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 (83)| 도덕성 회복인가, 신앙 회복인가_정창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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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성 회복인가, 신앙 회복인가  출애굽기 1장 15-21절

 

<정창균 목사, 합신 설교학 교수, 남포교회 협동목사 > 

 

“한국교회는 도덕성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신앙이 없어서 문제”

 

 

한국사회 안에는 이미 반기독교운동을 조직적으로 강력하게 펼치는 그룹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교회 밖의 시민단체들이 교회를 개혁하겠다고 소리를 높이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확산되고 있는 조직적이고 과격한 반기독교적인 운동들이 한국기독교를 비난하면서 내세우는 문제점은 대부분 윤리적, 도덕적인 문제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비난의 요지는 교회는 신앙단체이기 때문에 일반 세상의 단체들보다 훨씬 더 높고 고상한 도덕수준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요구가 아닙니다. 불신세상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하는 윤리적, 도덕적 수준에도 못 미치는 집단이라는 것이 교회에 대한 그들의 불만이고 분노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그동안 한국 기독교인들이 불신 사회에 대하여 보여준 윤리적 실패로부터 기인했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선적인 책임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말하자면, 신자들이 신자가 아닌 것처럼 살고, 상당수의 교회들이 교회가 아닌 것처럼 처신을 해온 것의 결과인 것입니다.

 

이러한 참담한 현상이 계속되면서 교회를 염려하는 의식 있는 지도자들과 단체들이 한국교회의 도덕성 회복을 위하여 다양한 방식의 운동을 펼치고 있기도 합니다. 교회재정의 투명한 운영, 목회세습반대운동, 구제활동의 확대, 사회복지를 위한 적극적 참여, 교회운영의 민주적 방식도입 등등 다양한 운동들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운동들은 모두 한국기독교가 도덕적으로 그리고 윤리적으로 세상의 인정을 받을 만큼 회복되어야 한다는 절박한 현실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습니다.

 

그러나 도덕성을 갖추고 사회적 효용성을 충족시키는 특정의 행동양식들을 실천하는 것에 궁극적인 관심이 모아지는 것은 신앙단체인 교회에 또 다른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킬 위험이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교회는 단순히 도덕수준이 높은 단체나 혹은 사회구호단체에 머물러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오늘 날의 교회가 도덕적으로 이렇게 비난을 받게 된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를 따지고 들어가 보면

그것은 그동안 한국교회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잘못된 것의 결과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신자답게 살지 않고, 교회답게 행동하지 않아서 벌어진 현상인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한다면 반드시 도덕성이 뛰어나게 되고, 구제활동이 활발하게 됩니다. 그러나 도덕성이 뛰어나고 구제활동이 활발하게 되면 그것이 교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본질과 외형을 분별하는 지혜가 필요하고, 외형이 아니라, 그 외형을 만들어내는 본질을 회복하는 운동이 필요합니다.

 

출애굽기 1장의 산파들의 이야기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사실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히브리 산파들은 이스라엘 여자들에게서 남자 아이들이 태어나면 즉시 죽이라는 애굽 왕 바로의 명령을 받았습니다(15-16절). 그러나 그들은 태어나는 아이들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산파들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왕명을 어기고 남자 아이들을 죽이지 않은 것은 그들이 휴머니스트들이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생명에 대한 경외심 때문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이었습니다(17절, 21절).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그들의 집을 번성케 하셨습니다(20절, 21절).

 

본문이 일관되게 우리가 주목하도록 요구하는 것은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답게 사느라고 왕명을 어기는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남자아이들을 죽이지 않았고, 그들의 그러한 행동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히브리 산파들에게 남자 아이들을 죽이고 살리는 것은 도덕성이나 인간존중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신앙의 문제였다고 강조하고 있는 셈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에 말려들지 않은 것도 그의 높은 도덕성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 죄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는 그의 신앙의 발로에서 온 결과라는 것이 창세기 39장의 선언입니다(9절). 외형이 같으면 본질도 언제나 같은 것이 아닙니다.

 

한국교회는 도덕성이 없어서 문제가 아니라, 신앙이 없어서 문제입니다. 신앙대로 살지 않아서 문제입니다. 다시 말하면 신앙이 잘못된 것입니다. 신앙이 잘못되니 그 결과로 도덕성을 잃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국교회가 전개해야 할 가장 시급한 운동은 신앙 회복 운동입니다.

 

도덕성 회복에 궁극적 목적을 두면 교회는 마침내 수준 높은 도덕단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구호를 궁극적 목적으로 삼으면 교회는 자기희생적인 복지단체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무엇보다 신앙단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본질입니다. 제대로 된 신앙 생활의 회복은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자기희생적 나눔이라는 결과를 수반하게 될 것입니다.

 

교회가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갖추는 것이 별 것 아니라는 주장이 아닙니다. 교회가 사회 복지와 구제에 힘쓰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주장이 아닙니다. 그것들이 무엇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어야 하는가를 분명히 하자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만들어내는 그것을 회복하는 운동에 주력하자는 제안입니다.

 

한국교회에 시급한 것은 신앙의 본질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신앙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정립하고, 신앙인은 어떤 경우에도 신앙대로 사는 것을 회복하는 운동에 관심이 집중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