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장로교 헌법과 한국 장로교 헌법과의 관계_민성기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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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장로교 헌법과 한국 장로교 헌법과의 관계 

민성기목사, 충청노회

1. 머리말
한국 장로교회의 정체성은 장로교 헌법을 철저히 지키고자 할 때 세워지며 장
로교의 독특성이 구별되리라 생각된다. 오직 성경을 원리로 하여 역사적으로 
가장 좋은 정치형태가 심어진 것이 장로정치라 할 수 있다. 현 한국교회 실정
이 개교회주의로 흐르고 있기에 더욱 장로교의 정체성을 찾아야 할 때라 생각
된다. 

장로교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는 교회들이 정치형태는 회중정치를 따르고 있
고 심지어 감독정치, 교황정치형태를 취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유는 한국교
회 현실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교회정치도 이제는 장로정치형태가 아니라 회
중을 이해하고 그들과 함께 세워 나가는 형태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에 편승하여 헌법을 수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지금의 헌법은 
시대적으로 뒤떨어진다는 사고가 자리 잡고 있어 늘 수정되어야 한다는 것이
다. 

지금 우리에게 
당면한 과제는 타교단과 구별되어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왕이
시다’ 라는 원리에 따라 세워졌던 그 헌법 정신을 최소한 회복하는 차원으로 
잘못 개정된 부분들을 되돌릴 뿐만 아니라, 더 엄밀한 선에서 가장 좋은 장로
교 헌법이 되도록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다. 개정된 우리 교단의 헌법은 교회
정치 개정안은 부결되고 권징조례 개정안은 가결됨으로 권징조례에서 교회정
치부분으로 넘어간 많은 내용들이 사라진 상태에 있다. 또한 예배모범에 있
는 내용들이 권징조례에 이중으로 들어 있는 상황이다. 

한국 장로교 헌법의 기초는 미국장로교 헌법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장
로교 헌법과 한국 장로교 헌법과의 관계를 살펴봄으로써 우리 교단 헌법의 자
리를 확인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가장 좋은 장로정치원리에 따라 세워진 헌
법이 있다면 그 선은 최소한 머물러야 할 것이다. 

지면 관계상 헌법 발전 역사를 다 다룰 수 없어 웨스트민스터 규범에 따라 세
워진 미국 장로교 헌법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던 사건들과 미북장로교 선
교사들에 의해 초창기 한국 장로교 헌법이 형성되는 과정에 따라 부정적인 영
향을 준 관계
를 살펴보고, 미국 장로교 헌법과 한국 장로교 헌법(신앙고백부
분과 교회정치)을 비교해 그 차이를 알아본 후 우리 교단 헌법이 갖는 독특성
과 앞으로의 헌법 수정의 방향을 모색해 보기로 하겠다. 

2. 미국장로교 헌법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던 사건들
미국장로교 헌법 발전에 있어 부정적 영향을 끼쳤던 사건들을 열거하면 다음
과 같다. 첫째, 미국장로회가 조직되기 전 뉴잉글랜드 정착초기 교회(매사추
세츠지역)는 엄밀한 칼빈주의 신학 위에 세워진 장로교가 아니라 영국으로부
터 들어간 퓨리탄 칼빈주의에 의해 교회정치에 있어 회중교회적인 교회정치
가 배경이 되어 세워진 회중교회로 장로정치를 선호하는 교인들과의 마찰이 
있었다. 뉴잉글랜드 정착 초기 지도자들인 죤 코튼(Jhon Cotton), 토마스 후
커(Thomas Hooker), 죤 데이븐포트(Jhon Davenport)의 신학은 영국에서 웨스
트민스터 총회시기에 교회정치에 있어 회중교회정치를 주장함으로 문제가 되
어 비판받았다. 

둘째, 윌리엄 테넌트와 그의 아들인 길버트 테넌트(Gilbert Tennent)에 의해 
세워진 통나무대학은 회심과 새로운 삶을 강조하는 감리교식 부흥운동
을 전개
함으로써 장로교가 분열되는 계기를 주게 되었다. 

셋째, 서부개척시대에 따른 목사수급 문제로 인한 컴버랜드노회의 탈퇴(1810
년)는 1801년 회중교회와 연합계획 채택에 따른 정신의 산물로 예정론과 제한
속죄를 포기하여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따르는 미국장로교로부터 분리되었
고, 그 후 교회 헌법과 교리의 문제로 미국 장로교회는 남, 북이 분열(1837
년)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넷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수정(1903)은 예정론의 유기론과 그리스도의 
제한속죄를 부정하는 것으로 미국 장로교내의 개혁주의 신학의 몰락을 의미한
다. 그리고 수정된 신앙고백을 기초로 아르미니스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컴버
랜드 장로교회와의 연합이 이루어졌다. 

다섯째, 미국 장로교가 자유주의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조건적으로 성경을 수
용하고 성경에 복종해야 한다는 근본주의가 일어남에 따라 자유주의 사상들과
의 싸움에서 성경무오성,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속죄, 성경적 기적들을 강
조하였지만 장로교의 교리적 헌법을 약하게 만들고 개인적인 경건에 치중하
는 결과를 낳았다. 

3. 한국장로교 헌법 발
전에 부정적 영향을 끼쳤던 사건들
첫째, 수정된 미국헌법(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 1903년) 정신에 따른 미국 선
교사들에 의한 한국장로교 헌법이 기초되고 있다는 점이다. 초창기 한국 장로
교회는 미국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한국장로교 헌법이 형성된 
것도 미국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서였다. 
미국 장로교는 1903년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수정하였다. 미국장로교
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수정하면서 역사적 장로교회가 세워놓았던 17세
기 칼빈주의의 핵심인 예정론을 시대적 분위기에 따라 새롭게 이해하려고 시
도하고 있다. 아르미니우스주의적인 신앙고백을 따르는 컴버랜드 장로교회와 
연합 할 수 있는 여건을 이미 수정된 신앙고백이 열어 준 셈이다. 

컴버랜드 신앙고백 제 3 장 “하나님의 작정” 부분에서 기존 신앙고백에 있었
던 3항부터 8항까지 모두 삭제하였다. 이는 역사적 장로교회가 진리로 순수하
게 지켰던 예정론의 유기론에 대한 언급과 그리스도의 제한속죄 부분을 완전
히 삭제 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수정된 신앙고백 3장에 대한 선언문은 도르트
신조와 웨스트민스터 본래 뜻인 그리스도의 
제한속죄를 부정하는 선언이었
다. 

또한 제 10장 3항 “유아로 죽은 아이들에 대해서는 택함 받은 유아로 제한” 
하고 있었는데 수정판은 “유아 때 죽은 모든 아이들은 은혜의 선택 안에 포함
되며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중생되고 구원을 받는다”고 하여 유
기론과 그리스도의 제한 속죄를 거부하고 있다. 이는 아르미니우스보다 더 진
보적이고 웨슬레주의에 가까운 선언으로 감리교와 장로교의 구별되지 않는 입
장이며 선교지향주의에 따른 고백의 수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제 16장, 22장, 25장에 대한 수정을 가함으로 시대적으로 연합분위기
에 방해가 되는 요소를 제거하고 수용하려는 움직임이었음을 고려할 수 있
다. 맹세거절에 대한 죄를 부정하고 카톨릭 입장을 적그리스도로 고백하지 않
고 비성경적이라고 고백하고 이방인들에게 선(善)이 있음을 인정하고 있음에
서 카톨릭교회와 이방세계의 종교와 대화하고 수용하고자 하는 준비로 생각
할 수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34장과 35장을 첨가하였다는 사실이다. 제 34장 “성령에 대
하여” 부분과 제 35장 “하나님의 사랑과 선교에 대
하여” 부분은 삼위일체에 
대한 그릇된 이해로 제 2장 “하나님과 삼위일체”부분과 상충되어 모순을 일으
킨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외적 사역에 있어 분리되지 아니하시고 한 하나님
의 사역으로 선언하여 모든 계획 모든 행사 모든 명령에 있어 성부, 성자, 성
령의 사역을 구분하고 있지 않다. 한 하나님의 사역으로 선언하고 있다. 그러
나 수정된 부분에서는 오순절 운동과 같은 시대적 분위기에 따라 성령의 사역
을 강조하여 선교에 기초적 토대를 마련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제 35장 부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함으로 선교지향성을 더욱 극대화하고 
있다. 하나님의 특별은총에 의한 사랑과 보편은총을 구별하지 못하고 앞서 수
정부분에서 확인된 대로 예정에 대한 특별은총은 사라지고 모든 대상으로 하
나님의 사랑이 보편은총화 되어 인간 자신의 기도와 은사와 개인적인 노력과 
책임으로 그리스도의 왕국을 확장해야 할 의무를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복음
주의 노선에서 쉽게 확인 할 수 있는 신학적 근거들이다. 

이처럼 한국 초창기 미국 장로교선교사들은 한국에 단일한 교회를 복음주의 
노선에 따라 세우려는 움직
임이 있었다. 이는 이미 미국장로교 신학이 해외 
선교를 지향하는 분위기에서 개혁주의의 신학의 핵심을 잃고 신앙고백을 수정
하여 그 기반을 마련해 주는 것을 볼 때 쉽게 확인이 된다. 이런 분위기에 있
던 선교사들은 선교지에 그들의 신학을 그대로 반영하여 뿌리를 내리게 될 것
은 자명한 일이다. 

실제로 한국 초기 장로교 역사에서 확인되고 있다. 아무리 모든 일을 성경 중
심으로 해야 한다는 네비우스 선교정책일지라도 거기에는 한국에 감리교와 장
로교를 구별하지 않고 분할하여 교회를 세우고자 하려는 복음주의 선에서의 
연합 정신이 깃 들여 있다. 선교지의 분위기에 따라 장로교 신학의 독특성이 
심어지기보다는 복음주의 선에 머물려는 선교사들의 정신에는 이미 자국의 신
학이 반영되어 실천되고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수정은 장로교의 핵심인 예정론과 그리스도의 제한
속죄가 고백되지 않아 선교에 매우 커다란 장점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이러
한 미국장로교 신학은 한국 초기 선교사들에 의해서 그대로 한국에 소개되었
다. 한국에 심어진 장로교 신학은 철저하게 미국 장로교 신학에 종
속되어 엄
밀한 개혁주의의 핵심이 빠진 성경무오와 동정녀 탄생,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대속적 속죄, 부활, 그리스도의 기적을 행하는 능력 등이 겨우 소개되는 정도
의 복음주의 노선의 신학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초기 장로교선교사들은 그들이 갖고 있는 신학으로는 갑작스런 회심
과 새로운 삶을 강조하여 교회부흥을 꾀하는 감리교와 특별한 구별을 가질 
수 없었고, 당연히 연합하여 교회를 세우고자하는 정책들이 공의회에서 확인
되고 있다. 

둘째,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서 한국 독노회(1907년)가 12신조를 채택
하였다는 것이다. 1901년 이후 미국에서 발생하기 시작한 오순절운동은 선교
사들을 통해 한국에도 심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국에 “한국 그
리스도교회(the Church of the Christ in Korea)”를 세우고자 하는 선교사들
의 분위기는 장로교 공의회 역사를 통해서 장로교와 감리교가 연합
(1901,1905,1916)하여 단일한 교회를 세우려는 움직임에서 잘 알 수 있다. 
장로교와 감리교 합동으로 감사일(1905)을 정한다든지, 연합하여 찬송가를 편
찬(1902)한다든지, 연합 회보를 발행 한다든지(191
5) 지방 선교나 일본 선
교, 하와이 교회 시찰(1906)에 있어 교단 구분을 하지 않고 교회를 운영한다
든지 등 여러 분야에서 연합하여 단일한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움직임이 선교
사들에 의해 있었던 분위기였다. 

12신조 채택은 한국 선교지의 형편에 적합하다는 이유를 들어 인도자유장로교
회(1904)가 채택한 것을 사용하기로 결정한 채택이었다. 또한 이 신경은 인도
와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모든 장로회가 채택하여 모든 교회가 연합되기를 
바란다는 선교사들의 보고가 있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성경을 기초로 하여 가장 진리에 이르는 가장 좋은 
체계임을 인정하고 미국 헌법으로 채용했던 미국 초기 장로교(1788)와는 달
리 선교지향주의를 지향하고자 수정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1903)은 선교에 
예정론의 유기론에 대한 고백과 그리스도의 제한속죄에 대한 고백이 선교지
에 악영향을 줄 것을 고려하여 12신조와 같은 신조를 택하게 된 것이다. 
셋째, 곽안련(미북장로회 선교사)목사의 “예수교 장로회 정치문답조례(1917
년)”에 따른 교회정치 형성을 들 수 있다. 곽안련(Charles Allen Clark 1878-
1961) 목
사는 한국 초창기 장로회 헌법 형성에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특히 그는 1917년 J. Aspinwall, Hodge의 “What is presbyterian Law?”(정치
문답 조례)를 번역하여 소개하였다. 

그는 “조선예수교장로회신경론”에서 신경이 없다면 교회를 회집하여 교회설립
을 할 수 없다고 정의하고 있다. 만약 성경이 오직 나의 신경이라고 하는 자
는 무식한 자라고 하면서 교회의 신경이 무엇인지 어느 곳에서 산출되는 것인
지 알지 못한다고 하고 있다. 따라서 성경과 신경은 서로 대적할 수 없고 신
경은 신구약 성경에서 산출된다고 하였다. 신구약성경중에서 요긴한 도리의 
요지를 몇 가지로 분류하여 편성한 것이 신경이라고 덧 붙였다. 사경회나 성
서학원에서 성경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각 교인에게 신경을 교수하지 아니하
면 안 된다고 하고 있다. 

신경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고 난 후 그는 12신조의 우수성을 설명하고 있
다. 장로회 신경 중 우수한 신경들(니케아, 아타나시우스, 제네바신경, 도르
트신조, 하이델베르그요리문답, 39개 신조, 웨스트민스터 신경)을 말하면서 
한국 실정에 맞는 신경은 인도자유장로교회가 사
용하는 12개 신조가 교회 형
편상 가장 적합하다고 하였다. 

이 신경론에서 그는 12신조에 대해서 만국장로회신경중에서 가장 좋은 것이라
고 하면서 웨스트민스터 신경과 기타 유명한 일곱신경보다 간단하고 명백하
여 알기 쉽다고 하였다. 그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나 다른 신조들이 유아
의 택하심과 예정에 대한 교리 조항이 명백하지 못하여 늘 논쟁의 대상이 되
었으나 12신조는 명백한 견해를 주고 있어 쟁론의 발생이 없다고 하였다. 
이러한 곽안련의 입장은 미국 장로교회가 1903년 수정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
백 정신의 연장선이라 해야 할 것이다. 또한 감리교와 장로교간의 연합문제 
회집시 감리교가 웨스트민스터신경은 채용하기가 어려움에 있으나 인도에서 
채택한 12신조는 연합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는 견해가 있었다
고 하였다. 

이처럼 예정론과 그리스도의 제한속죄에 대한 분명한 입장이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선교사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앞서도 살펴본 바대로 그 당시 미
국 장로교 자체 신학교육의 문제로 보아야 할 것이다. 시대적 분위기는 선교
지에 그대로 심겨질 수밖에 없는 상황
이었음을 알 수 있다.

4. 미국장로교헌법과 한국장로교헌법 비교
전체적인 구조에 있어 한국 장로교 헌법은 미국 장로교 헌법의 형태를 따르
고 있다기보다는 J. A. Hodge의 정치문답조례의 구조를 따라 기술되고 있음
을 볼 수 있다. 따라서 교회 정치에 있어 한국 장로교 정치는 미국 헌법의 정
치 부분에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J. A. Hodge의 정치문답조례의 영향이 
크다 할 수 있다. 초기 곽안련 선교사에 의해 번역된 정치문답조례의 영향에 
따라 구조화되어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치리회 의장(Moderator)과 회장(President) 개념의 혼동이 Hodge 안에 
있기 때문에 그대로 지금까지 고정되어 혼동되어 사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
다. 명칭 사용에 대한 구별과 선택은 어디까지 엄밀하게 교회가 개혁해야 하
는지에 대한 분명한 교회정치 원리가 있는 것이다. 또한 목사 칭호에 대한 구
별이 미국 헌법 정치 부분에 구별되고 있지 않다. 이것 또한 J. A. Hodge에 
의해 구별되어 한국 장로교회가 그것을 사용한 것이다. 

초기 한국장로교회에 있었던 동사목사(co-pastor)의 칭호는 현재 정치에서 사
라지고 없다. 
목사의 직임상 구별로 인한 칭호가 갖는 애매성이 있을 수 있
다. 특히 부목사나 임시목사의 경우 목사간 교황정치나 감독정치처럼 계급구
조가 형성될 수 있는 오류가 있을 수 있다. 목사의 직임상 칭호에 대한 연구
가 더 있어야 할 것이다. 교회가 앞으로 세분화되고 조직화되는 추세에 따라 
목사직임에 따른 칭호가 발생해야 하며 그것에 따라 구별이 있어야 하는지 의
문이 생긴다. 

음악을 담당하는 음악목사, 행정을 담당하는 행정목사, 교회 시스템을 담당하
는 시스템 목사 등 다양한 직임에 따라 이처럼 목사의 칭호가 있어야 하는
가? 본래 웨스트민스터 정치부분에 따라 미국 장로교 헌법이 목사의 직임상 
칭호를 구별하지 않는 것처럼 그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다음으로 지교회 부동산 재산 소유권에 대한 언급은 미국 헌법에 따라 한국 
장로교회가 회복해야 할 필요가 있다. 미국 장로교 헌법에서 언급하지 않은 
부분을 추가하여 명기하고 있는 것은 교황정치나 감독정치가 지향하는 제도이
다. 우리교단은 이 점에 있어 개혁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미국 장로교회의 헌법 역사 가운데 회중교회와
의 연합(1801)이 있었
다. 인간론에 의해 교회 성장을 추구한 나머지 교회정치에 있어 엄밀한 선에
서 많은 차이를 가지고 있는 회중교회와 연합을 추진하였다. 우리교단이 “우
호적 교단과의 합동” 조항을 헌법에 삽입하였다. 만약 미국 장로교회가 단순
히 인간론적인 교회성장을 위한 목사 수급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차원의 연
합과 같은 합동이라면 향후 그 문제는 크리라 본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왕이시다”는 우리 교단의 총론에서의 선언은 이 시대 독
특한 개혁주의를 지향하고자 하는 강한 고백의 선언이다. 오직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왕이시다는 진리만을 고집하며 그 선에서 벗어났을 때 타협할 수 없
는 그 헌법 정신에 따라 합동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맺는 말
헌법 수정은 매우 신중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것을 미국 장로교회 헌법 역사
를 통해 살펴보았다. 시대적 흐름에 편승하여 오직 성경의 원리에 따라 가장 
좋은 고백을 역사적으로 세웠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수정함으로써 미국
내 개혁주의 신학의 몰락을 가져오게 하였고 심지어 선교지에 그 수정된 정신
이 뿌리를 내려 장로교의 정체성을 
잃고 약하게 만들었다. 지금의 장로교가 
다른 교단과 구별이 되지 않는 것도 이러한 영향으로 계속 발전되어 왔기 때
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향후 헌법 수정을 추진한다면 합신 헌법의 독특성(수정된 1903년 웨스트민스
터 신앙고백이 아닌 17세기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을 회복한 정신)에서 한 걸
음 더 나아가 한국 초기 유아기적인 교회의 실정에 따라 선교사들의 공의회
에 의해 형성되었던 12신조는 헌법에서 삭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12신조 자리
에 역사적 장로교의 유산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홀로 자리해야 한다. 
모 교단처럼 12신조를 원 고백으로 삼고 신앙고백을 부록으로 삽입한다든지 
12신조와 함께 신앙고백을 선언하게 되었을 때 모순적인 조항이 생기기 때문
에 헌법으로서 합당한 신앙고백이 될 수 없게 된다. 다만 미국장로교가 1729
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을 채택하면서 “국가 위정자가 교회에 간섭할 수 있
는 선언(23장)” 부분을 삭제했던 것처럼 그것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서 
수정될 필요가 있다. 

향후 헌법 수정의 방향을 모색해 본다면 성경을 어떻게 바르게 해석하는 틀로
서 교리의 기
본적 선언을 담고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예배모범, 교회정
치 포함)을 최소한 선으로 하고 교회역사에 있어 중요하게 발굴된 내용들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에 반영되지 못했던 것들과 역사적으로 다루지 못했던 
것들(원문 성경의 신적 영감 및 무오성, 삼위일체와 그 구조에 있어 신구약
의 실체의 통일성, 신구약에 관한 ‘육체 밖의 전 그리스도 christus>’와 ‘그리스도의 두 의지론’, 타락전 선택설과 타락후 선택설, 예정
의 실천적 의미, 그리스도의 제한속죄와 그의 중보사역, 먼 원인과 가까운 원
인으로서 구원의 서정과 예정론의 관계, 장로회에 있어 성직자 ‘개인
‘과 ‘회자체’, 개혁주의 예배, 현대과학적 사실과 그 신학적 
의미 등)을 첨가하여 지금까지 교회사적으로 내지 못했던 가장 좋은 장로교 
헌법으로의 수정이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 헌법은 세상 법의 테두리에서 해석되고 수정되는 차원의 것이 아니다. 
헌법 수정은 오직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원리로 하여 적정과 절도의 규범
을 원칙으로 철저한 검토와 검증이 요구된다. 잘못된 헌법은 언제라도 장로
교 
정치원리에 의해 바른 절차를 밟아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