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복지재단 방북단 297명, 평양체류 4박 5일 일정 스케치> 송영찬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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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복지재단 방북단 297명, 평양체류 4박 5일 일정 스케치>

민간 차원, 평양 직항 입성은 역사적 사건
아직도 남북 연합예배 희망이 있다.

송영찬 편집국장

6월 14일 오후 1시, 평양 봉수교회와 칠골교회에서 남북 성도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는 희망을 가슴에 안고 대한항공 전세기 직항 편
으로 인천 공항을 출발해 50분 후에 평양에 도착한 한민족복지재단(이사장 최
홍준 목사, 호산나교회) 측 방문단 297명은 약간씩 들떠 있었다. 
뿐만 아니라 평양의 순안 공항에서 간단한 보안 검색 외에는 아무런 통관 검
사 없이 오후 3시 30분에 평양 고려 호텔에 여장을 푼 일행들은 이례적인 북
한 당국의 배려에 앞으로의 일정이 순탄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지
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성경책을 가지고 아무런 제재 없이 북한에 입국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남북 성도들의 연합예배에 대한 기대감이 무르익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기대감 이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긴장감
이 숨겨 있었다. 
그것은 방북단에 대한 비자가 그 시간까지도 발급되지 않았다는 점 때문이었
다. 우리들은 무비자 상태로 평양 고려 호텔에 투숙되었던 것이다. 

무비자 상태로 평양에 들어가

우려했던 대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우리들의 일정에는 호텔에 여정을 푼 
후 간략한 평양 시내 관광과 만경대소년학생궁전 공연 관람이 예정되어 있었
다. 그렇지만 무비자 상태에서는 호텔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북측의 통고로 
갑자기 때아닌 긴장감이 맴돌기 시작했다. 우리는 비자가 발급될 것을 기다리
며 아무런 불평없이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호텔에서 
평양의 첫날밤을 지냈다.

15일 오전 6시에 우리는 고려호텔 3층 대식당에서 식사 전에 기도회를 갖기
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어떤 영문인지 문은 열려져 있지 않았다. 그리고 7시
가 되어서야 문이 열렸다. 이때부터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
을 직감할 수 있었다. 그것은 결국 현실로 드러나고 말았다. 
오전 9시 우리는 다시 식당에 모였다. 재단측은 우리를 초청한 범태평양조선
민족경제개발촉진협회와 협의 한 내용에 대하여 북측의 아
리랑 축전 운용팀
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그것은 4월 말부터 6월 말까지 고 김일성 
주석의 생일을 기념하는 아리랑 축전에 우리들 일행이 전원 관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재단측은 사전에 그러한 내용을 통보 받은 적이 없다고 밝혔으
나 “아리랑 축전 참가를 위해 초청장을 발부한 것이며 이를 수용하지 않으면 
비자를 내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양측의 팽팽한 줄다리기 가운데 협상 안이 나온 것은 오후 4시경이었다. 그것
은 희망자에 한해서 아리랑 축전을 참관하며 16일부터 일정대로 진행한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우리는 호텔 안에 반 감금된 상태로 있었고 그렇게 평양의 
이틀째 날은 저물고 말았다. 그나마 앞으로의 일정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에 
대한 기대감으로 답답했던 하루의 지루함을 달랠 수 있었다.

16일 오전 7시, 어제 합의한 일정대로 진행될 것에 대한 기대감으로 식당에 
다시 모인 우리들은 또 다시 두꺼운 벽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재단의 김형
석 사무총장이 “새벽에 북측으로부터 남북연합 예배 대신에 관광을 하라는 통
고를 받았다”고 보고했기 때문이다. 이후 최홍준 이사장은 사태의 
심각성을 
밝히고 “금식과 더불어 우리들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기도회를 갖는다”고 
선언했다. 기도회는 오전 11시까지 계속되었으며 11시부터는 방북단만으로 예
배를 시작하였다. 그 사이에 북측이 재협상을 제의해 왔지만 원만하게 합의
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남북 연합 예배는 이뤄지지 않았다.

12시 35분에 북측이 재차 협상을 요구해 왔다. 그리고 북측은 남북 연합 예
배 대신에 봉수 교회와 칠골 교회를 방문하는 것으로 대신 하자고 제의해 왔
다. 재단 측은 북측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대신에 재단측에서 후원하고 있는 
평양의 고려당 빵 공장과 병원을 방문할 수 있도록 요구했고 양측이 서로 합
의함으로서 우리들의 일정은 새롭게 다시 짜야 했다. 그리고 19일 귀환하기
로 되어 있는 일정을 줄여 18일에 귀환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오후 3시 우리들은 약속대로 봉수 교회를 방문했다. 봉수교회는 350여명의 좌
석 규모였으며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었다. 봉수 교회당에 자리를 잡은 우리들
은 간략한 순서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 예배후 재단특이 준비한 대형 텔
레비전을 전달하였다. 봉수교회 장승복 목사는 인
사말을 통해 “통일이 빨리 
되어 한 자리에서 연합 예배를 하면 좋겠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우리는 봉
수 교회를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마친 후 칠골교회를 방문해 역시 준비한 대
형 텔레비전을 전달한 것으로 3째날의 일정을 접어야 했다.

17일 오전 9시 30분, 북쪽에서 준비한 관광이 시작되었다. 만경대와 대동강
의 쑥섬을 거쳐 제너럴 셔먼호의 격침지(지금은 그 자리에 납치된 미국 함정 
프에블로호가 전시되어 있다)를 거친 것이 오전 일과였다. 그리고 오후에는 
첫날 가기로 되어 있던 만경대소년학생궁전 공연을 관람하였다. 저녁 7시 북
쪽 책임자인 김병철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최홍준 이사장이 주최하는 만찬과 
함께 우리들의 방북 일정을 모두 마쳐야만 했다. 
모든 일정이 취소되는 아쉬운 방문 일정이었지만 그나마 봉수교회와 칠골교회
를 방문한 것으로 우리는 위로를 삼아야 했다. 어쩌면 처음부터 지금까지 북
쪽의 계획대로 우리들의 일정이 조정되었는지 모른다. 아니 우리들이 그들에
게 이용당했다는 허탈감도 지울 수 없다. 
그러나 정작 우리들의 발걸음을 인도하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다. 성경을 들
고 입
북했다는 사실이 그랬고, 평양 시내에서 5시간 30분 동안 진행된 기도회
와 예배가 그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누가 평양 시내 호텔에서 이렇게 자유롭
게 기도하고 찬송할 것이라고 생각했던가? 비록 방북 일정과 계획은 무산되었
지만 우리들의 발걸음이 어쩌면 7일 동안 여리고 성을 돌았던 첫날 첫 번째 
발걸음이라고 여길 수만 있어도 좋지 않겠는가?
남북 관계는 결코 정치적 시각으로만 풀 수 없는 남다른 정서를 가지고 있
다. 그것은 우리가 한 민족이라는 점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우리 기독인들에
게 있어선 사랑의 복음에 근거한 끊임없는 베풂과 관심이 앞서야 하기 때문이
다. 우리에겐 복음의 확장이라는 지상 명령과 더불어 온전한 교회 회복이라
는 시대적 사명이 주어져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18일 오전 11시 무거웠던 마음을 접고 평양 순안 비행장으로 이동한 우리는 
입국 때와 같이 간단한 출국 심사를 마치고 이미 대기하고 있던 대한항공 전
세기를 타고 평양을 떠나야 했다. 지난 4박 5일간을 돌이켜 보면서 다시 또 
올 것 같지 않은 평양 방문이 이처럼 무력하게 끝나버린 것에 대한 허탈감에 
쉽게 발걸음이 움직
여지지 않았다. 그러나 “언제든지 다시 오겠다는 기대감
을 결코 버리지 않겠다”는 최홍준 목사의 말과 같이 머지 않은 시일 안에 다
시 평양을 방문할 때가 올 것이라는 기대감만은 평양에 버려 두고 올 수 없
어 가슴에 다시 주어 담아야 했다.
나아가 우리 정부의 탄력적인 방북 허가는 너무나 극적이라고 할 수 있다. 기
자가 방북 수속한 것은 지난 11일, 그러니까 방북 수속 4일만에 평양에 들어
갈 수 있었다는 것부터가 심상치 않은 변화인 것이다. 또한 인천 공항에서의 
출국 수속과 귀국 수속도 간략하게 진행되었다는 것 역시 하나님의 손길을 느
끼기에 충분했다.
남북 연합 예배는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은 언젠가 남과 북의 성
도들이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날에 대한 희망의 등불로 우리 앞에 우
뚝 서 있다. 그 날이 올 때까지 우리는 끊임없이 어버이와 같은 심정으로 북
녘의 동포들을 돌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