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가는 길 – 故 이치신 원로목사(용연교회)님을 기리며- _이은국 목사

0
5

성도의 가는 길 – 故 이치신 원로목사(용연교회)님을 기리며-

 

< 이은국 목사 · 용연교회 >

 

“앞서 가신 아버지의 유산인 ‘믿음’안에서 누리는 삶이 가장 소중해”

 

 

하늘나라로의 부르심에 대한 암시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두어 달 전 가족과 친지들이 함께 모인 자리에서 말씀하시기를 “나도 올 봄에는 천국으로 가고 싶구나, 이제 살만큼 살았고 다만 부르심이 조금 연기되고 있을 뿐이야.”

 

그 후 3주 가량의 가벼운 병상생활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셨던지 느닷없이 병원비를 계산하라는 것이었다. “아버지, 병원비는 후불로 되어 있어요, 아직은 계산을 안 하셔도 괜찮다고 합니다.”

 

강청에 못 이겨 병원비를 계산하고 3일 동안의 외출을 허락받아 집으로 돌아오는 길 또 한 번의 힌트가 주어졌다. “이제 내 자리를 비워둘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입원할 수 있도록 연락을 취해라.”

 

집으로 돌아오신 다음날 아침 나를 부르셨다. “너 고생시키지 않으마! 아무래도 오늘밤은 못 넘기겠구나” 하시며 일일이 연락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번잡하게 말 것과 형제들한테도 죽기 전에는 미리 연락하지 말라는 부탁과 아울러 언제부터인지 이따금씩 모아둔 통장을 장례비용으로 보태 쓰라며 고스란히 넘겨주셨다.

 

무려 아흔 한 해 동안을 온갖 산전수전을 겪으며 달려 온 지상의 마지막 밤 문득 아버지는 내게 예배를 드려달라고 부탁하셨다. 준비된 예배가 아닌지라 나는 아버지의 성경찬송을 가지고 가족끼리 드리는 즉석 예배를 인도하게 되었다.

 

잠시 묵상기도를 드린 후에 찬송은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였다. 그리고 말씀은 시편 46편 1-3절이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그러므로 땅이 변하든지 산이 흔들려 바다 가운데에 빠지든지 바닷물이 솟아나고 뛰놀든지 그것이 넘침으로 산이 흔들릴지라도 우리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로다 (셀라).” 주기도문으로 예배는 마쳐졌고 아버지는 아들 목사에게 각별한 인사를 하였다. ‘감사합니다!’라며…….

 

“조금 전까지는 악한 자들이 멀찌감치에서 나를 보고 비웃고 있었는데 이제는 저들이 다 떠나가고 마음이 평안해졌구나!” 하시며 한 가지 부탁의 말씀이 있었다. 얼마 전 고장난 후에 새로 불을 밝힌 예배당 십자가 종탑을 꼭 한 번 보고 싶다며 손수 연약해지신 몸을 일으켜 외출할 채비를 하셨다.

 

“잘 되었구나! 내친김에 동네 한 바퀴를 돌아 달라” 하시므로 늦은 밤 특별한 외출로 이어졌다. “오랜만에 속이 시원하구나!”

 

나는 아버지와 함께 한 이 시간이 임종예배가 될 줄을 전혀 몰랐다. 그리고 이것이 아버지와 함께 하는 마지막 외출이라는 것을 미처 알지 못하였다. 집으로 돌아온 후부터는 이따금 어눌해진 목소리로 말씀하시기를 “죽는 것이 유별난 게 아니라 너와 내가 이렇게 말하다가 죽는 게야. 이젠 됐다 돌아가서 자도록 해라…….”

 

불과 몇 시간이 흐른 후, 아버지는 은혜가운데 순식간에 하늘나라로 자리를 옮기셨다. 멀고 먼 지상에서의 모든 수고와 짐을 벗어버리고 평안히 주님의 품에 안기셨다. 주님이 불러 주신 마지막 날 밤은 아무런 고통도 없이 편히 주무신 후 일생동안 새벽기도의 자리로 발걸음을 옮기셨던 그 시간에 맞추어 잠시 앉아 계신 채로 “여호와여!” (함께 한 어머니를 향하여도 부탁하시기를) “여호와여 하라!”며 지상에서의 마지막 말씀을 남기신 후 영원한 나라로 옮겨가셨다.

 

시편 116편 15절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는 말씀과 같이 아버지는 평소에 기도대로 더 없이 좋은 날, 바람 한 점 없이 따스한 날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으셨다. 아버지는 믿음의 길을 승리하신 후, 많은 성도들의 축복가운데 영원한 나라로 들어가셨다.

 

사랑하는 아버지! 하늘나라로 부름 받으시던 그 날에는 아침부터 온 종일 감사의 노래를 읊조리셨다지요, 부럽습니다! 혈혈단신으로 신앙의 자유를 찾아 남하(南下)하신 후 군용 따불백 하나로 시작하여 일구어 낸 복된 가정이 무엇보다 큰 재산이었다지요, 전쟁터에서 여러 차례 생명을 지켜주신 하나님, 포로 생활 중 은혜를 힘입었던 일들, 태평양전쟁 때 일제강제 징집생활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신 일들…….

 

어린 시절에는 예배당이 멀어서 아예 교회사택으로 이사해 살면서 믿음 생활하신 어머니의 눈물어린 기도 때문에 목회자가 되었다는 아버지, 목회현장에서 함께 하신 숱한 도우심의 손길들……. 그 생생한 간증들은 더 이상 들을 수 없지만……. 흔치않은 금혼에 이르게 된 것 그리고 스물둘 저희 후손들 모두가 하나님의 복이요 은혜의 산물인 것을 고백합니다.

 

그토록 원하셨던 남북통일, 고향이 그리워서 가장 먼 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았고, 언제라도 달려갈까 아무런 소유도 없이 나그네의 삶을 사신 아버지, 언젠가는 북녘 황해도 신천 땅 아버지가 태어나신 곳으로 달려가 보렵니다.

 

‘내 평생 소원 이것뿐 주의 일하다가…….’ ‘이 세상의 소망 구름 같고 부귀와 영화도 한 꿈일세……’를 즐겨 부르셨던 아버지. 앞서 천국가신 아버지가 남겨주신 가장 귀한 유산(遺産), 믿음 안에서 누릴 무한한 은혜의 삶을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간직하겠습니다!

 

자녀들을 위해 날마다 기도로 축복하셨던 아버지의 삶을 새삼 되새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