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아이들
박종훈 목사/ 전북노회
올해는 장맛비가 유난히도 많이 오는 것 같다. 서재에서 설교를 준비하고 있
는데 동네방송이 조는 듯 조용한 마을을 깨우듯 찰랑거리며 울렸다.
‘주민 여러분들에게 알려드립니다. 이준표씨의 아들 태양이를 찾고있습니다.
태양이를 데리고 있는 분은 집으로 연락 주시기 바랍니다.’
태양이는 동네의 가장 젊은 가정에서 자라는 다섯 살 된 사내아인데, 아침에
눈만 뜨면 우리집으로 와서 ‘형아∼’ 하며 서진이를 찾는 단골 꼬마손님이
다. 서진이도 우리집에서는 막내지만 자기를 형이라고 부르며 따르는 태양이
를 귀여워하며 같이 놀아주니, 태양이도 다른 어른들의 말은 잘 안 들으면서
도 서진이의 말은 잘 듣는 편이다.
서진이가 학교에 가서 태양이 혼자 마을에 남게 되면 온 동네를 휘젓고 다니
며 아무 집에나 스스럼없이 들어가는 바람에 종종 태양이 엄마가 아이를 찾
아 집집마다 다니곤 한다. 잠시 한눈 팔면 어느새 사라지는 태양이, 그렇다
고 아이를
강아지처럼 묶어둘 수도 없기에 이젠 엄마도 그냥 내버려두는 편이
다.
하루도 빠짐없이 교회에 들리던 태양이가 오늘은 보이지가 않았는데 마을방송
에서 아이를 찾는다고 하니 바짝 긴장이 되었다. 마을 앞에는 물이 가득 찬
저수지가 있고, 동네의 도랑에는 장맛비에 불은 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어 적
이 걱정이 되었다. 아이가 안전하길 기도하며 자전거를 타고 나섰다. 아직도
비가 간간이 내리지만 마을방송을 듣고 할머니들이 마을 앞에 모였다.
어느 집에 있었다면 지금쯤 찾았을 텐데 마을사람들에게 수소문해도 못 찾은
걸로 봐서 보니 마을 안에는 없다는 결론이다. 태양이뿐만 아니라 연년생 여
동생인 샛별이도 같이 보이지가 않았다.
일단 태양이네 집에 가서 뜰과 주위를 다시 확인하고, 태양이 엄마에게는 혹
시 전화가 올지 모르니 집에 들어가 있으라고 말했다. 몇 뙈기의 밭이 있는
저수지 끝자락의 산모퉁이로 가려는데 태양이를 찾았다는 연락이 왔다. 태양
이 삼촌이 나보다 앞서 산모퉁이에 가보니 태양이와 샛별이가 거기 있다는 것
이다.
도로 옆에는 어른도 뛰어넘지 못하는 넓은 개울물이 거칠게 흐
르는 곳이지만
아직 물의 위험을 모르는 아이들은 밭둑 사이로 흐르는 작은 도랑에서 옷이
다 젓도록 신나게 물장난하며 놀고 있었던 것이다.
급히 자전거를 타고 가보니 자기 키보다 큰 우산을 쓴 태양이는 삼촌에게 꾸
중을 들었는지 고개를 폭 숙이고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었다. 그 옆에는 젓은
옷을 걸친 샛별이가 물에 빠진 생쥐 모양 까만 눈을 반짝이며 자기는 잘못이
없다는 표정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사실 아이들만을 꾸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이 같이 놀만한 친구가 없
는 이 농촌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아이들이 빠진 채 벌어지는 시골의 행
사는 참석한 사람들의 모습만큼이나 쓸쓸하고 허전하다.
어른들은 자라나는 아이들을 보면서 흘러간 시간을 가늠해 본다. 아이들의 철
없는 행동들은 어린 시절 추억을 생각나게 하며, 이제 석양과 같은 자신들의
삶을 확인하며 돌이켜본다. 또한 아이들이야말로 어른들의 과거를 떠올리며
자신의 현재와 미래를 보도록 가르쳐 주는 또 다른 선생이라 할 수 있겠다.
다시 동네에 들어서니 염려스런 어르신들이 골목에서 태양이와 샛별이를 맞으
며 걱정해주는
주신다. 이를 보며 태양이와 샛별이가 마을에서 차지하는 비중
이 제법 크다는 것을 느낀다. 이들은 우리 동네의 가장 귀한 자들이다. 고샅
에서 떠드는 이 아이들의 소리 덕에 동네는 사람 사는 활기(活氣)가 느껴진
다. 이번 일을 통해서 ‘어린아이 하나를 키우기 위해서는 온 동네가 협조해
야 한다’라는 어는 책의 제목이 떠올랐다.
태양이와 샛별이는 우리 교회와 동네에서 십대十代) 아래부터 팔십(八十) 대
까지 이어주는 당당한 위치를 차지하는 이들이다. 생명의 고리를 이어주는 이
들이 있어 이 농촌은 그나마 희망의 불씨를 살리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