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신교단의 목사됨을 감사하며 허태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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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신교단의 목사됨을 감사하며

허태성 목사·은곡교회

2006년도 추수감사주일을 보내며 이번에는 무엇을 특별히 감사할까 생각해 보
았습니다. 

지난 10월 13일은 제가 서초동에 있는 숭신교회당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지 
꼭 13년이 되는 날입니다. 충청도 시골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에 비로소 기차를 처음 타 보았고, 바다도 처음 보았으며 서울 구경도 처음으
로 해 본 촌뜨기가 서울에 와서 목회를 하고 있으니 생각만 해도 감사한 일
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더욱 감사한 것은 제가 개혁주의 신학을 추구하는 장로교회, 그 중에
서도 합신 교단의 목사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합신 교단의 목사가 된 
것은 저의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스무 살이 되던 해에 처음으로 교회를 
다니며 기독교장로회 소속의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아마 세례를 받은 
최초의 모(母)교회를 따른다면 저는 기장 측의 목사가 되었어야 할 것입니
다. 

저는 스무 다섯 살이 되던 
해에 처음으로 안면도에 있는 성결교회에서 서리집
사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성결교 목사가 될 수도 있었습니다. 당시의 담임목
사님은 저에게 서울신학대학교가 가장 좋은 신학교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제 나이가 스물 여덟이 되었을 때 저는 목회자로의 소명을 확신하고 어떤 신
학교를 갈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공주의 어느 면소재지에 있는 감리교회의 집사로 봉사하고 있었습
니다. 당시에 모셨던 담임목사님이 저를 좋게 보셨는지 저에게 감리교신학대
학원에 진학할 것을 권하셨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면 당신이 목회하는 교회
의 후임자가 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시겠다는 과분한 언질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렇게 하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저는 이제는 직장에 사표를 낼 때가 되었다고 확신을 하고
서 구체적으로 신학교를 선택하기로 하였습니다. 당시에 제가 살고 있던 지역
에서 가장 가까이에 있는 신학교는 대전에 있는 침례교신학대학교였습니다. 
가까운 곳으로 가야지 학교에 다니는데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
서 교계신문을 정기 구독하며 입시요강이 발표되기만
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끝내 그 학교의 입시요강을 읽지를 못했습니다. 그 학
교에 문의를 했을 때는 이미 입시 전형이 끝난 뒤였습니다. 다시 1년을 더 보
낸 후에 저는 왠지 장로교 계통의 신학교에 가야 되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
습니다. 주변에 신학의 길을 지도해 주는 분이 없었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무조건 사당동에 있는 총신대학교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당시에 감리교회
를 다니고 있던 저에게 총신대 관계자는 합동 측의 교회로 교적을 옮긴 후에 
내년에 다시 오라는 말을 하면서 입학원서를 팔지 않았습니다. 그 때 저는 무
척이나 낙심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합동신학교 생각이 났습니다. 당시 
합동신학교는 신복윤 목사님께서 교장으로 계셨는데 합신을 가야겠다는 생각
이 들었습니다. 

그 생각을 하게 된 데는 1980년의 어느 여름의 경험과 관계가 있습니다. 1980
년 8월에 저는 안면도에 있는 어느 초등학교에 처음 발령을 받아 햇병아리 교
사로서 당직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기간에 서산지역 합동 측 교회 중고
등부 연합수련회가 제가 근무하던 학교를 빌려서 개최되고 있었습니다. 제
가 
평소에 알고 지내던 한 전도사님이 학생들 앞에서 강의를 하고 계시는 신목사
님을 소개하였습니다. “저 분이 한국에서 대단히 유명한 신학자입니다”라
는 말에 저는 별로 관심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신목사님께서 총신대 대학원에서 여전히 강의를 하시던 때였는데 몽산
포로 여름 휴가를 오셨다가 현장에서 총신 제자들에게 발각(?)이 되셔서 계획
에 없던 강사로 끌려(?)오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신목사님을 먼발치에
서 처음으로 뵈었습니다. 제가 합신에 입학하기 8년 전의 일이었습니다. 이러
한 이야기를 훗날에 신복윤 목사님께 말씀드렸지만 목사님께서는 그 해에 몽
산포로 휴가를 가셨던 것조차 기억을 못하고 계셨습니다. 

드디어 합신 입학시험에 응시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수원에서 집으로 돌아가
는 길에 우연히 어느 루터교 목사님을 만났습니다. 그 목사님은 저를 자신이 
시무하는 루터교회로 데리고 가셔서 차를 대접하시며 루터교 신학대학원에 입
학할 것을 종용하셨습니다. 시험만 보면 합격은 물론이고 졸업 후 개척을 하
게 되면 최소 5년 간의 생활비 보장과 예배당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건축자금

도 지원 받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잠시 제 마음에 동요가 일어났습니다. 
부르심을 받아 신학교 시험은 치렀지만 미래에 대하여 정말 보이는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저에게는 정말 달콤한 유혹(?)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은혜로(제가 입학시험을 보던 해에 입학정원이 40명에
서 80명으로 늘어남) 합격이 되었고 그 어려운 합동고등학교(?)에서 신학 공
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또 한 가지 감사한 것은 정암 박윤선 목사님의 마지
막 제자가 되어 한 학기를 직접 배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마침내 합신 교단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저의 선택이 아니었습니
다. 오직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습니다. 좋은 스승들과 좋은 선후배 동역자
들 그리고 좋은 성도들이 있는 합신 교단의 목사가 된 것이 꿈만 같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저를 합신 교단의 목사가 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