증함이 주로 하여금 진노하시게 하였나이다.’ 울부짖으며 통회해야 할 
것입니다. 주의 긍휼과 용서의 은혜를 구하면서 ‘주여 나를 바라보옵소서. 우
리를 버리지 마옵시고 은총을 거두지 마옵소서’라고 탄원해야 할 것입니다. 
혹 오늘 시편 기자와 같이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주의 언약을 어기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아뢸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퇴축치 아니
하고 뒤로 물러서지 아니하고 우리 걸음도 주의 길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
다”라고 아뢸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내가 주의 일하심과 영광을 바라고 순
전한 믿음으로 진실한 사랑과 충성으로 주 앞에 행하였나이다”라고 말 할 분
이 계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믿음이 진실을 지켜왔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침묵하시고 잠잠한 것에 대
하여 그만큼 더 고통스럽고 절망스러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수행하는 신령한 전쟁은 근본적으로 나의 전쟁이 아니고 하나
님의 전쟁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전쟁을 계
획하고 진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원하신 뜻에 따
라 때와 장소와 방법까지 정하시고 이루실 것입니다. 이 전쟁을 이끄시는 진
정한 용사는 우리가 아니요, 하나님이십니다. 사령관이 전쟁 나팔을 불지 않
았는데 전쟁을 시작하거나 돌격을 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다만 한 가지 우리
가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진실하사 그가 약속하신 말씀을 결코 여기지 아니
하시며, 또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
다. 그가 정하신 때에 그가 말씀하신 일들을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약속을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

교회는 최악의 상황에서도 이러한 믿음과 소망 가운데 든든히 설 것이요, 결
코 흔들리거나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인내하며 소망하는 가운데 그
가 이루실 때를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지 간에 통회하며 
간구하는 것이든지, 믿음과 진실을 지키면서 인내와 소망으로 주의 때를 기다
리는 것이든지, 이러한 통회와 간구와 인내와 소망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
는 기도로 반드시 이어져야 합니다. 
오늘 시편기자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는 
일을 그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은 맥 놓고 앉아서 막연하게 기다
리는 것이 아니요,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기다리는 것입니다.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일어나시고 우리를 영영히 버리시지 마
소서.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를 구속하소서. 교회는 안팎에 위기를 당하여 하
나님께 호소할 수 있습니다. 주여 깨소서. 어찌하여 주무시나이까. 교회가 속
수무책으로 떠내려 갈 때에 손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여 호소하
기를 ‘주여 깨어나소서’라고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의 교회로 세상에 패배하여 짓밟히게 마옵소서. 주의 교회의 영광과 권세
를 회복하소서. 주의 거룩한 통치를 이 땅에 이루소서라고 요청할 수 있는 것
입니다. 아니 이런 기도와 요청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일어나 그의 교회를 구
하시면 견고히 세우신 때를 기다리고 바라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이러한 간구를 반드시 들으시는 하나님, 그가 정하신 때에 우리 기도
에 응답하사 능력으로 신령한 전쟁에 나서시는 날, 우리 역시 하나님을 따라 
나시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리고 우리를 치
러 
일어나는 자를 주의 이름으로 밟으리다라는 담대한 믿음으로 우리 안팎에 죄
에 세력과 싸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승리 확신해야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앞서 행하시며 대적을 쳐 흩으시므로 그 크신 능력으
로 이기시고 영광을 나타내시므로 우리가 종일 하나님으로 자랑하였나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영영히 감사하라 하리이다라는 찬송을 부르게 될 것
입니다. 
이스라엘은 사 백년 간 이방 땅에서 종살이하며 출애굽을 기다렸습니다. 흐려
진 진리, 오직 구원으로만 얻는 구원의 도리를 밝히고 세우는데 수 백 년이 
걸렸습니다. 그간에는 수많은 경건한 사람들, 참된 믿음의 은혜를 입은 자들
이 오히려 이단의 누명을 쓰고 죽어 가기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장차 일어
나실 때를 기다리며 침묵하시는 그 기간은 이런 일들을 포함할 수 있는 것입
니다. 
소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진리로 더욱 허리를 든든히 동여야 할 것입니다. 오
늘 이 순간 내 믿음의 행보가 흐트러지지 아니하고 주를 신실하게 따르기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대를 넘어 그 후대 그 후대에 이루실지라도 하나님
께서는 반드시 그 약속하신 
일들을 이루실 것입니다. 

기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엎드린 우리가 모두 패배한 자요, 실패한 자요, 꿇어 
회개할 말 밖에 하나님께 아뢸 것이 없는 자이오나 주께서 계획하신 큰일을 
생각하옵고, 또 그 일을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는 고로 우리가 주께 아뢰고 
요청하나이다. 주의 교회를 불쌍히 여기시고, 주의 교회의 영광과 권세를 온 
세상에 드러내사 세상으로 원망하지 아니하고 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거룩하
신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복음의 빛이 흐려지지 아니하게 하옵시고 진리의 능력이 무너지지 아니하게 
하시고 야하여지지 아니하게 하옵소서. 주의 이름을 위하여 저희들이 간구 하
옵나니 아버지 하나님이여 이 어려운 이 어두운 시대를 불쌍히 여기시고 주
의 구원의 생명의 빛을 밝히 비추어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
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