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인도하는 묵상칼럼 (15)
데살로니가전서 2:7-12
목자가 되고 아비가 되어
정창균 목사/합신교수, 남포교회 협동목사
“나로 하여금 우리 교인들에게 목자가 되고 아비가 되게 하소서. 목자의 마
음을 주시고, 아비의 마음을 주소서.”
아비의 마음으로 목회하기를
담임목사로 목회를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한 동안 새벽마다 그리
고 틈만 나면 처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애원한 저의 기도였습니다. 걸핏하면
교인들에게 서운한 생각이 들고, 교인들이 야속하다는 마음이 불쑥불쑥 들
고, 때로는 아무것도 아닌 문제로도 혈기가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르고, 목
회 시작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제 목회를 그만두고 쉬고 싶다는 생각에 사
로잡혀서 허우적대고 있는 제 자신의 모습을 어느 날 문득 발견하고 부터였
습니다.
목회자라 할 수 없을 만큼 몹쓸 모습으로 변절해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하고
는 이런 목사에게 기만당하고 있는 우리 교인들이 한없이 불쌍하다
는 생각
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제 자신이 더없이 비참하고 서러워서 이대로는
살 수 없다는 생각에 시작한 기도였습니다.
끝까지 그 모습 그대로 갈 것이라면 차라리 골목 한귀퉁이에 포장마차 차려
놓고 야식 우동을 팔든지, 아니면 들판에 나가서 쑥이라도 캐다가 노상에 펼
쳐놓고 팔면서 사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수백 년 전 어떤 성
자는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라며 차원 높은 기도를 했다는
데 저는 아직도 제 자신의 문제로 낑낑대고 있는 모습에 화가 나기도 하여
이제는 어떤 결단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살펴보니 그것은 저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상당수의 목회자들이 안고 있는 문제요 적지 않은 교회들이 앓고 있는 가슴
앓이의 원인이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요즘 이 나라 교회의 심각한 문제들 가
운데 하나는 많은 목회자들이 그리고 더 많은 목회 지망생들이 목자가 되고
아비가 되려하기 보다는 사장이 되고 최고 경영자가 되려하는데 있습니다.
헌신된 사역자가 되려하기 보다는 화려한 영웅이 되려는 데 온통 정신이 팔
려있는 데 심
각한 문제가 있습니다. 목회자를 최고 경영자로 부추기고, 성공
한 영웅으로 안내하는 책들이 불티난 듯이 팔리고 금방 베스트셀러의 자리
에 올라갑니다. 그러다 보니 명칭은 목자인데 하고 있는 일은 전혀 목자가
아닌 현상들이 이곳저곳에서 벌어지는 것입니다.
사려 깊지 못하게 공개적으로 이런 말을 꺼내서 목회자들을 매도하거나 스스
로 누워서 챔뱉자는 것이 아닙니다. 심각한 고민을 함께 해보자는 충정일 따
름입니다. 교인들에게는 그들의 신음 소리와 노래 소리를 민감하게 구별하
고 그들의 필요를 미리미리 감지하여 살길로 인도해나가는 목자가 필요합니
다.
그들을 위험에서 건지는 일에 내 목이라도 기꺼이 내놓는 목자, 속 썩이고
딴 길로 가려고 기를 쓴 양이라도 기꺼이 품에 안고 기뻐하며 돌아오는 목
자, 그런 목자가 필요한 것입니다. 끝없이 사랑하되 무조건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아부하지 않고, 책망할 때와 권면할 때와 위로할 때를 분별하여 그들
의 유익을 위하여는 이것도 하고 저것도 또한 소홀히 하지 않는 아비가 교인
들에게 있어야 합니다.
사실 교인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은 목자처럼 아비처럼 신뢰
하며 따
를 수 있는 목회자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자가 되고 아비가 될 책임
은 우리 목회자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을 향하여 자신은 어떻게 그들을 목회하
였는가를 밝히고 있는 대목을 곰곰 살펴보면 참으로 큰 도전이 됩니다. 유모
의 심정으로 그들을 대하여 그들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즐거움으로 내놓
는 사랑을 품고 목회를 하였다고 합니다(7-8절).
그 교인들에게 주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라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며
수고하고 애썼쓰며(9절) 교인들은 물론 심지어 하나님을 증인삼아 자신 있
게 말 할 수 있을 만큼 사도 자신이 교인들에게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아내려
고 힘을 썼으며(10절) 아비의 분별과 절제를 갖고 때로는 권면으로, 때로는
위로로, 때로는 책망으로 그들을 대하였습니다(11절).
그리고 사도는 말미에 자신이 그렇게 목회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이었는지
를 암시하는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의 ‘교인관’입니
다. 사도는 하나님께서 자기 나라와 자기의 영광을 그들에게 주시려고 그리
고 하나님의 가치 기준으로 볼 때 값이 나가는 삶을 살
게 하시려고 하나님께
서 친히 부르신 사람들이라는 눈으로 교인을 바라본 것입니다(12절). 결국
사도의 그러한 목회의 원동력은 그의 타고난 성품이나 성숙한 인격이 아니
라 그의 교인관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교인은 하나님이 부르신 성도들
교인을 마치 고객으로 생각하도록 유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근래의 많은 목회
전략들은 어쩌면 우리를 목회자가 아닌 것으로 끌고 가는 가장 큰 함정일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