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57)| 배교정치의 후유증_정창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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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교정치의 후유증

열왕기상 12:25-33

< 정창균 목사, 합신교수 >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배교적 처신이 문제”

솔로몬이 죽자 아들 르호보암이 왕위를 이어받았습니다. 새 왕이 세워지자 
백성들은 새로운 정치에 대한 큰 기대를 갖고 왕을 찾아와 자신들의 어려운 
사정을 풀어주도록 요청하였습니다. 솔로몬 왕의 통치 아래서 주어졌던 버거
운 부담과 고역과 무거운 멍에를 이제 가볍게 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새로운 왕에 대한 기대감 높아져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백성들의 요청을 거부하고 오히려 폭군정치를 선
언하였습니다. 왕이 폭군정치 노선을 선언하자 나라가 둘로 갈라져버렸습니
다. 열두 지파 가운데 열지파가 똘똘 뭉쳐서 여로보암을 왕으로 추대하여 북
왕국 이스라엘을 세우고 독립해버렸습니다. 
여로보암은 솔로몬의 통치 기간 동안 망명생활을 하다가 돌아와 갑자기 새로
운 나라의 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여로보암은 왕권을 
강화할 필요를 느꼈
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이 문제였습니다. 성전이 그곳에 있으니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그곳에 자주 다닐 수 밖에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었습니다. 
북왕국의 백성이 예배 때문에 남왕국 예루살렘을 그렇게 자주 다니다보면 그
곳에 대한 적대감도 약해질 것이고, 그러다보면 다시 유다와 하나가 되기 위
하여 왕인 자기를 없애버리려고 할 것이라는 게 정치가 여로보암에게는 걱정
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자기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에 제사 드리러 가는 것을 막을 수 
있을까를 궁리하다가 그가 내놓은 묘수는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전에까지 갈 
필요가 없게 여건을 조성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힘을 기울여 새
로운 정책을 펼쳤습니다.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두 곳에 두어 그것을 하나님으로 알고 제사하게 하였
고, 공사판을 일으켜 산당들을 짓고, 아무 사람이나 뽑아서 제사장으로 임명
하고, 유다의 절기와 비슷한 날을 잡아서 이스라엘의 절기로 명명하였습니
다. 그는 그 모든 일들을 “자기 마음대로”(33절) 하였습니다. 
“여기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제사 드리자고 굳이 예루살렘에 까지 가
는 수고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백성들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
나 가리지 않고 행한 셈입니다. 
여로보암이 왕으로서 펼친 정치의 본질은 한 마디로 배교정치였습니다. 결과
적으로 자기도 하나님에게서 돌아서고, 백성들도 하나님에게서 돌아서게 하
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거짓과 술수를 동원하며 이러한 배교정치를 일삼은 
가장 중요한 동기는 자신의 정권의 안정이었습니다. 
여로보암의 이러한 행태에 대하여 본문은 간단하게, “이 일이 (하나님께)죄
가 되었다”고 단언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 위하여 펼친 
이러한 배교정치가 얼마나 무서운 후유증을, 얼마나 오랫동안 이스라엘에게 
초래하였는가를 성경은 끈질기게 증거합니다. 
여로보암과 그 이후의 왕들이 얼마나 악하였는가를 말하기 위하여 성경은 일
관되게 “그가 여로보암의 길로 나아갔다”거나 혹은 “그 아비의 길로 나아갔
다”는 한 마디로 결론을 짓습니다. 성경은 여로보암이 갔던 배교의 길을 지
칭하기 위하여 이 말들을 거의 관용어나 전문용어처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죄
가 되는 배교정치를 펼친 그 왕들이 다스린 나라의 형편은 참혹
하였습니다. 19명의 왕이 통치한 208년 동안, 부자간의 왕위 계승은 단 10차
례에 그치고, 왕위가 공석이 되어 왕 없이 지낸 것이 두 번에 결쳐 20년이었
습니다. 
19명의 왕 가운데 7명만이 수명대로 살다가 자연사하였고, 한 명은 하나님
의 징벌을 받아 죽었고, 두 명은 전투에서 전사하여 죽었고, 한 명은 자살하
여 죽었고, 한 명은 2층에서 떨어져 죽었고, 여섯 명은 살해당해 죽었고, 
한 명은 포로로 잡혀가 죽었습니다. 19명 가운데 한 명은 6개월, 한 명은 1
개월, 어떤 왕은 단 일주일간 통치하기도 하였습니다. 19명 가운데 10명이 
큰 전쟁을 치루어야 했습니다. 
결국 여로보암 왕으로부터 시작한 북왕국 이스라엘은 당시 가장 잔인하고 포
악하기로 소문난 앗수르의 침략을 받아 망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것이 배교
정치의 결과였습니다. 
그 명분이 무엇이든 신자가 자기의 잇속을 충족시키는 것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집착하는 것은 “여로보암의 길”로 나아가는 첫 걸음일 수도 있다는 무
서운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때보다 하나님을 많이 말하고, 이
곳 저곳에 성전도 지어대고, 제사장들
을 세우고, 절기들을 만들어 지키는 데도 그렇게 하는 숨은 목적이 무엇인
가 때문에 외견상 지극히 신앙적이어 보이는 그 행동들이 사실은 하나님을 
등지는 배교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자의적 신앙이 하나님 등지는 배교

그 누가 되었든 간에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한 배교적 처신은 반드시 참혹
한 후유증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