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징조례 전면 개정안 노회 수의건’에 대한 소견 _이차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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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징조례 전면 개정안 노회 수의건’에 대한 소견

 

< 이차식 목사, 덕일교회 >

 

 

“박윤선의 권징조례는 철저히 성경에 기초한 자랑스런 좌표”

“권징조례 전면개정안은 박윤선의 권징조례로 되돌리는 것”

 

 

제94회 총회에서 중서울노회가 권징조례에 대한 전면 개정을 헌수위에 요청한 바 있다. 당시 중서울노회가 권징조례의 개정을 제안한 근거는 대략 다음과 같았다.

 

① 현 권징조례가 담고 있는 권징에 대한 개념과 치리회 등의 개념에 대한 오해, ② 재판상의 편리성을 위한 내용으로 권징에 대한 본래 목적과 기능에서 벗어난 점, ③ 오직 성경에 기초를 두어야 할 권징조례가 세속적 형사규칙과 절차가 들어와 있는 점, ④ 현 교회 정치와 권징조례 사이의 근본적인 문제점 등이었다.

 

이점에 대해 모 노회에서 권징조례연구위원회를 만들어 오랫동안 연구 검토하여 작성한 안을 헌수위에 보내왔다. 헌수위는 여러 차례 모임을 가지면서 그 노고에 감사한 마음으로 그 안을 현행권징조례와 박윤선의 권징조례와 함께 비교 검토하였고, 제72회 총회가 수정 채택한 권징조례(이하 박윤선 권징조례라 칭함)를 바탕으로 약간의 자구적인 수정만을 하여 총회에 보고하였으며 지난해 제96회 총회는 헌수위의 요청을 받아들여 노회 수의를 하게 함으로써 각 노회가 수의를 하게 이른 것이다.

 

이에 총회헌수위가 박윤선의 권징조례를 채택한 근거가 무엇이었는지 짧은 소견이지만 피력해 보고자 한다.

 

1. 어떠한 사람이나 치리회라도 인위적인 법을 만들어 양심을 묶어 놓는 법을 내릴 수 없다.

 

치리회나 교회가 신자들의 양심을 묶어놓는 법을 만들어서 하달할 수 있는가? 이러한 측면에서 고 박윤선의 권징조례(제72회 총회 1987.9.22. 숭신교회에서 수정채택)는 권징의 의미를 인위적 법이 아닌 “그리스도의 법의 실시”로 규정하고 있다. 권징은 예수그리스도께서 그 교회에 설립하신 법도를 시행하는데 초점이 있으며 세상 법처럼 인간의 죄를 드러내고 재판을 하는데 초점이 있지 않다.

 

세상 법은 정의를 세우기 위해서 형법이 있으며 죄에 대한 형벌 때문에 형사소송 규칙과 같은 외적 형벌을 시행한다. 반면에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과 죄인에 대한 구원을 목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에 법정에서처럼 어떤 식으로 수사가 진행되어야 하며 며칠 동안 할 것인가 등의 획일화된 규칙이나 법들을 나열할 필요가 없다.

주님의 교훈하신 말씀에는 이런 표현들이 없다. 단지 독특한 환경에 따라 취급하되 회개의 표징이 나타나고 영적 목적이 성취되었으면 더 이상 권징시행이 계속 될 이유가 없다. 이러한 사상이 박윤선의 권징의 의미(그리스도의 법실시)에서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2. 교회 권징은 재판중심이 아니라 증거중심이다.

 

박윤선 권징 제1장 제4조에 의하면 권징을 할 만한 사건을 ‘확실한 증거가 있는 죄과’(마 18:16)로 규정한다. 총회는 자체의 힘으로는 신자들의 양심을 구속할 명령 선포의 권위를 가지지 못한다. 총회는 교회헌법을 해석할 ‘전권’이 있다고 하면 안 된다. 웨스트민스터 원본이나 미국 북장로교 헌법에는 ‘전권’이라는 말이 없다. 총회는 오직 성경의 진리에 근거하여 성경의 가르침의 방식대로 그분의 말씀을 수종들뿐이다. 이러한 권징의 근본 원리들이 한국의 어느 교단의 권징보다도 합신교단 초기 1987년에 수정 채택한 박윤선의 권징에 잘 드러나 있다고 사료된다.

 

권징의 목적은 재판만으로 성취되지 않으며 무엇보다 교회는 증거단체이지 세력단체가 아니다. 교회는 주님의 영예추구와 죄인의 구원을 목적으로 한다. 마태복음 18장의 말씀에 의하면 권징은 교회 직원으로부터 출발하지 않고 성도로부터 시작된다. 우리는 교회를 섬길 때 결과는 주님께 맡겨드리고 그분의 가르침의 방식대로 순종하면 그만이다.

 

3. 교회 법규는 법의 균형 잡힌 나열보다는 내용을 중시해야 한다.

 

박윤선의 권징조례 제2장 제9조의 “마 18:15-17의 중요성”이라는 주제는 권징에 있어서 항상 교회가 잊어버려서는 안 되는 원리이다. 이 구절은 권징에 있어서 우리가 반드시 따르지 않으면 안 될 원리이다.

 

권징에는 자가 권징, 상호 권징, 교회의 권징이 있다. 권징의 실행은 당회가 하는 것이지만 한사람의 경고나 두세 사람들의 진지한 권면이 먼저 선행되지 않고는 당회조차도 어떤 내용을 다룰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 구절은 은밀한 죄에 대해서만 적용하도록 규정된 것이다. 공공연한 죄의 경우 이를테면 거짓교리나 이단 공적 분리와 같은 공적 죄의 경우는 공적 책망과 때로는 신속한 재판도 필요한 것이다.

 

그러한 경우라도 교회의 권징의 동기, 과정 그리고 목적은 세상법정에서 하는 것처럼 여러 규칙들을 세워놓고 획일화된 그것에 따라 행하게 되면 교회속성을 놓쳐 버리게 되어서 교회가 오히려 상처받고 사분오열되고 교회답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박윤선의 권징조례는 모든 조항과 기본 정신이 철저히 성경에 기초를 두고자 애쓴 흔적이 타 교단의 여느 권징조례 보다도 여실히 드러난다.

 

4. 그러면 왜 합신 교단이 개혁주의 방향으로 권징조례를 수정할 필요가 있었는가?

 

원래 권징조례의 필요성은 제2회 장로회 총회(1912.9.1)와 제4회 총회(1915년), 제6회 총회(1917년) 때 출판의 필요성을 결의한 바 있다. 제6회 총회에서는 정치, 권징조례, 예배모범은 웨스트민스터 책을 번역하여 출판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제7회 총회(1918.8.31-9.5)에서는 곽안련씨가 저술한 정치문답 조례집에 포함된 장로회 각 치리회 규칙을 본 총회의 회 규칙으로 정하였다. 이때 정치 예배모범 권징조례가 출판된 것이다.

 

이후 제12회 총회(1923.9.3-13)때 조선 예수교 연합 총의회 조직을 위한 규칙을 채택했다. 당시의 조직을 보면 조선예수교 장로회 남 감리회 미감리회, 조선선교회, 장로교나 단체, 감리교 그 교단 영국성서공회, 조선그리스도교 등이 가입되어 있었다.

 

제15회 총회(1926.9.11)에서는 캐나다 장로회가 1925년 7월 캐나다 감리교회와 캐나다 회중교회와 연합하여 캐나다 예수교 연합교회가 발족되어 캐나다 예수교 연합회 조선 선교회로 개명한다. 이와 같이 장로교, 감리교, 회중교회, 성공회 등이 연합된 상태에서 제16회 총회(1927.9.9-15)에서 헌법을 수정했다.

 

곽안련이 참고한 J. A. Hodge의 글(1882년판)에도 개혁주의 교회정치에서 벗어난 부분들이 있었으며, 초기 선교시에 한국에 온 선교사들의 선교지향적인 성향 때문에 연합과정 속에서 개혁주의 교회의 정치 유산을 물려주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제24회 총회(1935.9.6-13) 때는 총회재판국이라는 용어가 나오고, 제26회 총회 (1937.9.19-16) 때는 상회라는 단어가 나온다. 이러한 것은 초기한국교회가 태동시에 주님의 가르침에 기반을 둔 교회 정치에 관한 내용을 전수받지 못하였으며 선교정책을 우선한 에큐메니칼 사상을 따랐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다 보니 제22회 총회에서는 여성 장로 자격 부여와 여성 총회 총대 헌의안이 제출되기도 한다. 제27회(9월 27일) 총회에서는 조선예수교장로회 교회의 표지를 지키는데 가장 힘을 기울여야 할 총회가 신사참배를 가결하여 스스로 권징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다.

 

교회 헌법의 정치나 권징은 이미 개혁주의 고백서들 속에서 정리되어 나왔어야 한다. 그러나 초기 한국 교회가 채택한 12신조에는 정치나 권징이라는 단어조차도 찾아 볼 수가 없다. 한국 장로교회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정식으로 채택한 것은 선교초기가 아니라, 1세기가 지난 1967년 무렵에서야 정식으로 채택한다. 이러한 상황 가운데서 합신은 태동시에 비개혁주의적인 표현들을 성경적으로 수정하였다.

 

5. 권징은 시벌<재판과 형벌>의 개념으로 보아선 안 되며 교회 전체의 질서와 성도의 훈련의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

 

권징은 교회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율법에 순종케 함으로 교회 안에서 모든 질서와 훈련을 함양하기 위한 것이다. 단순히 권징을 시벌의 개념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장로교회의 초기 권징조례에 보면 권계라는 항목이 있다. 권계라는 것은 권징을 교회 전체의 질서와 성도를 훈육하는 것을 의미한다.

 

현행 권징조례에서는 성경에 의하여 제정된 교회의 규칙과 권징에 관한 법을 어긴 일이 있을 때 권징의 대상이 된다. 실제 범죄 행위에 국한하고 있다. 그러나 박윤선은 권징사역에 대해서 신자들이 솔선하여 순종을 배우기 위해 자가 견책과 상호감독이라는 교리(마 18:15-17)를 따라 계속 훈련받는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로마 교회에서 기타 고위층 교직자들만이 교회를 감독하는 계급제도와 다르다고 하였다(헌법주석 박윤선, 영음사, 1991, p148, 149).

 

우리 헌법의 정신은 시벌 이전에 자신부터 권징하며, 그리고 사랑 가운데 신앙생활 전반에 걸쳐 서로 살피고 봉사하고 권계하는 것이다. 교회정치와 권징조례의 사상이 계급적인 용어가 있어서 상충되지 않고 맞물려서 함께 움직이는 것이다.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삶이 함께 묶어져 가는 것이다.

 

6. 교회 권징이 실현되어야 할 방식

 

권징에는 3가지가 있다. 3가지 권징 중 첫 번째는 자기 자신에 대한 권징이다. 만일 우리가 기꺼이 자신들을 권징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우리가 행해야 할 것을 진실하게 말해줄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살펴보면 판단을 받지 아니하려니와”(고전 11:3) 우리 자신들을 살피는 것, 이것은 자기 훈련이요, 자기권계 즉 자기권징이라 할 수 있다. 권징은 자기 자신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다음에 상호간의 권징이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권징하지 않으면 그때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권징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로서 믿는 자들은 서로 서로 의무를 지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으로 죄인들을 타일러야 하며 만일 그가 듣지 않으면 증인들을 데려가야 한다. 주님께서도 마 18:15,16에서 이러한 상호권징에 대해 말씀하신다.

 

마지막으로 교회권징이 있다. 우리는 마태복음 18장에서 또한 교회권징에 대해서 읽는다. 우리가 사랑 가운데 죄인을 돌이키기 위해서 죄 짓는 자에게 두 세 증인들을 데리고 가도 끝까지 듣지 않을 때에, 주님은 그 문제를 교회에 말하라고 권고하시고 회개가 없다면 교회는 죄인을 출교해야한다고 말한다.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권징의 단계들이 긍정적 결과를 가져올 수 없을 때에만 적용되는 마지막 단계의 권징이다.

 

마치는 말

 

오늘날 우리는 교회권징에만 너무 치우쳐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들을 권징(훈련)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이 이것을 해야 하고, 만약 우리가 계속 듣지 않으면 그 교회가 책임을 지게 된다. 누군가 출교되기 전에 길이 오래 참으며, 사랑으로 권면하였으나 회개를 거부할 때는 교회의 당회가 지혜롭게 그 죄인을 돌이키기 위해서 모든 역량을 모은다. 그래도 회개하려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며 완고할 때는 재판을 하든지 당회가 수찬 정지나, 출교를 하는 것이다.

 

어떠한 자라도 은밀한 죄인인 경우에는 짧은 기간 동안에 쉽게 재판을 하고 출교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가 3번째 단계의 권징을 실행하기 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회개를 위한 기회와 넘치는 자비가 주어져야한다.

 

왜 권징에 있어서 이것이 강조되는가? 주님은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고 징계(권징)한다고 말씀하셨다(계 3:19). 권징(징계)을 위한 참된 동기는 사랑이다. 사랑가운데 책망한다. 책망하지 않고 죄인을 파멸(출교)시켜 버린다면 사랑의 부족이나 죄악된 무관심 때문일 것이다(잠 3:12).

 

권징이 없는 교회는 사랑이 없는 교회이다. 마음으로 회개와 삶의 변화가 있기까지는 교회권징이 계속되어야 하며 출교가운데서도 사랑의 완성을 알게 되어야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사랑의 완성을 보여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면 시작해선 안 된다. 이 인내의 사랑의 결말이 죄인을 회복시키게 되도록 기도해야 한다.

 

어쩌면 권징의 방식이 너무 지치고 어렵다고들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권징을 말하면 이 시대에 뒤떨어진 이상한 것으로 생각하거나, 이에 무관심하거나 포기하고 항복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우리 교단이 주님의 말씀만을 수종드는 교단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