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상처
성주진 교수/ 합신 구약신학
얼마 전 남측 이산가족이 북측가족을 만나기 직전에 남긴 말 한 마디를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만나면 상처부터 확인해야지요.’ 과연 그 분이 상처를 확
인했는지 그 후일담은 듣지 못했습니다만, 어떤 상처는 이처럼 한 사람의 정
체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확인해주는 표지가 됩니다. 그 상처를 아는 모자
는 ‘아들아!’, ‘어머니!’를 목놓아 부를 수 있습니다.
‘상처부터 확인해야지.’ 이 말은 도마가 부활하신 주님과 가진 대화를 떠오
르게 합니다. 도마에게 주님의 상처는 그분의 정체를 확인하는 표지였습니
다. 도마는 주님의 정체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그 상처가 의미하는 바 주님의
사랑과 주님 되심에 감격하여 외칩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이 때 도
마가 느꼈던 감동은 지금 성경을 읽는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달되어 옵니다.
우리는 과거에 믿음의 형제자매나 동역자들에게 상처를 입은 쓰라린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열심히 봉사하다가
가까운 사람들에게 상처를 받게 되면 우
리는 그만 주저앉기 쉽습니다. 한 번 상처를 받은 후에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
하면서 방관자적인 태도를 유지하기 일수입니다. 상처는 아픈 법이기에 다시
는 같은 고통을 당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누가 탓할 수 있겠습니까? 인지상정
인 것을요.
그러나 주님의 상처는 우리에게 아픈 질문을 던집니다. ‘너희가 상처를 아느
냐?’ 주님은 어떤 상처는 사랑의 증거라고 말씀하십니다. 불완전한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는 과정에서 피차 상처를 주고받는 것은 불가피한 일인 줄 압니
다. 그렇기에 때문에 사랑하려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고통을 받고 상처를 입
는 것을 각오해야 됩니다. 죄 없으신 주님도 고통과 상처가 없이는 우리를 사
랑할 수가 없었는데, 하물며 죄 많은 우리야 오죽하겠습니까? 고통과 상처가
없는 사랑은 인간의 실제상황을 도외시한 환상일 것입니다.
사랑의 아픔은 일종의 성장통이 아닐까요. 아이들이 한참 아픈 다음에는 키
가 훌쩍 크고 성숙해지는 것을 발견합니다. 성장할 때 고통이 수반되듯 사랑
의 성숙에도 많은 아픔이 필요한 줄 압니다. 아무런 고통 없이 편하게
만 살아
가는 것은 우리를 신앙적으로 나약하게 만들고 깊은 관계에 들어가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고통을 두려워하고 상처를 겁내다가는 믿음과 사랑
의 진보를 이루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의미 있는 일을 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형제에게 입은 상처는 사랑의 증거일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
리를 사랑하셨기에 상처를 입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아무런 고통이나 상처가
없는 몸으로 주님 앞에 서있는 우리의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봅니다. 우리는
어깨를 펴며 자랑스럽게 말합니다. ‘주님, 내 몸과 마음에는 상처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 말을 들은 주님은 과연 기뻐하실까요? ‘네가 사랑하지 않았구
나’ 라고 슬퍼하실지도 모릅니다.
반면 상처투성이의 몸을 가까스로 추스리며 주님 앞에 서 있는 우리의 모습
을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자신 없는 태도로 어렵게 말을 꺼냅니다. ‘주님,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이 정도 아픔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뭐라고 말
씀하실까요? 아마도 ‘이 상처는 사랑의 상처구나!’ 기뻐하실 것입니다. 주님
은 우리가 연약함의 증거로 알고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상처들을 오히려 영광
의 상처로 인정해 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가진 ‘그리스도의 흔적’도 이
런 상처가 아닐까요.
우리가 추구하는 삶의 목적이 그저 아무런 고통 없이 편하게만 지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을 본받고 그의 발자취를 따르는 것이라면, 아픔과 상처
를 각오하는 것이 마땅한 줄 압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아무 상처 없이 사
는 삶이 아니라, 혹 상처를 입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사랑을 계속하기로 결단
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다면 받지 않아도 될 고통을 받는 경
우가 있습니다. 또한 형제를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지 않는다면 입지 않아
도 될 상처를 입고 아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억울한 일이 실상은 그
토록 행복한 일입니다. 이 아픔과 상처는 주님이 우리 마음에 심어두신 사랑
의 부인할 수 없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은 상처 난 두 손을 들어
우리의 자랑스러운, 그러나 아픈 상처를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