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수상| 잊혀져가기_이대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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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가기

< 이대원 목사, 전 남포교회 부목사 >

목양 그 자체가 최고의 명예이며 영광이요 가장 복된 보상

 

 

오래전에 관람한 한국영화 한편이 지금도 잔잔한 감동으로 기억 된다. ‘라디오 스타’라는 국민배우 안성기와 박중훈 주연의 영화이다. 

영화에 조금씩 빠져 들어가는 내내 “참, 이제는 우리나라도 영화를 제법 잘 만드는구나” 하면서 마음의 박수를 보냈었다.

모든 연예인들이 그토록 꿈꾸는 최고 정상의 자리에서 세월의 흐름은 결코 거스를 수 없다는 진리에 순응하기라도 한 듯, 한 때 최고의 가수는 대중들의 기억 속에 서서히 잊혀져가면서 어떻게든 재기를 꿈꾸며 몸부림치는 두 배우의 뛰어난 연기에 몰입하다보니 어느새 내 두 눈에 눈물이 흥건했었다.

참 따뜻하게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이들이 참으로 따뜻하게 그려졌다. 후문에 박중훈은 이 영화에 출연한 후 많은 것을 배웠다하며 이렇게 고백했다고 한다.

“이제는 배역에 욕심내지 않고 그 어떤 배역이든지 감사하고 최선을 다해 연기 하겠습니다.”

그의 이 말에서 나는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았다.

우선 배우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은 누구나가 공감하듯이 몸값을 빼고 말 할 수 없다. 출연료는 곧 배우의 인기도를 말한다 해도 그 누가 딴죽을 걸 사람이 없을 것이다. 실제 이 문제로 감독과 배우 사이에 시끌벅적한 일도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 박중훈의 말 속에서 “앞으로 출연료에 급급하여 자신의 인기도를 확인하지 않겠고 주어진 배역에 상관없이 비록 별 볼일 없는 배역일지라도 최선을 다해 연기에만 몰입 하겠습니다”는 말처럼 들린다.

‘라디오 스타’ 속의 그 배역에 몰입한 자신이 어쩌면 모든 이들에게 서서히 잊혀져가는 지금의 자신일 수 있다는 겸허함을 그렇게 표현한 말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것은 순전히 내 생각일 뿐이다.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목사로서 교우들 앞에서 서서히 잊혀져가는 연습을 조금씩이라도 연습해야 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필자는 1985년 남포교회 설립이후 30여 년간 교육전도사를 거처 강도사와 목사로서 목양의 명예와 더불어 실제로 사이다가 튀는 듯한 목회의 재미를 마음껏 누리는 복을 누려왔다. 이는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며, 박영선 담임목사님과 믿음의 전우 되는 교우들의 따스한 사랑이 없었다면 이 복을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때로는 상처받는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는 많은 교인들을 통해 말로 다할 수 없는 사랑과 따뜻한 위로를 이제까지 받아오게 하셨다. 물론 영화 속의 의미와는 다르겠으나 어쩌면 목사라는 신분과 자리도 교우들 앞에 존경과 감사와 박수를 받으며 살아간다 해도 그리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몇 해 전에 교회 내 미혼자들의 공동체인 청년 3부를 6년간 지도한 적이 있었다. 새로 부임한 목사에게 바통을 넘기며 환송하는 내내 모두들 마치 내가 무슨 전쟁터에 죽으러 나가는 사람 환송하듯 모두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간간이 눈물을 보이는 친구들, 고개 숙여 애써 얼굴을 마주 못하는 친구들, 기립하여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친구들…….

저들이 내게서 배우고 받은 사랑을 이제는 더 연장할 수 없다는 아쉬움도 있었겠고 나 또한 저들의 순수함과 열심으로 신앙생활하려는 멋지고 예쁜 모습들을 더 이상 가까이서 볼 수 없다는 짙은 서운함이 맞아 떨어진 자리였다.

이런 모습을 최근에 교우들에게서도 엿볼 수 있었다. 지난해로 남포교회에서의 30여년 목회 여정을 내려놓았다. 이는 후배들에게 더 많은 기회와 길을 열어 주고자 함과 이제는 교우들 앞에 잊혀져가야 된다는 사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저들의 가슴속에 서서히 잊혀 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교우들 앞에 조용히 잊혀 가는 목사로 자리해야 한다. 보상을 기대하거나 꿈꾸어서는 안 된다. 섭섭함과 억울함을 호소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께서 목양할 수 있도록 모든 여건을 조성해 주심 자체가 최고의 명예이며 영광이요 가장 복된 보상이기 때문이다.

내 목회 여정과 이름이 오고 오는 후대에 족적을 남기고 보상의 치열함을 부리는 자리 대신에 이제는 엘리야와 방불한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고 충성하며 잊혀져가는 7,000명의 선지자들을 가슴에 담아 두어야 한다.

그리고 이제 나는 지난 30여 년 동안 그랬듯이 또 다시 새로운 여정을 향해 묵묵히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