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영원한 안식의 소망 박혜원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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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영원한 안식의 소망

박혜원 집사_광양산수교회

“띨리리리, 띨리리리.” 주일마다 울리는 전화벨소리. “여보세요.” “애
비다. 너희들 교회 다녀왔냐?” 

막 여행에서 돌아온 나는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목소리에 바짝 긴장한다. 
우리 부부는 워낙 여행하기를 좋아하는지라 금요일 오후만 되면 여행 준비
로 분주했고, 주일은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자연을 둘러보며 창조의 손길
을 찬미하는 것으로 예배를 대신했다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산으로 바다로 
희희낙락거리며 돌아다녔다. 새싹이 연두눈을 반짝 뜨는 봄부터 하얀 눈이 
온 세상을 덮는 겨울까지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만끽하지 않으
면 무슨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방방곡곡 풍광 좋은 곳을 찾아다녔다. 

그러기를 몇 년. 오래 참으시는 자비로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하게 여
기시고 낯선 광양 땅의 산수교회로 인도하셨다. 처음에는 산수교회에서의 생
활도 이전과 별 다를 바 없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주일 예배에 참석하

고, 세상이 우리를 부르면 아무거리낌 없이 그곳으로 달려가는 생활의 연속
이었다. 

그런데 새로 부임하신 이 목사님을 통해 ‘성신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나의 신앙생활도 가뭄에 콩나듯 듬성듬성 믿
음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난 그때 ‘중생한 신자라면 자기를 부인하고 성신
님의 인도를 받아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이 정말 어렵고 이해되지 않았다. 
성신님이 내 앞에 떡하니 나타나서 나를 이리저리 끌고가야 내가 성신님의 
인도를 받는 생활을 한다고 할 텐데, 아무래도 내 안에는 그런 신령한 분이 
계시지 않는 듯했다. 

그래도 공부가 마쳐질 즈음에야 비로소 희미하게나마 성신님의 인도하심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고, 우리를 구원하셔서 양무리 안에 두시고 그리스도
의 신령한 몸의 지체로서 장성하여 이 땅위에 하나님 나라를 나타내면서 살
게 하신 것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본의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최근에는 몇 달에 걸쳐 ‘영원한 안식과 주일’에 대하여 공부할 기회를 가
졌다.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 아침 햇살에 잠깐 
반짝이다 사라지
는 이슬같이 허무하고 덧없는 인생으로 살도록 놔두지 않으
셨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안식일을 제정하시고, 세상 끝의 영원한 안식을 
주의 백성들로 하여금 소망하며 살게 하셨다. 매 7일을 주기로 6일 동안 일
하고 하루를 안식하는 패턴 속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을 상기시켜 주셨
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속받은 백성만이 영원한 안식에 이르게 하시되, 우
리 인생이 영원한 안식을 간절히 소망하는 것만큼 6일의 의미 또한 중요하
며 소홀히 할 수 없음을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주일을 준비하는 6일의 삶은 
곧 영원한 안식에 대한 준비기간이라 말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백성들이 엿새 동안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지체로서 각
자가 받은 은사를 따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힘써 일하게 하셨고, 그리스도
의 부활로 이루어진 주일에 주의 백성들이 한자리에 모여 교회를 이루고 거
룩하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송하게 하셨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가 안식할 때까지 이 일은 계속될 것이다. 이 사명은 나 개인에게가 아니라 
내가 속한 주의 교회에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안식일로서의 주일을 바르게 
지키는 길은 바른 
교회 속에 자신을 가담시키고, 온 지체가 함께 주의 교회
를 이루며, 교회와 함께 우리의 소망을 영원한 안식을 향해 두는 것이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 구
약의 안식의 상징인 가나안 땅의 한 분깃을 얻기 위해 세상 것에 소망을 두
지 않았던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와 나오미의 며느리인 모압 여인 룻의 간절
한 소망이 전에는 그저 담담하게 지나갔는데, 이 구절을 묵상하면서 나에게
도 사뭇 감동으로 다가왔다. 예전 같으면 이 자리가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
해 베푸신 은혜의 자리란 걸 까마득히 모르고 그저 하나님께서 창조를 다 마
치신 후 모든 것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시며 안식하셨기에 우리가 그날에 
모여 창조주 하나님을 찬송하고 경배하는 것으로만 여겼을 것이다. 그리하
여 주일을 빠져 가며 여행하면서도 주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찬미했으니 하나
님께서 다 이해해 주시리라는 얼토당토 않는 궤변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
는 일을 서슴지 않고 계속 했을지 모른다.

며칠 전 아버님께서 전화로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교회도 적당히 다녀야지 얼싸덜싸 그렇게 다니는 게 
보기 안 좋더라.” 
우리가 주일에 치르는 집안 대소사에 자주 빠진 것에 많이 서운하셨나보다. 
매 주일 아침을 깨우던 아버님의 전화벨소리는 사라진 지 오래다. 그러나 아
직도 나는 가끔씩 요즘같이 살랑거리는 봄바람, 투명한 햇살에 반짝이는 신
록의 아름다움을 보면 주일을 한번쯤 어기고도 싶은 유혹이 들 정도로 연약
한 신자이다. 하지만 이제 안식일을 제정하신 하나님의 뜻과 예수 그리스도
의 부활로 말미암아 안식일의 의미로 주일을 지키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으
니, 하나님께 대하여 주의 백성으로서 마땅히 행할 바를 늘 생각하고, 또 삶
속에서 이를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