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斷腸)과 귀뚜라미
변이주 목사/ 알곡교회
가을이 무르익어 가고 있습니다. 단풍을 찾는 행렬이 휴일마다 끝도 없이 이
어지고 있습니다. 모처럼의 가을 나들이가 오히려 피로를 가중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면 그건 여러모로 손해가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현대인
들은 눈의 나들이, 즉 보는 것을 위한 나들이에 익숙해 있습니다만 이번 가을
에는 귀의 나들이, 즉 귀로 듣고 가슴으로 느끼는 나들이 한 번 떠나 보는 것
이 어떻겠는지요?
봄밤을 대표하는 소리가 소쩍새 울음소리라면 가을밤을 대표하는 소리는 귀
뚜라미 울음소리일 것입니다. 임을 찾아 밤새도록 울다 지친 소쩍새가 피를
토하고 죽어 진달래꽃을 피운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귀뚜라미는 가을밤에 무
슨 청승으로 저렇게 울고 있는 것일까요? 귀뚜라미 울음소리는 바로 톱질하
는 소리라고 합니다. 긴긴 가을밤, 새파란 처자를 독수공방 시켜놓고 눈이 빠
지도록 기다리게 한 낭군의 애(창자)를 끊는 톱질소리―. 어쩐지 몹시도 애
상하고 처연한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이야기 아닌가요.
『세신설어』라는 책에 보면 ‘단장’의 어원 해설이 나와 있습니다. 진나라
의 환온이라는 사람이 촉나라로 가기 위해 삼협을 배로 건널 때였습니다. 수
행원 중 한 사람이 원숭이 새끼를 붙잡아 가지고 희롱을 했는데 그 어미가
백 리를 따라오며 울부짖다가 결국에는 배로 뛰어들어 죽고 말았습니다. 해
부를 해보니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습니다. 비록 짐승일지언정 어미의
정을 짓밟은 수행원을 환원은 내쫓아 버리고 말았답니다.
또 근세조선 중종 때 학자 노득강이라는 사람의 견문기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습니다. 노득강이 그의 친지를 방문했을 때 그 집에는 꾀꼬리 어미와 새끼
를 분리해 키웠는데 그 어미가 모이도 먹지 않은 채 슬피 울기를 마지않더니
결국에는 조롱에 머리를 찧어 죽었습니다. 배를 갈라보니 창자가 녹아 있더라
는 것이었습니다.’
‘단장의 미아리 고개’는 또 어떻습니까?
미아리 눈물고개 임이 넘던 이별고개
화약연기 앞을 가려 눈 못 뜨고 돌아설 때
당신은 철사 줄로 두 손 꽁꽁 무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며 맨발로 절
며절며
울고 넘던 이 고개여 한 많은 미아리 고개
그야말로 동족상잔의 한이 서린, 애끊는 노래가 아닌가요? 무자비하게 학살
당하는 현장으로 사랑하는 가족이 끌려가는 모습-. 상상조차 하기 싫은 끔찍
한 모습입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분단된 나라, 다시는 동족의 가슴
에 총부리를 겨누고 피를 흘리는 참상이 벌어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 가을, 우리 성도와 목회자들은 그야말로 <단장의 기도>를 드려야 할 줄
압니다. 겁도 없이 지옥을 향해 달려가는 수많은 군중들을 볼 때, 아무리 목
이 터져라 외쳐도 진리를 외면하는 성도들을 바라볼 때와, 부르짖고 또 부르
짖어도 개선되지 않는 교회의 침체 속에서 ‘단장의 기도’ 소리를 주님께 들
려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혹시 귀뚜라미의 울음소리가, 기도하지 않는 한국 교회를 보시며 안타까워하
시는 우리 주님의 애간장 녹는 소리로 들린다면 우리는 아마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애가 녹는 심정으로 단장의 기도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