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_박종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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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

박종언 목사(평안교회)

요즘은 4개월 반이 된 첫 손자 하늘이의 재롱을 보는 재미에 빠져있다 보니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부는 것이 어느새 가을이 오는 모양이다.
지난 4월 출산예정일을 한 달이나 먼저 산모와 아기가 위험한 상태가 되어서 
제왕절개로 2.4kg의 저체중아, 조산아라는 꼬리표를 달고 태어난 하늘이 때문
에 아내는 일정을 앞당겨서 미국으로 갔고, 2주만에 아기는 젖을 먹다가 숨
이 멎어서 아내의 인공호흡으로 위기를 면하고 응급실로 실려 갔었다. 의사
는 아기가 잠이 깊이 들면 숨을 쉬는 것을 잊어버리는 모양이라고 3시간 이
상 잠들지 않도록 깨워서 젖을 먹이라고 하고 위문의 기능이 약해서 젖이 역
류를 하는데 아기가 이기지 못해서 숨이 멎었다는 것이다. 

심장과 폐에 전선이 연결되고 모니터를 달고 아기는 두 달을 지냈다. 미국에
서 보내오는 사진으로 아기의 안타까운 모습을 보고 아내와 딸이 매일 아기
를 안고 기도하고, 안고 잠이 들고 해서 
두 사람이 모두 지쳐있다는 것을 알
면서도 오직 하나님께 그들 모두를 의탁하는 기도를 올릴 뿐이었다.

출산하고 산후조리를 하지 못해서 허약해진 딸과 손자를 데리고 함께 귀국했
는데 이제 하늘이는 날이 갈수록 살이 통통하게 올라서 팔에 가로줄이 잡히
는 모양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혼자 있는 것을 싫어해서 눈을 마주치면 
웃고 제법 큰 소리로 옹알이를 마주 하고 고개를 세우던 아기가 이제는 허리
를 세우고 다리를 뻗치고 서려는 것이 신기하다. 성장과정을 거치면서 발달하
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 있는 교민교회를 돌아보면서 늘 느끼는 것은 전도와 선교에 특별한 열
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기도로 물질로 헌신할 뿐만 아니라 자신들이 직
접 평신도선교사로 단기 선교를 가는 성도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다. 미국 시
민권을 가지고 있는 성도들은 쉽게 북한 선교를 자유롭게 다니고 있었다.
그럼에도 열심 있는 성도가 기도하고 고민하는 것은 어느 목사가 하는 사역
에 얼마의 물질을 헌금할 것인가, 어느 선교사에게 선교비를 얼마나 보낼 것
인가, 정말 어느 목사, 어느 선교 단체가 하나님의 참된 일을 하는 것일까 

는 것들이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런 것들을 분별하기 위해서 성령의 은
사를 구하는 성도들도 있다는 것이었다.

헌금이 과연 구제와 전도에 제대로 쓰이고 있는지 교회를 믿을 수 없어서 고
민하는 성도는 성도 자신이 구제와 전도에 직접 나서고 선교까지도 휴가를 내
서 자신이 직접 하는 것을 보았다. 교회는 계속해서 성도들에게 십일조와 절
기헌금, 감사헌금, 건축헌금, 선교헌금… 그 외에도 개인적으로 선교사를 후
원하고 ‘선한 일’에 동참하도록 헌금을 권유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한 달여 일정을 마치고 귀국했더니 이사한 지 얼마 안 되는 우리 동네 교회에
는 건물 전체를 덮는 큰 현수막이 걸렸다. 거기엔 “창립 3년 6개월만에 이루
어주셨습니다. 장년 300명 돌파 및 교회건물 인수 기념예배”라고 쓰여 있었
다.

우리 교단은 개혁의지를 가지고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을 실천
하려고 애쓰고 있다. 그런 의지를 가진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한글 사전에 
발전은 ‘널리 뻗어나감, 매우 번영하여짐, 낮은 단계에서 높은 단계로 오
름’이라고 풀이 되어있다. 교회들을 영입하여 교회의 수가 많아지게 
함으로
써 주님께서 우리의 신학과 사역을 인정하신 결과라고 기뻐하며 동시에 우리 
교단이 건전하기 때문에 발전하고 있는 증거라고 생각하는 오류에 빠져선 안 
될 것이다.

이번 월요일에 아내가 암 선고를 받았다. 중학교 때부터 기독교학교에서 자라
면서 성가대와 교사로 열심히 주님을 섬겼고 기도와 상담사역 등을 통해서 많
은 사람들에게 주님을 증거하고 수고하였다. 그 결과 아내를 어머니라고 부르
기까지 하는 여러 자녀들과 그를 신뢰하고 따르는 많은 사람들을 사역의 결과
로 얻었다. 그러나 암 선고를 받은 아내가 이번 주 내내 간구하는 것은 그 많
은 일들에도 불구하고 ‘내가 과연 성도다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주님을 
닮아가며 살아온 사람인가, 소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줄 수 있는 사람인가’
를 점검하는 것이었다. 평생을 애써온 그 많은 일들은 전혀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아무 의미나 가치가 없다는 것을 절감한다.

예배하는 자가 성도다운 사람이 아닐진대 ‘예배의 갱신’이 무슨 소용이 있
겠으며, 모이는 자들이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지 않을 때에 그 힘은 아무런 소
용이 없을 것이다.

손자 하늘이가 젖만 먹다가 이유식을 시작했다. 언젠가 곧 단단한 것을 먹을 
것이다. 혼자 걷고 뛰고 생각하고, 어느 날엔가는 기도하고 말씀을 보고, 하
나님의 뜻대로 사는 아이가 될 것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 말씀 앞에서 경외
함으로 점검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온전한 발달이 없는 발전은 주님이 찾으
실 때 열매 없이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