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발전을 위한 제언_이수만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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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사 20년 기념 특집-한국 교회 갱신을 위한 제언

한민족의 발전을 위한 제언
(신사참배의 죄악을 교계와 총회가 회개해야할 필요에 대하여)

이수만 목사 (선교사)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나라가 경험한 경제난과 민족통일 위한 정부
와 민간의 노력들을 보면서 누구나 많은 점들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한마디
로 우리 인간의 노력으로는 남북 통일이나 경제 회복 및 발전이 잘 되지 않는
다는 것이다. 이를 보면서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한다. 

하나님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현 상태를 어떻게 보실까? 특히 오늘
의 상황에 직접 연관되는 지난 백년 동안 이 땅의 역사를 하나님은 어떻게 보
고 계실까? 흔히들 역사(history)는 하나님의 이야기(His story)란 말을 한
다.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하나님과는 상관없는 인간들의 이야기로 이해되
지만 우리가 성경, 특히 구약에서 배우는 역사는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시고 
다스리시는 이야기이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주재하시는 역사진행의 원리를 한

족의 역사에 적용하여 그 역사를 해석하는 작업은 그다지 시도되지 않았
다. 신학자와 목회자는 역사학자가 아니고 대학의 역사학자는 신학자가 아니
기 때문인가? 이 글에서는 단순한 적용과 해석을 시도하고자 한다.

핵심 주제는 우리 민족과 교회의 역사청산 또는 과거청산의 문제이
다. 지난해에 조선일보와 한겨레신문이 과연 누가 민족의 정론지로서의 지위
를 가지느냐? 하는 문제로 이념 논쟁을 한 적이 있다. 조선일보는 80년 가량 
민족의 정론지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고 이에 대해 한겨레신문은 일제시대 삼
사십년대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친일 행각을 자행했으며 그후 이에 대한 
자성이 없었다고 공박하고 있다. 이같은 언론 논쟁과 정치권의 친일파 청산
의 미완 문제는 논외로 놔두고, 우리 기독교계가 다루어야 할 가장 큰 과거청
산 문제는 일제시대의 신사참배이다. 

1938년 9월 평양에서 조선예수교장로회 27차 총회에서의 신사참배 가결은 그 
절정이었고 그후 해방 때까지 7년 동안 교회를 포함하여 우리 민족 전체가 일
본 태양신을 숭배한데 대하여 민족 전체가 한번도 통회자복한 적이 없다. 우
리 민족은 이스라엘처
럼 민족 전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은 아니니 민
족 전체는 그렇다 하더라도 교회가 죄의식을 갖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일이다. 개인적으로 회개한 경우는 많으나 노회, 총회 등 공회가 
한 마음으로 통회자복한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 합신 총회는 “바른 신학, 바른 교회, 바른 생활”을 개혁이념
으로 삼고 있다. “바른 신학”은 바른 교회와 바른 생활의 바탕이 된다 하겠
다. 바른 신학은 다소 추상적인 개념인데 그 내용이 무어냐를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종교개혁자 칼빈이 드러낸 개혁신학이 바른 신학이다 하는 등 여
러 면으로 설명될 수 있겠으나, 가장 기본적으로 두 가지로 요약될 수도 있
을 것이다. (1)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인간의 구속주이심을 고백하는 신앙
과, (2) 십계명 준수 신앙.

우리 민족은 지난 수천년간 우상숭배를 해오다가 구한말 이후 상당
수가 성경말씀을 받고 예수를 믿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통치로 인해 
예수 대신 일본 천황이 민족 전체 앞에 최고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천황숭배
는 그들이 조상신으로 섬기는 태양여신 아마데라스 오미가미를 숭배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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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의미했다. 우리 민족은 극히 일부 기독신자 외에는 모두 이 태양여신 앞
에 고개를 숙였다. 이미 아는 대로 장로교, 감리교, 구세군 등 개신교단들이 
30년대 말부터 총회적으로 굴종하였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다수는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해왔다. 

해방이 되었으나 민족은 남북으로 나뉘어 서로 경쟁하고 싸우는 상
태가 되었다. 육이오 사변을 통해 민족이 서로 쳐서 수백만명이 죽고 다쳤
다. 전쟁은 멈추었으나 아직도 서로를 주적으로 삼고 경계하는 비극이 계속되
고 있다. 칠천만 민족 중에 평화통일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금강산, 백두산에 여행가보고 싶지 않은 남한 사람이 어디 있으며, 
제주도 여행가보고 싶지 않은 북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어쩌다 한번씩 서
로 만나면 온 나라가 눈물바다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분단 상태는 계
속되고 있으며 모든 비극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 이것은 한민족의 태양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보
는 것이 자연스러운 해석이다. 이스라엘의 남북분단이 솔로몬왕의 우상숭배
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었던 것처럼 대
한민국의 남북분단 또한 하나님의 심
판으로 볼 수 있다. 해방 후 5년간의 집행유예 기간이 있었으나 그 때 한국교
회는 신사참배 문제로 서로 다투기만 하고 심지어 일부 회개를 주장하는 이들
을 쫓아내 버렸다(이것이 고신 교단의 기원이다). 서울이 수복되고 전쟁이 그
쳤지만 원래의 분단상태로 환원되었을 뿐 얻은 것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께
서 통일시키고자 하셨다면 육이오 동란 때 이미 통일되었을 것이다. 지난 50
년 동안 하나님은 한국교회가 신사참배 회개를 하는지 안 하는지 지켜보고 계
신 것이다. 

신사참배는 십계명 제1-2계명을 근본적으로 거역하는 행위이다. 우
리 교단이 바른 신학을 추구한다고 할 때 우리 선조가 저지른 이 무서운 우상
숭배를, 신사에 가서 절한 것 만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예배시간에도 자행했
는데 이를 회개하지 않고 바른 신학이 가능한지 한 번 깊이 생각해볼 일이
다. 우선 우리 교단부터 이 문제를 깊이 돌이켜보는 마음을 가짐이 옳을 것이
다.

이스라엘의 멸망에는 태양숭배가 주축이 되었음을 우리는 성경에
서 배울 수 있다 – 북왕국: 열왕기하 17:16, 남왕국: 열왕기하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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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1, 에스겔 8:16. 북왕국이 망한지 135년만에 남왕국도 완전히 망하였
다. 북한은 지금 식량마저 부족한 비참한 나라가 되었다. 남한도 북한처럼 세
계에 나가 구걸하는 처지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 IMF 경제 위기를 통해 입증
되었다. 통일도 우리의 노력이나 분위기 조성만으로는 안됨을 지난 몇 년간
의 경험을 통해 터득하고 있다. 통일된다 하더라도 세계 최빈국의 하나로 전
락하거나, 자유가 제한된 나라로서 된다면 통일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통일이나 경제회복과 직접 관련짓지 않더라도, 즉 평화통일도 되
고 경제가 회복되더라도 신사참배의 범죄는 여전히 우리 민족과 교회가 하나
님 앞에 지고있는 죄짐이다. 독일교회가 나찌에 의한 국가적 범죄를 깊이 회
개하고 지금도 겸손한 모습을 보이듯, 남아공의 교회가 인종차별한 과거를 회
개하듯, 미국 남부의 교회들이 140년전 흑인노예제도를 옹호한 죄악을 깊이 
회개하고 화해운동을 벌이고 있듯, 한국교회는 교단적으로, 총회적으로, 범교
단적으로 깊은 회개운동을 벌일 수는 없을까? 

신사참배에 대한 철저한 회개야말로 한국교회가 민족 앞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최선의 섬김이 될 것이다. 주리고 있는 북한 동포 위해 닫
힌 하늘의 축복문을 여는 행위가 될 것이며, 평화 통일 위한 가장 진지한 화
목제가 될 것이다. 가뭄을 해소하기 위해 물을 실어나르는 수고도 인정되지
만, 흡족한 비가 내리는 것과 비교될 수 있겠는가? 비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우리 합신 교단의 총회가 총회회기 중에 하나님 앞에 엄숙히 27차 총회의 신
사참배 가결과 그후 교회의 우상숭배 행위를 깊이 뉘우치고 용서를 구한다
면,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한 작은 구름이”(열왕기상 18:44) 일어날 것이라 
기대된다. 또한 우리 총회의 회개운동은 다른 교단으로 전해질 것으로 예상된
다. 그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비가 내리는지라”(45절)는 축복이 우리 
민족과 교회 위에 내리길 간절히 사모한다. 그 “큰비” 속에 평화통일과 경제
회복은 물론이고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의 축복이 있을 것으로 소망 중에 믿
는다. 

과연 우리 총회는 그와 같은 결단을 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