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76)| 성경 문맹의 시대_정창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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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문맹의 시대 아모스 8:11-13

 

< 정창균 목사, 합신 설교학 교수, 남포교회 협동목사 >

 

“성경 본문 말하는 설교를 듣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원인”

 

역사적으로 신도들의 성경 문맹 현상이 가장 극심했던 때는 중세시대입니다. 중세시대에는 사제들만 성경을 소유할 수 있고, 성경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신도들이 성경을 소유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불법이기도 하였습니다.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설교는 신도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가와 상관없이 반드시 라틴어로만 행해져야 했습니다. 라틴어를 읽을 줄도, 말할 줄도 모르는 사제들도 라틴어로만 설교를 해야 했습니다. 신도들은 성경이 아니라, 교회가 해주는 말씀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이 성경말씀이라고 믿어야 했습니다. 교회만 성경을 가질 수 있고, 교회가 하는 설교는 성경말씀이라고 믿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 시대의 신도들은 실제로 성경에 대하여는 문맹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종교개혁이 가능하게 한 가장 큰 요인은 성경을 신도들에게 돌려주었다는 점일 것입니다. 성경에 눈이 뜨이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날은 누구나 자기의 언어로 된 성경을 얼마든지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말로 행해지는 설교를 얼마든지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교자들이 성경 말씀을 말해주지 않기 때문에 결국 성경에 대하여 문맹이 되는 아이러니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중세교회는 성경말씀을 갖지 못하고 알아듣지 못하게 하여 신도들을 성경문맹으로 만들었다면, 오늘 날은 설교자들이 성경말씀을 말해주지 않아서 교인들이 성경문맹이 되고 있습니다.

 

성경의 내용에 대하여 문맹이 되게 할 뿐 아니라, 요즘 교인들에게는 성경책 자체가 낯설게 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교인이 몇 사람만 모이는 개척교회도 화면에 설교 본문과 설교 중 인용하는 모든 성경구절을 띄워주는 것이 보편화 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주는 유익도 있습니다. 성경을 찾느라 설교의 흐름을 단절시키는 일 없이 속도감도 있고, 다이나믹한 흐름도 끊어지 않고 성경을 인용하며 설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설교 시간과 예배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성경 구절을 화면에 띄워주는 친절함과 편의를 제공하는 과잉친절의 결과로 말미암아 성도들은 점점 성경책이 낯설어지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화면에 띄워주는 글자만 따라 읽으면 되다보니, 신앙생활을 오래하여 나름대로 성경에 대한 상식을 갖추게 된 경우나, 혹은 교회에서 설교와 별도로 제자훈련이나 성경공부 그룹 혹은 성경읽기 그룹에 속하여 훈련을 받는 교인 외에는 성경 어느 책이 어디에 나오는지 순서도 모르고, 앞뒤의 문맥을 알아갈 기회도 없는 것입니다.

 

더우기 이제 막 신앙생활을 시작한 초신자가 곧 바로 교회의 성경공부 그룹에 참여하여 성경을 전체적으로 배우는 경우는 흔하지 않습니다. 회심하고 처음 교회출석을 한 이후 오랜 세월을 성경책을 한번 찾아볼 기회도 없고 앞뒤를 살펴볼 기회도 없이 그렇게 교인 생활을 하는 사람은 세월이 지난 후에도 성경이 낯선 책이 될 것이 확실합니다.

 

성경에는 문맹이라고 할 만큼 성경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이 일상의 삶과 교회 안의 생활에서 신앙적인 분별력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그러니 매사를 신앙적인 원리와 분별을 기준으로 판단하고 처신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신자 개인의 삶을 위해서는 물론, 목회자의 목회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은 일입니다. 교회가 어려운 문제에 부딪혀 분열이 일어날 때 교인들은 성경의 원리에 따라 처신하지 않고, 각자의 소견에 옳은 대로 처신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단의 유혹이나 공격에 대하여도 스스로의 판단으로 대비하지 못하고 쉽게 유혹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실례로 근래에 한국교계를 극심하게 어지럽히고 있는 신천지 이단은 성경으로 말한다는 미명 아래 터무니없는 황당한 성경해석을 들이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교인들이 오히려 그것을 심오한 말씀이라며 쉽게 휘말리고 있습니다. 신앙적이고 성경적인 분별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인들이 성경적인 분별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가장 큰 원인은 성경 본문을 말하는 설교를 듣지 못했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그렇게 처절하게 지적했던 말씀의 기갈 현상은 바로 오늘 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것과 같은 시대를 두고 한 말씀일지도 모릅니다. 성경책은 어디에나 나뒹굴고 있는데 정작 그 책 안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들을 수 없는 시대를 우리가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이 시대의 설교자들이 걸머져야 할런지도 모릅니다. 강단에서의 말씀의 회복과 말씀의 부흥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의 급선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