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주신 역사적인 장로교회 안에 담긴 섭리 _나택권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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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주신 역사적인 장로교회 안에 담긴 섭리

 

 

< 나택권 장로, 호산나교회 >

 

 

“목사가 협력의 주체가 되고 장로는 협력체가 되어 나갈 때 그 당회는 날로 발전해가는 기관이 될 것”

 

 

시작하는 말

 

장로교정치의 제도적 측면이나 현실적 측면에서 볼 때 개교회의 모든 정책 방향과 중요한 사안의 결정은 대부분 대의기구인 당회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만일 장로교회에서 문제가 있다면 이는 제도상의 문제라기보다는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의 문제라 할 수 있다.

 

여론조사를 보면 교회 운영에 있어서 당회가 거의 절대적 역할을 한다는 시각을 가진 목회자가 87%이다. 또한 목회자가 정책을 입안하고 결정하며 추진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어려움이 발생했을 경우 그 어려움이 당회원인 장로와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목회자 91%에 이른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개교회가 아파하고 있는 문제이며 목회자들이 말하는 목회의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회가 정책과 사역의 내용들을 결정하고 추진하는 주체로서 조화롭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임을 반증하는 통계라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원만한 당회의 운영을 위한 장로교회의 특성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이해가 필요할 것이다.

 

1. 서로 존중해야 할 직분의 다양성

 

한국 장로교는 전통적으로 교인들의 대표인 장로들보다는 목사의 영적 권위를 더욱 강하게 강조하는 구조적 특성을 보여 왔다. 그러나 사회가 한 사람의 주도적 권위를 인정하던 산업사회를 지나 전문화와 특성화를 지향하는 후기산업사회로 들어오면서부터 전문성을 지닌 성도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게 되었고, 이것은 당회장 중심으로 움직여가던 당회에서도 많은 변화의 바람을 몰고 왔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목회자들이 당회원인 장로들을 바라보는 시각은 사회적인 입지나 외적 상황보다도 그리스도를 본받아 항상 섬김이로 서 있는 제자도를 앞세워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당회에서는 행정 절차를 두고 갈등을 겪는 경우가 생길 수 있고, 어떤 문제를 불공정하게 처리한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으며, 교회가 나아가는 방향에 대하여 불만을 느끼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들 모두는 대부분 선한 의도로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아야한다.

 

왜냐하면 사람들 사이에는 실제적이고 천부적인 차이가 존재하고, 모든 사람은 각각 다른 경험을 기준으로 문제를 바라보며, 다양한 견해를 가지고 문제를 접근하기 때문이다. 당회는 이러한 차이를 존중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각 사람들이 지닌 특성을 무시하고 리더들이 원하는 모양대로 획일화하려 할 때에 흔히 말하는 당회의 분란과 장로들과 목회자들 사이의 반목이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성경은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벧전 5:3)고 했다. 또한 성경은 리더십을 존중하라고 가르치고 있다(살전 5:12-13). 하나님께서 주신 리더십의 목적은 사람들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인도하는 것이다. 반면에 리더가 자신의 권위로 지배하려들 때 교인들은 자기가 고유의 사역을 위해 세움을 받았다기보다는 리더의 사역을 대신한다는 시녀역할로 생각하기 쉽다. 이러한 인식 때문에 당회에서 분노와 마음의 동요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2. 당회 존재의 본질적 의미

 

목회자들의 역할은 성경에서 말한 대로 교인들이 목회자의 일을 대신 하도록 그들을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교인들이 그들 자신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세워 주는 것이다. 장로는 목사에게 배워서 말씀으로 성장하며 다스리는 일도 목사에게서 배워서 다스리는 직분을 수행하는 것이 아닌가?

 

장로들은 당회에서 부당하다는 생각과 상처받은 마음 때문에 함께 있는 것을 불편해 할 수 있다. 이럴 때 서로의 다양성을 존중하지 않고 서로의 차이점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이런 현상들을 악한 것으로 간주하여 이것을 강단의 주제로 내세운다면 서로의 갈등은 해소될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일부 목회자들의 시각 속에는 장로의 직무가 치리보다는 교회 행정과 관리 또는 목사를 견제하는데 치중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치리’라는 말은 이치나 법리에 따라 다스린다는 뜻이고 치리회란 다스리기 위해 모인 회를 의미한다. 장로교에 있어서 치리란 좁은 의미에서 권징을 말하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권징과 행정뿐 아니라 당회, 노회, 총회라는 회의체인 치리회에서의 활동을 하는 정치도 포함하고 있다.

 

때문에 교회는 당회에 행정권과 권징권을 주었고 목사와 장로가 협력해서 운영토록 했는데 교회에서 행정을 하든 권징을 하든 이것은 교회의 신성유지와 질서유지를 위한 것이며, 교회의 평화와 교인간의 화평을 도모하기 위함이다. 헌법에서는 장로의 직무와 치리회에서의 장로직무를 각각 말하고 있는데 이것이 장로를 세우는 이유와 목적이 되는 것이다.

 

존 칼빈이 말한 대로 장로의 역할은 교인들을 심방해서 그들과 그들 가정의 신앙생활을 잘 살펴 당회에 보고하고 당회로 하여금 필요한 돌봄, 즉 구제나 위안이나 권면이나 또는 권징 등의 치리를 행사하는 것이다. 이러므로 당회는 입법, 행정, 사법의 3가지 기능이 있지만 당회 주요 직무는 행정에 관한 업무가 많을 수밖에 없다. 또한 당회의 직무는 목회자들의 목회업무와 동시에 수행되어야 할 업무이므로 관심을 가져야만 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당회의 직무는 교회의 책임자인 당회장 아래서 수행되어야 하고 당회원은 당회장의 지도아래 분담하거나 대행하도록 되어 있는데 교회에서 장로들을 참정케한 이유는 교인들로부터 선임된 목회자들과 원로들이 역할 분담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함이다.

 

교회에서 이기고 정복하고 승리하고 지배하여 억압하고 제압하는 영광적인 사고방식은 필요하지 않다. 십자가의 승리는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지 이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회자가 독주를 하고 장로가 행정을 마음대로 해야 장로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높아지려고 다투고 싸우며 투쟁하는 것은 종교의 기본을 잃은 처사이다.

 

교회에 목사들과 장로들이 왜 있어야 하며 당회와 노회, 총회는 왜 있어야 하는가? 이것은 주님께서 먼저 하나님의 뜻을 펴 나가기 위해 목사를 부르셨고 이들을 교회에 보내시고 목사들에게 자기 교회를 위임하신 것이며,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셨듯이 교인들의 뜻을 반영케 할 장로들을 뽑게 하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역사적인 장로교회적 섭리이다.

 

마치는 말

 

주의 종으로 부름 받은 목사들과 교인들의 대의직으로 선출된 장로들이 십자가를 질 때 십자가의 능력이 나타나며 복음의 능력이 있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역사적인 장로교회적 섭리를 망각하고 당회나 노회, 총회에서 사리사욕으로 또는 수의 힘으로 개인의 권익과 이해타산을 놓고 혈기를 부리며 적대시하고 파당을 지어 세상보다 못한 추한 정치를 하는 것은 자멸하는 길이고 혼란과 화를 자초하는 길이다.

 

이제는 목회자이든 장로이든 새로운 변화가 있어야 한다. 즉 의식구조를 바꾸는 변화이다. 목회자는 당회장으로서 성도인 장로들에게 절대로 밀려서는 안 된다는 의식, 장로들은 파워가 커져야 목회자들이 물로 안 본다는 의식 등, 이러한 잘못된 의식들은 장로교회의 본질적인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데서 오는 것이므로 속히 버려야 할 것들이다.

 

치리권은 목사와 장로와의 협력 관계에서 행사하는 것이 장로교회의 특징이다. 즉 교회의 일을 모든 교인이 힘을 합해서 수행하는 데에 장로교 제도의 특징이 있다는 것이다. 교회 안에서의 치리권 행사는 말씀 증거의 직무를 전담 수행하는 목사가 협력의 주체가 되고 장로는 협력체가 되어 나갈 때 그 당회는 날로 발전해 나가는 기관이 될 것이다.

 

교회에서는 결코 어느 한쪽만이 소유하고 있는 고유 권한이란 없는 것이다. 교회의 치리권은 개인에게 있지 않고 당회, 노회, 총회와 같은 치리회에 있음을 명심하여야 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고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시 3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