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생활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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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는 끊임없이 자신과 교회를 개혁해 나가는 것이다. 이에 우리의 현 
좌표를 되돌아 보며 바른 방향을 추구하기 위해 고 박윤선 박사의 설교를 싣
는다. <편집자주>

바른생활은 무엇인가?
<벧후3:10-13>

1. 거룩한 행실(11절 하반)
“거룩하다” 함은 하나님의 소유가 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나 자신을 하
나님께 내어 맡김이다. “행실”이란 말 ‘아나스트로페’는 히브리어 ‘할
락’에 해당되는데 생의 방법을 가리킨다. 기독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방법을 취한다. 여기서 방법이란 것은 개별적인 행위를 말하기보다 생애를 의
미한다. 그러므로 “거룩한 행실”은 “거룩한 생애”라고 번역해야 된다. 거
룩한 생애는 하나님께 나 자신을 맡김이다. 마치 수술 받을 환자가 담당 의사
에게 그의 몸을 전적으로 맡김같이 나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김이다. 

2. 경건함(11절 하반)
“경건”으로 번역된 헬라어 ‘유세베이아’는 ‘좋게 놀란다’는 어원적 의
미를 가진다. 신자는 어떠한 일을 하든지 어디서나 
항상 “하나님 앞에서”
(Coram Deo) 살아야 된다(고전 10:31). 뿐만 아니라 그는 특별한 자리, 곧 정
신차려 성경을 읽음과 깨어 기도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살게 된다. 이 두 가지
는 경건생활의 원천이다. 그는 이때에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하나님을 만남
으로 좋은 놀람을 체험하게 된다. 인생의 목적은 하나님을 아는 데 있다. 이 
세상의 행복은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
여기에 한 가지 첨부할 것은 경건한 자의 대인 관계이다. 경건한 자는 사람다
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 루터는 말하기를 “기독신자로 멎어지는 자는 신자
가 아니다.”라고 하였다. 이 말은 사람 상대로 의(義)를 행해야 된다는 것이
다. 즉, 경건하다고 하여 세상과 격리되어 사는 것이 아니고 참으로 사람들
과 잘 화합해야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략적(政略的) 합작도 아니고, 능률 
증가의 목적으로 사회적 세력을 규합하기 위한 단결도 아니다. 이것은 나 자
신을 희생하고 남을 유익하게 하려는 이웃 사랑의 생활이다. “하나님 아버
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
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
니라.”(약 1:27).

3. 내세를 사모함(12-13절)
인류는 이 세상 문명에서 만족을 얻고자 한다. 그러나 이 세상 문명은 먹고 
마시고 자식들을 잘 길러내려는 것밖에 무엇이 더 있는가. 카알라일의 말과 
같이 현세의 문명은 돼지문명이다. 
내세를 사모하는 삶은 영혼 본위의 삶으로 나타난다.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지만 영은 의(그리스도의 義)를 인하여 산 것이다(롬 8:10). 몸은 인류
의 조상 아담 때부터 지은 죄로 인하여 죽는 벌을 받도록 되어 있다. 이 몸
은 죽고 영혼을 구원하여 완전케 하시는 것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순서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죄인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고전 1:30), 그리스도로 말
미암아 구속 받은 신자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는 자가 되었다. 이 
참된 소망을 가진 신자는 아침이나 저녁이나 무슨 일을 하든지 주님의 재림
을 기억하고 행해야 된다. 
<영음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