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55)| 삶으로 드리는 예배_정창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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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으로 드리는 예배

로마서 12:1-2

< 정창균 교수 >

“삶으로 드리는 예배 없는 의식적 예배는 가치 없어” 

성경은 예배를 단순히 하나의 신앙공동체가 정한 시간에 정한 장소에 모여
서 함께 드리는 의식으로 이해하는 데서 그치고 있지 않음을 주목해야 합니
다. 성경은 신앙공동체가 흩어져서 살아가는 현장에서의 삶 자체를 가리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현장의 삶 역시 예배로 제시해

로마서 12장 2절 말씀은 “너희는 이 세대를 본 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
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
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바로 우리의 일상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말씀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런데 1절 말씀은 이러한 삶을 가리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
룩한 산 제사로 드리는 것”으로 말씀합니다. 즉, 우리의 몸을 하나
님께 드리
는 제사로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곧 이어서 이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하나님께 드릴 예배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즉 우리의 몸을 드리는 제사가 있는데 그것
이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예배이며, 그렇게 몸을 하나님께 드리는 영적
예배의 구체적인 내용은 우리가 일상의 삶에서 이 세대를 본받지 않고 마음
을 새롭게 하여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 사는 것
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결국 성경이 제시하는 예배는 의식 혹은 예전으로 드리는 예배(요 4:23-24)
와 삶으로 드리는 예배(롬 12:1-2)가 있으며, 성경은 이 두 예배를 우리가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예배로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삶으로 드리는 예배”라는 말이 생활현장에서도 수시로 시간을 내어 예
배시간을 가져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상의 삶을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 드리는 원리와 자세로 살아야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칼빈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예배”를 매우 강조합니다. 그에게 있어서 하
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수단이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
는 수단이 바로 예
배입니다. 그리고 그가 제시하는 예배의 종류는 “교회 안에서 드리는 예
배”와 “생활의 현장에서 자기의 삶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예배
자에게는 삶의 모든 영역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교회 안에서 예배시간에 드리는 예배와 흩어져서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 독립
된 별개의 것이 아닙니다. 주일날의 교회 안과 주간의 교회 밖이 똑 같이 예
배의 현장일 뿐 아니라, 둘은 필연적으로 깊은 상호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의식으로 드리는 예배의 성패가 삶으로 드리는 예배의 성패와 깊이 관련되
어 있고, 삶으로 드리는 예배의 성패가 의식으로 드리는 예배의 성패와 깊
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의식으로 드리는 예배에서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성공할 힘과 근거와 지침을 얻는가 하면, 삶으로 드리는 예배에서 의식으로 
드리는 예배로 돌아갈 근거와 이유를 확인합니다. 

이사야서 1장 11-17절의 말씀은 삶으로 드리는 예배에 실패하면서 의식으로 
드리는 예배로 모든 것을 떼우고 스스로 만족에 빠지는 신자들의 행태가 얼
마나 하나님께 무서운 책망을 받을 만한 것인가를 생생하게 증거하고 
있습니
다. 삶으로 드리는 예배에는 관심이 없으면서 때를 따라 열심히 드리는 의식
으로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은 거부할 뿐 아니라 그것을 예배로 인정도 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선언합니다. 
근래에 우리 한국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위기는 삶의 현장에
서 드리는 예배, 곧 삶으로 드리는 예배의 실패와 그로 말미암은 후유증일 
것입니다. 교회 안팎에서 터져나오는 교회와 교인들에 대한 작금의 신랄한 
비난들은 사실 의식으로 드리는 예배에는 여전히 열심인데, 삶으로 드리는 
예배는 철저히 실패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에 대한 실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
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삶으로 드리는 예배로 말미암아 그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은 
정도를 놓고 보면 한국인 4-5명당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지금이 조선
인 1만 명에 한 사람 정도가 그리스도인일 때보다 훨씬 못미치고 있다는 사
실에 우리는 충격을 받아야 합니다. 

삶으로 드리는 예배 실패가 문제

우리에게 시급한 것은 예배갱신 운동이 아니라 예배회복 운동일 것입니
다. “삶으로 드리는 예배”의 회복 말입
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