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빈치코드’와 ‘유다복음’한국교회에 유익하다 자신의 질환을 알려주는 좋은 시금석이라 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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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코드’와 ‘유다복음’한국교회에 유익하다
자신의 질환을 알려주는 좋은 시금석이라 할 수 있어

성경에 대한 확고한 신뢰와 
계시된 모든 내용 확신 살피는 기회 

최근 ‘다빈치 코드’와 ‘유다복음’이 한국교회의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
다. 이미 소설 ‘다빈치 코드’가 발간됐고 영화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에서는 이 영화의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을 
내는 등 강경대응하고 있다. 

마치 이 영화가 상영되면 그리스도의 복음이 허물어지기라도 하듯, 교회가 
위기에 처하기라도 하듯 사생결단(死生決斷)의 각오로 맞서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 뒤를 이어 ‘유다복음’이 한국교회를 흔들 참이다. 먼저는 언론들
이 나서고 뒤이어 이런저런 학자들의 견해가 뒤따르고 있다. 혹자는 예정과 
선택의 관점에서 가룟 유다의 입장을 재해석하기도 한다. 또 그 반대 입장
의 논박도 뒤따른다. 어쨌건 한국교회는 다가온 문제로 인해 바짝 긴장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사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한국교회의 이러한 걱정과 호들갑은 기우
(杞憂)에 불과하다. 오히려 자신의 질환(疾患) 정도를 알려주는 좋은 시금석
(試金石)이라 할 수 있겠다. 

엄밀히 따져보면 ‘다빈치 코드’나 ‘유다복음’은 참된 신자들에게는 아무
런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존재다. 생각해보라.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계
시된 말씀인 정경(正經) 66권이 아님은 물론, 심지어 외경(外經)에도 포함되
지 않은 것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신앙하고 사고(思考)하고 살아가
는 이들을 실족하게 하거나 회의(懷疑)에 빠지도록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니, 그러한 것을 복음의 비밀(?)이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이는 사람은 참된 
기독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문제는 교회가 나서서 우려
할 일이 아니라, 무시해도 좋을 문제이다. 말씀에 기반을 둔 참 교회라면 이
러한 문제로 인해 흔들리거나 무너질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
다. 

하지만 한국교회의 현 상황을 보면, 한기총 식의 대처가 필요할 수도 있겠다
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왜 그런가? 한국교회의 
현실이 참 교회의 그
것에서 너무 멀어져 있기에 그러하다. 사실 한기총이 이러한 현실에 대해 뼈
아픈 자성을 해야 마땅하지만, 전혀 그럴 것 같지 않다는 점에서 안타깝기
만 하다. 기자가 느끼는 최근의 한기총은 자신에 대한 깊은 자성과 회개는 
부족하고 ‘목숨을 건’, ‘순교의 각오’만 계속하고 있어 현실인식 부족
은 물론 그 진지함에 있어 많이 부족해 보인다.

잠시 곁길로 빠진 것 같은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최근 위기를 느낄 수
밖에 없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자. 먼저는 말씀에 대한 바른 신앙의 자세
가 있는가 생각해볼 때, 한국교회는 ‘다빈치 코드’와 ‘유다복음’에 흔들
릴 만하다. 입만 열면 하나님과 성경을 말하지만, 참으로 성경이 제시하는 
계시를 바라보려 하지 않고, 말씀 앞에 경외심을 가지고 서려고도 하지 않는
다. 늘 ‘말씀은 그렇지만, 이론은 그렇지만 현실이 그러한가’를 입에 달
고 산다. 성경말씀은 믿지 않고 거기서 벗어나 자신의 가려워진 귀를 긁어
줄 거짓선생의 말에 더 귀를 기울인다. 

그러다 보니 정경에 대한 확고한 신뢰가 없다. 왜 이 성경이 정경에 포함되
었는가에 대한 이해
도 없다.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교회사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
만 성경에서 계시된 참된 믿음과 상관없이 자신들의 종교적 욕망과 이기심
에 충실한 우상을 섬기기 때문이다.

한기총이 이러한 냉정한 현실 진단 아래 강경대응 입장을 천명하고 나선 것
인지 솔직히 의문이지만, 결과적으로 한국교회의 형편은 제대로 짚은 셈이 
됐다. 하지만 그런 한국교회를 만들어놓은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이가 바로 
그들, 소위 교회의 지도자들이다. 이른바 병 주고 약 주는 셈이다.

가볍고 천박한 복음을 양산해낸 거짓선생들에 의해 한국교회는 뿌리 없는 나
무요, 덩치만 큰 속 빈 강정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
무는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아니 저주와 심판의 대상이다.

‘다빈치 코드’와 ‘유다복음’의 공격 앞에서 한국교회는 결사반대와 상영
금지를 외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실체를 제대로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에
게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와 인도로 교회사 가운데 정경으로 확인된 66권 
성경에 대한 확고한 신뢰가 있는지, 또 그 말씀에 
기록된 삼위 하나님과 그
분에 대해 계시된 모든 내용에 대한 확신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더구나 교회의 ‘선생’된 이들은 그러한 말씀을 성령의 조명과 성경을 통
해 철저하게 연구하고 가르치고 있는지 늘 점검해야 한다. 그렇다면 순교의 
각오나 결사항쟁의 자세가 없어도 교회는 든든히 서갈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현실에 대한 처절한 자성과 회개 없이 단순히 호들갑 떠는 것을 하나
님의 영광과 이름을 위한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다빈치 코
드’와 ‘유다복음’은 한국교회에 양약(良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