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김성훈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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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김성훈/새누리교회, 갈릴리남성합창단원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
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
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마 26:40-41).

새해 계획을 세우고 마음을 정비하기가 무섭게 벌써 2005년도 1월 한 달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올해도 역시 새해를 맞이하며 나름대로 새로운 목
표를 세우고 단단히 결심을 하였건만 방심하던 중에 시간은 도적맞은 듯 흘
러갔고, 끈질긴 육신의 욕구에 짓밟혀 의지가 허물어지면서, 단호한 결단의 
목표에 벌써 여기저기 누수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또다시 반복되는 실패
앞에 슬며시 ‘작심삼일’이라는 말을 내밀며 벌써 포기를 준비하는 것은 아
닌지요?

요즘 기독교인들에게서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는 성경구
절로 자신의 나약한 신앙의지를 그럴듯하게 변명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
r
습니다. 어쩌면 계획단계에서부터 실패를 예견하고 있었는지 몰랐다고 할 만
큼 우리는 이 구절을 너무도 쉽게 자주 남용하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마음
의 소원이기는 했는가?” 하고 우리의 나약한 의지에게 반문을 하고 싶습니
다.

그러나 이 구절을 남용(濫用)하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본래의 의미와 
다르게 오용(誤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의도와 
다르게 오히려 육신의 의지가 약하여 실패할 수밖에 없었노라 변명용으로 잘
못 인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지막 만찬 후에,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과 함께 겟세마네에 오르
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따로 떨어져 자리를 잡고 기도를 드리는 동안 제자들
에게 깨어 기도하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마지막 시련을 앞두
고 핏방울같은 땀을 흘리며 간절하게 기도하시는 그 시간, 제자들은 깨어서 
예수님과 마음을 같이 하지 못하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3년 간이나 주님의 친 음성으로 은혜로운 교훈의 말씀을 받았던 그들이었지
만, 겟세마네에 오르기 바로 전에도 장차 올 심판을 경고하시며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하셨건만, 그들의 육신은 여전히 연약하였습니다. 인간은 
참으로 연약한 존재이며 우리의 성화란 참으로 더디고 보잘것 없습니다.

깨어 기도하기를 힘쓰지 않으면 우리도 제자들처럼 실패자가 될 수밖에 없다
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연약하기 그지없는 우리의 육신은 온갖 욕구와 
연결되어 있으며 온갖 유해요소에 노출된 인터넷 환경속에서 늘 자동으로 업
그레이드 되는 죄짓기 프로그램이 깔려있는 컴퓨터와 같은 존재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아뢰는 말이며, 하나님과 밀접한 교제의 수단입니다. 기도
는 무엇보다 성도가 시험에 들지 않고 시험을 이기는 길입니다. 어둠의 영
이 세력을 더해가는 세상 도처에 죄악된 일들과 마귀의 시험들이 우리의 연
약하고 부패한 본성을 자극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심하게 하고 불순
종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연약한 육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경건의 연습을 해야 합니다. 깨어서 
기도할 때에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을 때, 우리는 시험
에 빠지게 됩니다. 기도하는 자는 깨어 믿음을 
가지고 마귀의 시험을 대적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시련을 목전에 두고 제자들에게 주신 귀한 말씀을 ‘마음에는 원이었
는데 육신이 약하여 실패하였다’라는 변명용으로 오용 하지말고 ‘육신이 
약하니 늘 깨어 기도하여야 한다’는 경고의 말씀으로 바로 세워야겠습니다.
범죄할 수밖에 없는 겉사람을 버리고 속사람을 견고하고 강건하게 세우기 위
하여 약할 때 강함 되시는 우리 주님과 일상에서 늘 대화하며 쉬지 말고 기
도하여야 합니다.

저 역시 감히 기도하지 않고 버텨보겠다는 무모함을 버리고 늘 기도하며 승
리하는 2005년이 되기를 작심삼일 언저리에서 다시 각오를 새롭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