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 조기은퇴 유감_김수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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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조기은퇴 유감

 

< 김수환 목사, 군포예손교회 >

 

 

“사람에겐 나이 숫자 분량만큼 삶의 지혜와 깨달음 감춰져 있어”

 

 

“철들자 노망”이라는 옛말이 있다. 사람이 인간의 도리를 깨닫고 성숙해 진다는 것이 그만큼 더디고 어렵다는 얘기이다.

 

대다수의 동물들은 태어나자마자 서서 걷고 뛰어다닌다. 그리고 2-3년도 채 안되어서 어른으로 다 자라버린다. 유독 인간만은 임신기간도 길고, 성장하는 시간도 오래 걸린다. 제 발로 아장 아장 걷는데 만도 돌이 지나야하고, 자유롭게 걷고 뛰려면 유치원에 다닐 나이는 되어야 한다. 아무튼 육체적인 성장도 최소한 20년이라는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인간의 정신적인 성숙은 육체적인 성장보다 훨씬 더 더디고 복잡하다. 전에는 남자의 경우 군대를 다녀오면 철이 좀 드는 듯 했었지만, 군 생활이 옛날 같지 않아서 그런지 별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나 자신도 이따금씩 유아적인 티를 벗어버리지 못한 것 같은 생각이 종종 든다. 정말 ‘철들자 노망일까’ 걱정이다.

 

신학졸업 후, 사회적 경험도 거의 없다 시피 한 아직 새파란 전도사가 부모님 같고 조금 과장하면 할아버지 할머니 같은 분들 앞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이란 이렇고 신앙이란 저렇고 등등’ 거침없는 설교를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오금이 저려온다. 많은 성도님들께서 귀엽게 들어 주셨으리라 짐작하지만, 솔직히 그때 무슨 설교를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물론 욥의 친구 중 “대인이라고 지혜로운 것이 아니요 노인이라고 공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욥 32:9)고 했던 엘리후와 같은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젊은 사람도 나이 든 사람 못지않게 더 깊은 것을 깨닫고 지혜로울 수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주 특별한 경우요, 결코 세상을 살아온 나이를 무시할 수가 없다. 인생은 희노애락의 과정 속에서 삶의 지혜와 깨달음이 묻어나는 것이다. 성경이 “너는 센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라”(레 20:32)고 권면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뿐만이 아니다. 나보다 연장자라는 단 하나의 이유 때문에라도 우리는 그 앞에서 일어서야 한다. 그에겐 내 나이의 숫자와 차이가 나는 분량만큼의 지혜와 깨달음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다.

 

사람이 하루를 살아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사람들 모두마다 그렇게 한 달을 살고, 1년을 살아낸 것이다. 거기엔 결코 가볍지 않은 땀과 한 숨과 슬픔과 눈물이 흘려졌고, 그곳에서 지혜와 깨달음이 산출되어 나온 것이다.

 

지난 I.M.F 이후 많은 사람들이 명퇴라는 명분하에 정년보다 일찍 직장을 떠나는 일이 빈번해졌다. 몇 년 전부터는 교회에서도 목회자 조기은퇴 바람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조기은퇴하는 것이 대단한 신앙의 용단인 냥, 앞서가는 신선한 교회인 냥 미화되고 있다. 마치 정년을 다 채우면 욕심 있는 목회자가 되고, 조기은퇴를 하면 인간의 명예와 사욕을 버리는 목회자로 인식되고 있는 듯하다.

 

더 나아가 나이든 목회자가 있으면 무조건 낡은 교회가 되고, 젊은 목회자가 오면 저절로 젊은 교회가 될 것이라는 이상한 기대들이 조기은퇴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는 것 같다.

 

목회자가 건강을 잃었거나 다른 특별한 사유가 있어서 조기은퇴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이상한 유행 바람에 떠밀려 목회일선에서 일찍 물러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교회적으로도 너무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교회 성도들도 막연히 젊고 새로운 목회자란 기대감 때문에 이런 분위기를 부추기거나 방관해서는 안 된다. 좀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한다.

 

교회는 단순히 종교적인 강연을 듣고, 경건한 지식과 정보를 주고받는 곳이 아니다. 아담 안에서 타락하고 부패한 우리 존재를 인격적으로 훈련하고 변화시키는 곳이다. 이것은 책을 통해서 얻은 지식만으론 부족하다. 젊은 패기만으론 한계가 있다. 비오고 바람 부는 숱한 나날 속에서 한 올 한 올 뜨개질 하듯 살아온 인생이 필요한 것이다.

 

군대 간 아들의 사고소식을 듣고 마음을 졸이고, 결혼한 딸이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는 전화를 받고 하얗게 밤을 세워본 나이가 될 때 비로소 목회할 정년기가 된 것이 아닌가? 설교 같은 설교를 할 나이가 된 것이 아닌가?

 

평생 그렇게 땀 흘려 만들어진 소중한 경험을 목회 현장보다 더 가치 있게 투자할 또 다른 곳이라도 있단 말인가? 무엇에 쫓기듯 은퇴를 서두르는 모습들이 안타깝다. 그것은 우리의 평균수명이 늘어났기 때문만은 아니다. 인생을 경험하고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 정도의 시간 소요는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목회는 인생을 다루는 것이요, 우리는 엘리후가 아니다. 몸소 살아보고 겪어봐야 만이 비로소 깨닫는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