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 수상|
시골의“작은 도서관”
박종훈 목사_궁산교회
올 봄에 책을 이천여권을 기증 받았다. 이 책은 지하철 예술진흥연구원(레일
아트)에서 각 회원으로부터 헌책을 모아서, 낙후된 농촌이나 필요로 하는 지
역에 보내자는 운동의 과정에 오게 된 것이다.
갑자기 책이 오는 바람에 미처 책장이 준비되지 않아 잠시 한쪽에 쌓아두었
다가 이제 교회당 이층에 아담한 도서실을 마련했다. 본래는 성도들의 예배
처소로 활용할 계획이었지만, 아직 본당도 다 채우지 못하는 형편이다. 아이
들은 일층의 자리가 있어도 굳이 이층에서 예배드린다고 가끔 요구를 하지
만 거절하곤 한다.
이제 그 자리에 번듯한 책들이 책장에 꽂혀 있는 모습을 보니 교인들이 앉
아 있는 것처럼 뿌듯하다. 책장도 원목을 사다가 공간에 맞게 직접 만드니
비용도 저렴하면서도 충분하게 설치할 수 있었다. 비록 작은 도서실이지만
또 하나의 어린 시절의 꿈을 이룬 감격을 맛본다.
고향에서의 현대 문화는 트랜지스터라디오가
전부였다. 면에서도 한참 떨어
진 지역으로 산으로 빙 둘러진 우물 안처럼 생긴 그 곳에서의 문화와는 애
초 거리가 멀었다. 어쩌다 윗동네에 포장영화가 들어오면 주위만 빙빙 돌다
소리만 듣고 그냥 포기해야 했다. 혹 용감한 아이는 포장의 틈을 헤집고 생
쥐같이 들어가는데 성공하지만, 대 부분 뺨 한대 맞고 끌러 나오는 경우도
있다. 어떤 때는 주위 나무에 올라가서 신나게 보지만 그것도 들통나서 도중
에 내려온 일도 있었다. 가난이 원망스러움을 그 때 심각하게 느꼈던 것이
다.
방학이나 학교를 다녀오면 아이들은 여러 놀이를 반복하며 지냈다. 전쟁놀
이, 딱지치기, 화투치기, 못 치기, 구슬치기, 땅 따먹기, 나이 먹기, 뱀형상
의 양 편 가르고 점령하기 등등..
그런데 나는 여럿이 어울리는 놀이는 흥미롭게 하는데, 상대방의 것을 빼앗
아오는 개인적인 놀이는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기를 쓰고 상대방의 딱지나
구슬을 내기하며 경쟁하는 그 모습이 나의 체질과는 멀었던 것이다. 또 한,
했다하면 늘 지는 쪽이기에 차라리 그냥 줘버리는 경우가 많았다. 대신 어
느 집에 가든지 책만 있으면 읽으며 그 자리에서 다 읽지 못
하면 빌려서 보
기도 했다. 특히 만화책은 밥을 굶더라도 기어이 보고야 말았다.
만화책은 책과 친숙하기에 가장 쉬운 방법이라 여긴다. 만화책만 본다고 여
러 번 아버지에게 혼나기도 하고 밖에 내버리고 했지만, 어떠하든 학습보다
는 만화책을 즐겨 읽었었다. 나중에는 일반 책도 읽으며 취미생활란에 항상
독서라고 적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소년생활, 어깨동무’ 같은 잡지를 마
음껏 읽는 것이 행복이라고 여겼다. 그 속에 소개되는 여러 책들이 맘대로
구해 볼 수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좋을까하는 부러움과 간절한 바람을 담아
대상 없는 신에게 기도하기도 했었다.
그 덕에 동생들도 덩달아 책을 자연스럽게 가까이 하며 나름대로 독서의 실
력을 키우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삼형제가 삶속에서 체득하는 여러 모습을
글로 표현하고 있다. 어린 시절 오염 없는 자연 속에서 뛰놀며, 부족하지만
그래도 책을 가까이 했던 시절이 있으므로 오늘날 얻는 유익과 영향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마음껏 책을 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소망했
던 꿈이 이렇게나마 이룬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미국의 ‘빌 게이츠’ 가 말하
길 “내가 살던 마을의 작은 도서관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한다.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
고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는 기회가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틈나는 대로 아이들에게 강조하지만 무엇보다도 스스로 흥미를 갖고 책을 많
이 읽는 여건과 본을 보이고자 한다. 필자가 아이 때 이런 도서관이 마을에
있었다면 밤을 새우며 좋아라. 읽겠지만, 이제는 맡겨진 일과 시간의 제한으
로 인해 한계를 느낀다. 그렇지만 풀벌레 소리만 나는 조용한 시골저녁에 독
서하기 좋은 계절을 맞아 입맛대로 골라 읽는 즐거움을 누리고자 한다.
비단 도서 뿐 아니라 신세대들에게 익숙한 영화도 자주 볼 수 있도록 준비하
고자 한다. 시골에서 가장 좋은 혜택인 자연속의 문화도 누리지만, 변화하
는 시대에서 앞서가며 창조적인 능력을 갖추며 삶을 풍성하게 살려면 현대적
인 문화를 접해야 하는 것이다.
시골의 교회당은 복음과 아울러 문화를 전달하며 누리는 장소로서 활용한다
면 최소의 투자로 최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