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운동을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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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보 제237호 사설에 ‘머물러선 교회 성장’에서 교단의 교세가 1년전
이나 지금이나 별 다를 바 없다고 지적하며 무엇이 이렇게 되어가는지 탄식한
다고 하였다. 이 문제는 우리 교단 목회자들이 더러 모이면 여러 가지 교회
의 일들을 이야기하며 나누는 대화 가운데 한약방의 감초처럼 나오는 한숨을 
짓는 관심사이다.양적 성장도 중요하지만 그나마 기존성도들이라도 성숙한 신
앙생활을 위하여 교육을 시켜 질적 성장을 돕고자 힘쓰고 있어도 교회 분위기
는 기쁨과 넘치는 은혜없이 침체가 되어 있다고 자평하고 있다. 대다수 목회
자들이 교회의 영적 분위기를 파악하고 있으면서도 그 해결 방안이 없이 목회
자 자신도 나약해지고 있는 현실을 볼 때 안타까울 뿐이다. 필자는 우리 개혁
교단의 교회성장이 정체된 상태는 부흥운동을 일으키지 아니한 목회자의 영적
지도력 상실이라고 생각하고 싶다. 본 기고문은 교단의 부흥단을 섬기고 있
는 총무로서 부흥운동이 교회성장의 동기가 된다는 측면에서 살피고 외치는 
견해이니 이해하고 공감해 주었
으면 한다.부흥이란 말은 영어로 Revivere에
서 온 말로 ‘다시 살아나다’ ‘소생하다’ ‘회복시키다’ ‘살게하다’의 
뜻이 있다. 구약성경에는 ‘하야’란 동사로 ‘재생시키다’ ‘생명을 주
다’ ‘소성시키다’ ‘구원시키다’ 등의 뜻으로 쓰이고 있다. 브리태니커 
사전에 의하면 기독교의 부흥운동(Revivalism)은 ‘기독교 내의 다시 새로워
진 종교적 열성의 한 예로 교인들과 새로운 구도자(새신자)들의 영적인 열성
을 일으키는 고조된 노력’이라고 하였다. 구약의 근거를 보면 가나안 정복 
중에 에발산과 그리심산 사이에서 말씀집회를 하고(수 8:30-35) 사무엘 선지
자가 미스바에서 회개 성회를 하고(삼상 7:3-17) 엘리야의 갈멜산 집회(왕상 
18장) 요나의 니느웨 외침(욘 3:4-9) 요시야 왕의 신앙개혁운동(왕하 22-23
장) 에스라의 수문앞 광장 대부흥집회(느 8장)들을 통하여 죄와 부패로 말미
암아 신앙의 힘을 잃고 쇠퇴해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르게 하고, 깨닫게 하
여 힘을 얻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였다. 신약의 근거를 보면 오순절 성령 역
사를 통하여 초대교회의 왕성한 부흥과 복음전파는 순교도 기뻐하며 힘을 내
었다. 
사도행전의 역사는 오직 성령에 의한 성령의 능력인 것이다. 교회부흥
의 힘과 동기는 성령의 역사이다. 교회가 날마다 더하게 하시고 가르침을 받
고 성숙한 신자가 되어 헌신하는 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지혜가 아니라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이다(행 2:42-47).기독교 2천년 역사속에 교회가 많은 시련
과 아픔 핍박 부패를 헤치고 오늘날까지 크게 발전되어 온 것은 각 시대마다 
신앙운동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초대교회 때는 오순절 성령강림의 역사로 교
회가 부흥되었고, 중세시대에는 종교적 정치적 교권적인 암흑속에 십자군운동
(여러가지 결과적인 모순도 있었다)으로 성지순례를 통하여 열심있는 신앙을 
추구하고 또한, 수도원운동으로 경건의 절제운동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코
자 했으며, 로마교회의 타락과 어두움에서 올바른 신앙의 종교개혁 운동이 일
어났다. 종교개혁 운동은 2천년 기독교 교회사상 최고의 교회개혁 부흥운동이
라고 할 수 있다. 근대에 와서 부흥운동은 독일의 경건주의운동, 영국의 웨슬
레 부흥운동, 미국의 대각성운동으로 교회부흥이 일어났다. 그 결과 전도가 
잘되었고, 교회가 영적 힘을 얻어 사회적으로 봉사운
동, 교육운동, 선교운동
이 일어나, 우리나라에도 선교사들이 들어오고 사회봉사, 선교, 교육이 기독
교의 사상으로 나라와 사회에 이바지했다. 한국 교회의 발전을 살펴보면 성장
의 원인과 동기는 부흥운동이다. 1903년 8월 원산에서 선교사들이 성경연구 
기도회를 갖고 사경회가 일어났고, 그 영향을 받아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
의 대부흥집회는 일제 식민지 통치의 어두웠던 암흑속에서 빛이었고 희망이었
다. 1907년 1월 6일 장대현교회에서 일어난 폭발적인 부흥운동에 힘입어 당
시 학생 2천여 명이 전도운동을 전개하였다. 이로 인하여 당시 8만 명의 신자
가 18만 명으로 부흥되었다.해방과 6.25동란 전후로 한국 교회는 어려운 현실
적인 상황에서 신흥종교와 신비적인 이단 등의 출현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는 교회 부흥과 복음전파를 위하여 부흥운동이 계속되었다. 이성봉 목사, 박
재봉 목사, 박용묵 목사 등 훌륭한 부흥사들의 활약이 침체속의 한국 교회를 
일으켰다. 1960년대 각 교단의 분파와 분열의 아픔이 있었지만 1965년 초교파
적으로 ‘삼천만을 그리스도에게로’라는 대중 전도집회가 서울운동장에서 개
최되었고 이후 계속
된 부흥전도집회가 지방별로 이루어지면서 당시 4만 명의 
결신자를 얻었다. 당시 부흥회는 월요일 밤부터 토요일 새벽까지 하였다. 특
히 성령운동으로 세워진 오순절계통의 순복음교회는 당시 부흥운동으로 성장
한 교회가 되었다. 60년대 말의 부흥운동은 초교파적 운동이었다. 이웃 교회
가 부흥회를 한다면 내 교회 부흥회
하는 듯 기뻐하며 참석하고교단 교파를 초월하여 성도간에 교제가 활발하였
다. 당시 선교운동이 공단과 노동자들에게 파급되어 산업선교회가 활발히 활
동되었다.교회가 새벽기도의 열심 때문에 당시 새마을운동 노래 가사까지 인
용되게 되었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도 국가는 정치적 사건들이 많았고, 유신
체제 아래와 그리고 10.26사건 등 어려운 시련속에서도 교회는 계속 부흥운동
으로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여 700만의 기독교인 숫자로 증가되었다. 그리
고 초교파 부흥협회가 조직되면서 활발히 부흥회가 전국적으로 개최되었고 
1973년 빌리그래이엄(Billy Graham)의 3차 집회가 여의도에서 5일동안 회집되
면서 수만명의 결신자를 얻었다. 1974년 Explo74 대회로 큰 전도운동이 일어
났다. 한국교회의 부흥발전은 7
0년대 말에 이룩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
다. 80년대에 들어서면서 군부정치로 5.18 광주민주화운동등 유혈사태와 6.29
선언등 정치적 민주화운동이 일어나면서도 교회는 계속적인 부흥회와 전도열
기가 계속되어 1990년 통계에 의하면 3만5897개의 교회에 6만4688명의 교역
자, 1212만 1837명의 교인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중반
까지는 부흥회보다 질적성장을 위한 성경공부라는 바이블 스터디(Bable 
study)가 교회마다 바람을 타듯 일어났다. 풍요한 생활문화 속에서 목회자들
도 교회의 내실을 다진다는 생각에 교회 교육수준을 높이기 위해 지식주의 학
문주의를 추구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한국 교회는 기도와 부흥운동이 
식어지면서 힘을 잃어가게 되었다.지금까지 뒤돌아보면서 우리는 교회가 성령
의 능력을 의지하는 부흥운동으로 발전하고 성장되었음을 긍정 평가해야 한
다.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교회 성장은 목회자 자신의 긍정적인 성
령 역사를 의지하는 활력있는 비젼을 가지고 교회를 이끌어 가야 한다. 건전
한 은혜운동이 1년에 2-3차례 또는 3-4차례 있어야 한다. 우리 교단은 개혁
적 사명
감이 높다(?)고 우리들이 자평한다(밖에서는 그렇게 보고 있지 않지
만). 우리들만이 높은 신학수준을 갖고, 바르게 하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다른 교단은 부패하고 잘못된 것처럼 인식하는 교만이 생겼다고 할 수 있다. 
이러므로 부흥회나 건전한 은혜운동을 수준이하의 운동으로 보고, 높은 학문
(?)과 높은 신학(?)적인 측면에서 부흥운동을 제한시키거나 무시하지는 않는
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물론 이렇게 된 여러 원인이 있다면 부흥사들의 매너
와 사역 그리고 여러 가지 발생된 도덕적 타락등 부흥사들의 어두운 면들이 
교회에 상처를 준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필자 자신도 부흥사들의 
많은 시행착오를 인정하고 싶다(지금은 부흥사들의 교육이 자주 있음). 그러
나, 부흥회가 교회의 활력과 성장에 역사적으로 증거하고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부흥운동은 목회자에게 도전을 주고 성도들에게 힘을 주며, 교회 부흥
과 성도들에게 영적 성장을 해준다는 측면에서 동의해 주기 바란다.진정한 한
국 교회의 개혁도 성령의 능력과 부흥운동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각 교회마
다 기도운동과 은혜로운 운동을 다양하게 만들어서 성령의 
능력이 교회를 이
끌도록 부흥운동을 일으켜야 한다. 건전한 은혜운동이 교회의 영적 질적 성장
에 큰 도움이 됨을 깊이 생각하기를 바란다./심훈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