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루시아 준비하는 원년이길 _강경민 목사

0
25

파루시아 준비하는 원년이길
강경민 목사

변하는 것들 가운데서도 변치 않는 것이 있고, 변치 않고 있는 것들 가운
데 반드시 변해야만 할 것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참된 지혜이다. 새 천
년이 돌아온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렇게 중요한 것일까? 2000년
1월 1일의 태양이나 1999년 12월 12일의 태양이나 매양 한 가지임에 틀림
없을 터인데 말이다. 새 천년 새 천년하는 것을 거의가 다 장사꾼들의 술
책이다는 것을 먼저 지적하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천년이 의미가 있는 것은 딱 두 가지다. 하나는 역
사에는 종말이 있고 새 천년은 그 종말의식을 심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역
사에 종말이 없다면 역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허무와 쾌락의 순환이
있을 뿐이다는 것이 정직한 인식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끝이 있기에 역사
는 어제와 오늘이 비교되어야 하고 끝이 있기에 그날을 준비해야하지 않는
가? 그런 의미에서 새 년은 우리의 종말의식을 한층 고조시켜 주는 것이
사실이다. 주님 만날 준비를 점
검하는 것이 새 천년의 의미이다. 교회는 이
세상에 종말이 있음을 힘있게 알리는 것이 새 천년의 비전임을 아를 알아
야 한다. 그런가하면 새 천년은 변해야만 할 것이 변해야 하기 때문에 우
리에게 보다 큰 의미로 다가오는 것이다. 세상의 변화속도는 급류와도 같
은데 교회만 변화되지 않는 문화적 수구세력으로 남아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요 위험한 일이다.
새 시대를 이끌어갈 새로운 이념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진리가 입었던 시대
적인 옷(문화)을 벗어버리는 용기가 필요하다. 새로운 것은 본질에 대한 충
실함이다. 문화적 수구성을 본질이라고 착각하지 않는 진리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는 과감한 문화적 진보성을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장년층이기 때문에 새로운 문화에의 적응속도가 뒤떨어
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임금이 되어서 새벽의 노래,
신앙의 노래로 이스라엘의 역사를 변화시켰던 나이가 30세였음을 기억해야
한다. 요셉 역시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지 않았던가! 유교질서에 멍든 장
유유서의 정신으로는 문화적 창조성을 발휘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한
다. 새
천년에는 교회와 지도자들이 젊어질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것이
교회의 비전을 영속화시키는 관건임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