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많은 북한 주민들이 식량난 때문에 북한을 탈출하여 인접국인 중국
에 머물고 있다. 탈북자가 정확히 얼마인지는 알기 어려우나 약 2~30만명 정
도 될 것으로 관계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 인접국 중국에서 참담
한 생활을 하는 가운데 북한으로의 송환의 공포속에 떨고 있다. 그래서 우리
총회 남북교회 협력위원회에서는 한기총 산하 북한난민 UN청원운동본부와 협
력하여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취급해 달라는 청원을 UN에 하기 위해 지금 서명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한편 총회 남북교회 협력위원회에서는
그들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 4명의 위원이 지난 7
월에 중국 현지를 답사하고 돌아온 바 있다.필자가 현지 답사 위원중의 한 사
람으로 탈북자들과 소위 ‘꽃제비’라고 불리우는 중국에서 구걸하는 탈북소
년소녀들을 만났을 때 무엇보다 안스럽게 느낀 것은 탈북 아이들이 그들의 나
이에 비해 키가 너무 작다는 것이었다. 조선족 자치주인 길림성 연변지역에
가면 탈북 청소년들을 쉽
게 만날 수 있다. 이 아이들은 한국에서 온 사람들
이 나타날 만한 곳을 잘 알고 있다. 예를 들면 호텔주변, 식당주변, 삼자교
회, 백두산 코스 등 한국에서 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중국 공안당국의 감시의 눈길을 피해 서너명씩 한국인에게 찾아와 도
움을 호소한다. 그러나 그들의 숫자가 1-2년전보다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
만큼 감시가 심하고 공안당국에 붙잡혀 가거나 북한으로 송환된 아이들이 많
기 때문이다.필자가 중국에 간 것이 이번이 세번째이므로 이같은 사실을 피부
로 느낄 수 있었다. 탈북 청소년들을 만날 때마다 실감하는 것은 북한이 얼마
나 살기 어려우면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의 키가 저렇게 작을까 하는 것이다.
꼭 초등학교 2-3학년 정도밖에 안되어 보이는데 나이를 물어보면 16살이라는
아이도 있고 17살이라는 아이도 있다. 배가 볼록 나온 아이, 피골이 상접한
아이, 버짐이며 피부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밤에 몰래 반도체 라디오
(트렌지스타)를 들어 남한소식을 알고 있었다는 탈북자 김두영 씨(55세. 가
명)와 그의 아내에 의하면 지금 북한은 식량 사정이 말이 아니라고 한다.
식
량 사정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
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견디다 못해 가만히 앉아 굶어 죽기보다는 붙잡혀 죽
는 한이 있더라도 탈북을 시도해 보겠다는 독한 마음을 먹고 삼엄한 감시망
을 뚫고 비오는 밤에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넘어오게 되었다고 말했다.거
주 이전의 자유가 없고 허가 없이 타 지역으로 이동할 수 없는 북한이지만 요
즈음은 먹을 것 구하러 간다고 하면 여간해선 붙잡지 않는다고 한다. 김씨의
부인에 의하면 지금 북한의 학교에는 등교 못하는 학생이 절반도 더되고 아
예 문을 닫는 학교들도 있다고 한다. 사정은 공장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중
국쪽 접경지역에서 빤히 바라다보이는 함경북도 ‘무산시’에는 철강 공장이
즐비한데 단 한 군데도 가동이 되지 않고 있었다. 북한 식량난의 심각한 실상
은 두만강과 압록강을 사이에 둔 북한 중국 국경지대의 옥수수밭에서도 실감
할 수 있었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사이에 둔 중국과 북한의 옥수수밭은 너무
판이하다. 중국 땅의 옥수수는 사람키보다 크고 무성하다. 그러나 북한 땅의
옥수수는 불과 1m도 안되고 그나마 듬성듬
성한 데가 많다. 왜 그런가? 북한에
서는 비료가 없어 비료를 사용하지 못하는 데다 윤작도 하지 않은 채 오랫동
안 경작만 하는 바람에 땅이 황폐해졌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지금 북한은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는 자생능력을 상실했다고 말하고 있다.
에 머물고 있다. 탈북자가 정확히 얼마인지는 알기 어려우나 약 2~30만명 정
도 될 것으로 관계자들은 추정하고 있다. 이들은 지금 인접국 중국에서 참담
한 생활을 하는 가운데 북한으로의 송환의 공포속에 떨고 있다. 그래서 우리
총회 남북교회 협력위원회에서는 한기총 산하 북한난민 UN청원운동본부와 협
력하여 탈북자들을 난민으로 취급해 달라는 청원을 UN에 하기 위해 지금 서명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한편 총회 남북교회 협력위원회에서는
그들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 4명의 위원이 지난 7
월에 중국 현지를 답사하고 돌아온 바 있다.필자가 현지 답사 위원중의 한 사
람으로 탈북자들과 소위 ‘꽃제비’라고 불리우는 중국에서 구걸하는 탈북소
년소녀들을 만났을 때 무엇보다 안스럽게 느낀 것은 탈북 아이들이 그들의 나
이에 비해 키가 너무 작다는 것이었다. 조선족 자치주인 길림성 연변지역에
가면 탈북 청소년들을 쉽
게 만날 수 있다. 이 아이들은 한국에서 온 사람들
이 나타날 만한 곳을 잘 알고 있다. 예를 들면 호텔주변, 식당주변, 삼자교
회, 백두산 코스 등 한국에서 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중국 공안당국의 감시의 눈길을 피해 서너명씩 한국인에게 찾아와 도
움을 호소한다. 그러나 그들의 숫자가 1-2년전보다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그
만큼 감시가 심하고 공안당국에 붙잡혀 가거나 북한으로 송환된 아이들이 많
기 때문이다.필자가 중국에 간 것이 이번이 세번째이므로 이같은 사실을 피부
로 느낄 수 있었다. 탈북 청소년들을 만날 때마다 실감하는 것은 북한이 얼마
나 살기 어려우면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의 키가 저렇게 작을까 하는 것이다.
꼭 초등학교 2-3학년 정도밖에 안되어 보이는데 나이를 물어보면 16살이라는
아이도 있고 17살이라는 아이도 있다. 배가 볼록 나온 아이, 피골이 상접한
아이, 버짐이며 피부병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밤에 몰래 반도체 라디오
(트렌지스타)를 들어 남한소식을 알고 있었다는 탈북자 김두영 씨(55세. 가
명)와 그의 아내에 의하면 지금 북한은 식량 사정이 말이 아니라고 한다.
식
량 사정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
다. 그러면서 자신들도 견디다 못해 가만히 앉아 굶어 죽기보다는 붙잡혀 죽
는 한이 있더라도 탈북을 시도해 보겠다는 독한 마음을 먹고 삼엄한 감시망
을 뚫고 비오는 밤에 두만강을 건너 중국으로 넘어오게 되었다고 말했다.거
주 이전의 자유가 없고 허가 없이 타 지역으로 이동할 수 없는 북한이지만 요
즈음은 먹을 것 구하러 간다고 하면 여간해선 붙잡지 않는다고 한다. 김씨의
부인에 의하면 지금 북한의 학교에는 등교 못하는 학생이 절반도 더되고 아
예 문을 닫는 학교들도 있다고 한다. 사정은 공장도 마찬가지이다. 실제로 중
국쪽 접경지역에서 빤히 바라다보이는 함경북도 ‘무산시’에는 철강 공장이
즐비한데 단 한 군데도 가동이 되지 않고 있었다. 북한 식량난의 심각한 실상
은 두만강과 압록강을 사이에 둔 북한 중국 국경지대의 옥수수밭에서도 실감
할 수 있었다. 압록강과 두만강을 사이에 둔 중국과 북한의 옥수수밭은 너무
판이하다. 중국 땅의 옥수수는 사람키보다 크고 무성하다. 그러나 북한 땅의
옥수수는 불과 1m도 안되고 그나마 듬성듬
성한 데가 많다. 왜 그런가? 북한에
서는 비료가 없어 비료를 사용하지 못하는 데다 윤작도 하지 않은 채 오랫동
안 경작만 하는 바람에 땅이 황폐해졌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지금 북한은
식량난을 해결할 수 있는 자생능력을 상실했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