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버린 선장, 십자가를 버린 신앙생활
< 조봉희 목사, 지구촌교회 >
“세월호 승객중에도 길이 기억해야 할 훌륭한 영웅들 있어”
우리는 지난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서 일어난 ‘세월호’ 참사로 민족적 아픔과 국민적 상처 속에 살고 있다. 무엇보다도 ‘배를 버린 선장’에게 큰 허탈감과 상실감을 느끼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런 상념에 젖어봤다. “희생을 버린 목사, 헌신을 버린 직분자, 책임을 버린 관료, 양심을 버린 사람, 사랑을 버린 부부, 리더십을 버린 지도자들. 그리고 십자가를 버린 교회!!!” 결국 배를 버린 선장이 나의 모습일 수 있다. 그리고 십자가를 버린 신앙생활을 할 수도 있다.
이 선장은 배를 버리고 자기만 살겠다고 도망치므로 리더의 자존심을 완전히 뭉개버렸다. 그런데 102년 전 초대형 여객선 타이타닉호의 선장 에드워드 스미스는 침몰사고가 발생했을 때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구출하려고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하다가 자기 목숨마저 장렬하게 바친 숭고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 당시 구조된 자 중에서 그 선장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생존자에 따르면, 스미스 선장은 한 손으로 아이를 감싸 안은 채 얼음물에서 사투를 벌였다고 한다. 스미스 선장은 아이를 구조 보트에 태운 후에도 다른 승객을 구하러 떠났지만 결국 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건이 수습된 후 타이타닉의 이등항해사 찰스 라이톨러는 미국 상원 청문회에서 이런 감동적인 증언을 했다.
“우리는 선장의 지시에 따라 여성과 어린이들만 구명보트에 태웠습니다.” 그러자 “그것이 바다의 법칙이냐”는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이등항해사는 “그것은 인간 본성의 법칙”이라고 또 한 번 감동적인 답변을 했다. 얼마나 훌륭하고 숭고한 태도인가?
타이타닉호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선장 에드워드 존 스미스는 여객선의 선교가 물에 잠겨 유리창이 수압(水壓)으로 깨질 때도 조타키를 붙잡고 그대로 서 있었다고 한다. “스미스 선장의 허리까지 물이 차오른 것을 보았다”고 말하는 자도 있다.
스미스 선장의 고향인 영국 리치필드에는 기념동상이 서 있는데, 그 동판에는 그가 위기 상황에서 선원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 써있다고 한다. ‘Be British!’(영국인답게 행동해).’ 우리는 이렇게 표현하면 어떨까? ‘Be Believer’(신앙인답게 행동해).
지난 2009년 미국 항공사(US Airway) 1549편이 미국 뉴욕 허드슨 강에 불시착한 사고를 기억할 것이다. 그 여객기는 이륙 후 4분 만에 두 날개의 엔진에 새떼가 들어와 치명적인 고장이 나는 위기 상황에 처했다.
그때 승객의 생명을 책임지고 있는 기장 체슬리 설렌버거는 혹한으로 얼음이 언 허드슨 강 위로 비상 착륙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그는 곧바로 승객 155명 모두를 구조하기까지 혼신을 다해 리더십을 발휘하여 ‘허드슨 강의 기적’을 일으켰다. 이처럼 리더 한 사람의 판단이 승객 모두의 생사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번 ‘세월호’ 승객들 중에도 타이타닉호의 스미스 선장과 같은 훌륭한 영웅들이 있다. 박지영이라는 여자 승무원이다. 그는 배가 침몰하는 위기상황에 처한 학생들에게 최선을 다해 구명조끼를 입혀주었다.
학생들이 “언니는 구명조끼를 입지 않느냐?”는 질문에 “너희들 다 구하고 난 나중에 나갈게”라고 말하며 4층까지 올라가 구명조끼를 구해 3층 학생들에게 건네며 마지막까지 승객을 구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선원은 맨 마지막이야!!!”
고등학교 2학년 정차웅 군은 검도 3단 유단자답게 친구에게 자기 구명조끼를 건네주며 “내 구명조끼 네가 입어!”라고 한 후 물살에 떠밀려 살아오지 못했다.
단원고등학교 남윤철 교사는 자기 제자들을 최대한 빠져나가도록 돕다가 본인은 끝내 나오지 못했다.
올해 첫 교편을 잡은 새내기 선생인 최혜정 교사는 “나는 걱정하지마. 너희부터 나가고 선생님이 나갈게”라고 말하면서 ‘세월호’ 침몰 당시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10여 명의 학생을 구출해주고, 자기 목숨은 잃었다. 이것이 십자가를 지는 숭고한 정신이 아닐까?
‘세월호’의 사무장 양대홍 씨는 인명구조에 얼마나 혼신을 다 바친 영웅인지 머리가 숙여진다. 그가 자기 부인과 나눈 마지막 통화 내용이 많은 사람들을 울리고 있다.
“여보, 지금 아이들 구하러 가야해. 수협 통장에 돈 있으니까 아이 등록금으로 써. 여보, 지금 아이들 구하러 가야 해. 길게 통화를 할 수 없어. 사랑해.” 이것이 그가 부인과 나눈 마지막 통화였다. 그런데 선장은 자기 조카들 같은 학생들을 버리고 도망쳐 나왔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진정한 십자가 신앙을 요구하신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면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한다”(눅 9:23).
오늘 나도 ‘세월호’의 선장처럼 십자가를 버린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음을 긴장해본다. 나이 어린 학생들이나 자기 목숨을 바치는 살신성인의 사랑으로 제자들을 구출해준 교사들처럼 십자가를 지는 숭고한 삶을 살고자 다짐해본다.
예수님은 우리가 십자가를 지는 삶을 통해 생명을 취할(use) 것인가, 십자가를 지는 삶을 통해 생명을 버릴(lose) 것인가를 물으신다. 인생은 어차피 버리느냐 아니면 취하느냐(lose, or use)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이런 질문으로 살아야 한다. 십자가를 피할 것인가, 질 것인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지난 2007년 7월 아프가니스탄 납치범들에 의해 선교 현장에서 순교했던 배형규 목사의 십자가 신앙을 마음에 새겨본다. 그가 22명의 청년 사역자들과 피랍되었을 때 그는 한두 사람의 죽음을 예견하고 인솔자로서 이렇게 말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협상을 유리하게 끌고 가기 위해 우리 중 한 두 사람을 죽일지 모릅니다. 아마도 선전 효과를 위해 비디오를 찍으며 총살을 할 것입니다. 그때는 제가 먼저 앞장을 서겠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예수 믿고 구원을 받으라고 말하겠습니다.”
그의 예견대로 그가 첫 번째 희생자로 선택되었을 때 그는 의연하게 이렇게 마지막 말을 남기고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믿음으로 승리하세요!” 이처럼 십자가를 결코 피하지 않는 신앙, 오히려 십자가를 달게 지고 가는 신앙이 얼마나 숭고한가?
이것이 오늘의 우리 한국교회를 이루어놓은 순교자 주기철 목사와 손양원 목사를 비롯한 위대한 영적 영웅들의 십자가 신앙이다. 오늘 우리는 숭고한 인생을 살기 위해 다시 한 번 마음을 다짐하는 질문을 해보아야 한다.
배를 버린 선장처럼 희생을 버린 목사, 헌신을 버린 직분자, 책임을 버린 관료, 양심을 버린 인생, 사랑을 버린 부부, 리더십을 버린 지도자, 그리고 십자가를 버린 신자가 되지 않도록 순수한 각오가 필요하다.
십자가를 피할 것인가, 질 것인가?
지면을 통해서라도 함께 찬양하고 싶다.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 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저들 대답하였다.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당신의 형상 만드소서. 주 인도 따라 살아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