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존재_성주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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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존재 

성주진 교수/ 합신 구약신학

방학을 앞둔 학생이나 휴가를 생각하는 직장인이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
으로 들뜰 때입니다. 훌쩍 길을 떠난다는 것 – 그것은 낭만적이면서도 매력적
인 주제입니다. 이 방랑의 마음이 어디서 온 것일까요? 일상에서 벗어나려는 
한 때의 일탈일까요? 버거운 짐에 대한 작은 반란일까요? 아마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한 채, 아직 가지 않은 미답의 길을 가려는, 마음속
에 숨은 소원의 숨길 수 없는 표출이 아닐는지요.

이런 까닭에 길은 예로부터 인생행로를 가리키는 상징으로 사용되어 왔습니
다. 고전에서 길은 인생의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해되기도 합니
다. 현대영화의 한 장르인 ‘로드 무비’도 인간이 길 위의 존재임을 확인해 줍
니다. 이 길 위에서는, 예를 들면, 소모품처럼 버려진 지치고 소외된 ‘잉여인
간’도 순수한 사랑을 통하여 새로운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때때로 순례자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의 조
상 아브라함도 약속의 땅을 향하여 순례의 길을 떠났습니다. 이 과정에서 야
곱은 애굽의 바로에게 순례자의 정체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순례자의 
이미지는 성도가 이 땅의 도성에 매어 사는 존재가 아니라, 천성을 목적지로 
삼는 지향적 존재요, 성화의 길을 가고 있는 과정적 존재임을 보여줍니다.

교회도 길 위의 존재입니다. 마가복음의 ‘길(호도스)’ 주제는 주님 중심으
로 움직이는 교회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교회는 본질적으로 터 좋은 곳에 
뿌리내린 자생적 조직체가 아니라,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즉시로 길을 떠나
는 제자들의 공동체입니다. 이 세상에서 안주하려는 성도와 교회가 주님을 제
대로 좇을 수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이라도 난관은 있습니다. 이 길은 오렌지 꽃향기가 바
람에 날리는 낭만적인 과수원길이 아닙니다. 온몸이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야
만 갈 수 있는 ‘좁고 험한’ 길입니다. 평탄한 길만을 바라고 길을 떠났다가
는 어려움을 당하면 쉽게 좌절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 십상입니다. 주님은 당
신의 손을 더 꼭 붙잡게 하시려
고 일부러 어려운 길을 택하실 수도 있습니
다. 그렇다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만이 우리를 기다리는 것은 아닙니다. 주
님은 우리를 위하여 쉴만한 물가와 누울만한 초장도 예비해 두셨습니다. 

이 길의 기상은 예측할 수 없습니다. 몰아치는 비바람과 한 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짙은 안개가 가는 길을 가로막을 때가 있습니다. 게다가 믿음이 좋다
고, 기도를 많이 한다고 폭풍과 안개가 즉시 걷히는 것이 아니더라는 말도 듣
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더 좋은 것을 주십니다. 우리와 동행하시면서 안개 속
을 걸어가는 법을 알려주시고, 길을 잃지 않도록 손잡아 이끌어 주십니다. 그
리고 때가 되면 안개도 거두어 가십니다.

험한 길을 가다보면 쉽게 지치고 자주 넘어집니다. 그러나 로이드 존스 목사
가 말한 것처럼 정상에 오르는 도중에 넘어졌다고 해서 산밑의 출발점으로 되
돌아가 다시 시작하지는 않습니다. 어디에서 넘어졌든지 넘어진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길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고 고집하는 것은 잘못된 완벽주의입니다. 완전주의의 오류는 자기의에 집착
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
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함으로써 새 출발을 지연시
키는 데 있습니다. 완전주의는 성화의 친구 같으나 실은 성화의 무서운 적입
니다.

길에는 많은 유혹이 있습니다. 그중 가장 무서운 유혹은 ‘애굽으로’ 돌아가
려는 유혹이 아닐까요? 애굽을 떠났으면서도 옛날의 쾌락이 찾아오기 쉽도록 
가는 곳마다 연락처를 남겨놓으려는 유혹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편하게만 가
려고 너무 많이 가져가는 것도 순례길에 지장이 될 뿐만 아니라, 도중에 안주
하고자 하는 유혹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애굽으로 다시 내려가지 말
라고, 간편한 행장을 갖추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길은 남이 대신 가 줄 수 없는, 내가 가야만 하는 길입니다. 우리 각자
가 길 위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이 길에는 동반자와 동
행자가 있습니다. 다가오는 휴가철에 주님과 함께 하는 특별한 여행을 계획하
지 않으시겠습니까? 멋진 여행이 되시기를(bon voy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