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 잔의 여유_성주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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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 잔의 여유 

성주진 교수/합신 구약신학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축복 가운데 가장 하찮게 여겨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
은 일상적 삶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혹자는, 우리네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일상적인 일들, 즉 먹고, 마시고, 쉬고, 출퇴근하고, 공부하고, 양육하
고, 살림하는 등의 일은 하나님의 일을 방해할 뿐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일상적 요소를 최소화하고 그 자리를 종교적 활동으로 채우는 일이 경
건의 요체라고 생각합니다. 일상적 삶에 대한 이러한 과소평가는 아마도 일상
의 평범함과 반복성 때문일 것입니다.

평균적인 그리스도인에게는 평범한 일상은 제쳐두고, 비범한 일, 특히 기적
적인 일을 추구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확실히 수고로이 땅을 일구는 일보
다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를 모으는 일이 훨씬 신나는 일입니다. 약속의 땅에 
들어간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도 농사일은 뒷전으로 미룬 채 내리지도 않는 만
나를 주우러 광야로 나간 이들이 더러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까마귀가 
물어
다 주는 고기가 뻔한 먹거리보다 더 신령한 음식처럼 보일 것입니다. 우리도 
사마리아 여인처럼 일상적인 수고와 성가신 스캔들에 지쳐있다면 ‘영생의 
물’을 한번 마심으로 영원한 해갈을 얻으려 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긴다면 더 큰 믿음과 헌신으로 주님을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요? 단정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저지른 불순
종과 반역은 기적이 모자라서 생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매일매일 기적
을 체험하며 살았습니다. 예수님 당시 살았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믿
는 이들에게 기적은 믿음의 성장을 가져다 주었지만, 기적을 요구하는 대부분
의 사람들에게는 더 큰 기적을 갈망하게 할 뿐, 믿음을 불러일으키지 못했습
니다.

일상의 삶을 낮추어 보는 또 다른 이유는 일상의 반복적 성격입니다. 누구라
도 아무 의미 없이 반복되는 일은 견디기 힘들 것입니다. 애써 밀어 올린 바
위가 다시 굴러 떨어질 것이 확실하다면, 또다시 밀어 올리는 수고는 소외의 
확인 외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나치의 온갖 고문을 이겨낸 일단의 유대
인 포로들을 절망으로 이끈 것은 
더 가혹한 고문이 아니라 흙더미를 반복적으
로 옮기는 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반복적인 일이라고 반드시 무의미한 것
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반복적 일상은 하나님의 나라가 거듭거듭 임하는 
임재의 자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단조로운 반복처럼 보이는 우리의 일상
을 풍성한 의미를 담아내는 질그릇으로 빚어갑니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통치
는 격식을 갖춘 종교활동에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짬
짬이 나누는 뜻밖의 담소와 차 한잔의 여유 가운데에서도 누룩같이 번져갑니
다. 

모세와 기드온은 일상적 삶의 소중함을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방문을 받
았을 때에 모세는 특별한 종교행사에 참여하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양을 치고 있었습니다. 기드온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미디안 사람들이 무서
워 숨어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평범하고 초라한 그들의 일
상 속에 ‘침입’하셨습니다. 신약 경륜에서 하나님의 임재는 일상의 삶 전체
로 확장되었습니다. 

일상의 복됨은 역시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궁극적으로 기초하고 있습니다. 주
님의 지상생활
은 인간 존재의 모든 양상과 삶의 모든 모습을 포괄하고 있었습
니다. 주님의 먹고 마심은 우리의 먹고 마심을 영광의 기회로 만들었습니다. 
주님의 노동은 우리의 모든 수고를 하나님 나라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주
님의 일상은 하나님이 현존하시는 처소가 되었고, 우리는 주님 안에서 같은 
축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일상의 삶이 다 은혜입니다. 삶 전체가 하나님 앞에 드
려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일상성은 피해야 할 번거로움이 아니라 기쁘게 누
려야할 축복입니다. 일상은 무의미한 시간 보내기나 목적 없는 일의 반복이 
아니라, 풍성한 의미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전진하는 도도한 은혜의 흐름입
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리스도인의 일상적 삶은 하나님 나라가 언제 어떤 
방식으로 임할지 모르는 가운데 믿음과 기대로 팽팽하게 긴장된 활시위와도 
같습니다. 이것은 일상의 평범함과 반복성에 지쳐 삶의 활력을 잃어 가는 우
리들이 회복해야 할 실천적 경건이 아닐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