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53)| 하나님이 되고 싶은 사람들_정창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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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되고 싶은 사람들 

창세기 3:1-7 

<정창균 목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인간 차원을 초월하는 신비한 체험 추구는 무의미해” 

사탄교에서 활동하다 이탈하여 교회로 돌아와서 이제는 기타 하나 들고 복
음 
송을 부르고 간증을 하면서 돌아다니는 젊은 백인 아가씨를 제가 유학중이 
던 90년대 중반에 만나 장시간 대화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탄교에 빠졌던 사람 만나기도 

그 아가씨는 사탄교도들이 모여서 행하는 의식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 
다. 그들의 의식은 주로 자기들의 능력을 채우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지는 
데, 고양이와 같은 짐승을 사용하여 의식을 행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고양이를 가운데 놓고 둘러서서 의식을 행하는데 최대한 오랜 시간동안 최
대 
한 심한 고통을 고양이에게 가하면서 서서히 죽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
하 
여 고양이가 죽어가면서 발산하는 힘을 자기들에게 흡수하여 들인다는 것이 
었습니다. 
그들
은 죽어가는 생명은 고통을 심하게 당할수록 큰 힘(power)을 발산하며, 
그 힘을 흡수하면 초인적 능력을 소유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아주 
특별한 때는 어린 아이를 제물로 삼아서 의식을 행한다는 말도 하였습니다. 
그 이후 사탄교에서 의식을 행하는 모습과 언제나 검은 옷을 입고 젊은 여
자 
를 양쪽에 거느리고 다니는 지도자의 모습을 사진으로 본적도 있습니다. 
제가 살던 도시에서는 사탄교도라고 밝혀진 한 여학생이 침대에 누워있는 
자 
기 어머니의 머리를 갑자기 쟁반과 냄비로 정신이 나간 듯 때려서 죽였다는 
기사와 테이블 마운틴의 여기저기 계곡에서 구토물 등 사단교도들이 의식을 
행한 것으로 보이는 흔적들이 발견되었다는 등 사탄교에 대한 보도가 심심
찮 
게 나오곤 하였습니다. 결국 그들이 추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능가하는 초능 
력을 소유하여 자기들이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초능력을 지향하는 것은 사탄교만이 아닙니다. 인
간 
의 능력을 초월하는 초능력을 갖고 싶어 하는 열망과 자신이 하나님과 같은 
신적 존재가 되고 싶은 욕구는 인간에게 언제나 있어왔습니다. 그
리고 그 
능 
력을 소유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그러한 신적 존재가 될 수만 있다면 무엇 
이라도 하겠다는 의욕을 품어왔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넘어진 시험도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되고 싶은 
것 
이었습니다. 하나님과 같은 초인적 존재, 초능력의 존재가 되고 싶은 것이
었 
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이 처음 타락한 원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 
늘 날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여 망하게 하는 원인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종교적 의식을 통하여, 세력 확보를 위한 각종의 조직의 규합을 
통 
하여, 특별한 종류의 음악을 통하여, 깊은 명상을 통하여, 때로는 자기 최
면 
을 통하여 인간의 차원을 초월하여 신적인 영역으로 옮겨가려는 시도들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인간의 차원을 넘는 초능력이나 신비한 경지에 이르는 
것을 궁극적 목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특별히 그것이 
신앙의 이름으로 혹은 영성의 이름으로 행해질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러 
므로 능력 지향적이고 신비 체험 지향적인 신앙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그러 
한 경향을 경계해야 합니
다. 
더 큰 능력을 얻을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하려고 몰려드는 현상과 신비한 
체 
험을 할 수 있다면 어떤 방식의 기도나 의식도 마다하지 않는 작금의 현상
들 
의 한 가운데는 본인들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이 되고 싶은 욕구”가 도사 
리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열광하여 능력을 얻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영계를 감지하는 그 
렇게 신비한 체험을 하여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왜 그러한 초능력이 그
렇 
게 중요하며 그렇게 신비한 체험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는지 곰곰 생각해 보 
아야 합니다. 그래서 얻는 결과가 무엇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실제로 어느 종파 혹은 어느 소위 영성훈련 프로그램에서 영성이라는 명분
으 
로 시도하는 하나님의 임재체험이라는 것은 사실 오랜 세월 동안 이교도들 
이 행해온 신접술과 방불하기도 합니다. 

하나님 임재체험은 이교도적 행위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통쾌한 능력의 구사와 인간의 차원을 초월하는 신
비 
한 세계로의 진입 자체가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지향하는 가치요 추구하는 
목 
적이라면 그것은 매우 잘못되었을 뿐 
아니라 위험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