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입은 자존심_성주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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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입은 자존심 

성주진 교수/ 합신구약신학

요즈음 머리 속에서 맴도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자존심’이라는 
단어입니다. 상처 입은 얄팍한 자존심 때문에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것은 아닌
가 뒤돌아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상처받은 자존심은 뒤얽힌 인간관계뿐
만 아니라 복잡한 국제관계를 이해하도록 돕는 열쇠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
다. 

911테러로 미국의 자존심은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이 끔찍한 테러는 수많
은 생명을 순식간에 앗아갔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은 이전의 미국과
는 전혀 다른 미국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탈레반 정권과 벌인 ‘테러
와의 전쟁’의 단호함과 이라크와의 전쟁에 대한 집요함은 미국이 입은 상처
의 깊이를 반영합니다. 

이라크의 자존심도 만만치 않습니다. 느브갓네살의 바벨론을 꿈꾸며, ‘7000
년 역사’를 자랑하는 이라크는, 이제 200년을 갓 넘긴 신흥강대국 미국과 자
존심 대결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 대결은 종교적, 문명적, 경제적, 
국제정치
적 요인과 맞물려 예측하기 어려운 복잡한 국면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라크에 대한 대응에서 독일과 프랑스는 미국과 같은 나토 회원국임에도 불
구하고 오히려 러시아와 함께 미국을 반대하는 입장에 서 있습니다. 여기에
는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유럽국가의 손상된 자존심이 얼마간 작용했을 것입
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닙니다. 여학생 치사사건과 관련해서 미군법정이 내린 무죄
판결은 민족의 자존심에 커다란 상처를 입혔습니다. 이 상처가 대규모 촛불시
위로 번졌고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도 작지 않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소파
(SOFA) 개정 요구의 근저에도 상처받은 민족적 자존심이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자존심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는 우리가 다 경험하는 바입
니다. 상처를 받게 되면 고통스럽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이 됩니다. 나의 아픔
에 압도되어 다른 사람의 입장을 고려할 여유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더 이상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하여 각종 심리적 방어기재를 발동하게 됩니다. 
나아가서 상처를 입힌 사람에게 보복하려는 마음이 자리잡게 됩니다. 우리의 
상한 자존심은, 때로는 정당한 
존재가치를 입증하기 위하여, 때로는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하여, 우리의 생각과 행동을 특정한 방향으로 몰아갑니
다. 

상한 자존심의 무서움을 아는 세상의 지혜는, 자존심의 상처는 절대 회복되
지 않는다고 가르치고, 상대방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원수를 만드는 
지름길이라고 경고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많은 경우에 그리스도인에게도 적용
되는 줄 압니다. 그리스도인이기에 가질 수 있는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절대
적인 이해와, 목회자와 다른 성도에 대한 높은 기대 때문에, 오히려 더 큰 상
처를 쉽게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실 상처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
습니다. 우리는 서로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살아가는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자
존심에 입은 상처는 우리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감사하게도 주님
의 영광스러운 복음에는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상처들을 은혜의 처소로 만드
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는 아픈 상처를 통하여 자신을 다시 한번 돌
아보고 새로운 은혜를 덧입음으로써 주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습니
다. 

요셉은 아름다
운 예를 보여줍니다. 형제들은 상한 자존심 때문에 요셉을 종
으로 팔았습니다. 자기가 끼친 상처보다 더 큰 상처를 입게 된 요셉이 처음부
터 보복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게 된 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달았
기 때문입니다. 이 놀라운 진리는 요셉이 형제에게 보복하는 대신 그들과 그 
후손을 사랑으로 보살피게 만듭니다. 자존심의 상처를 사랑으로 승화시키는 
요셉을 통하여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결국 상한 자존심의 치유는 그리스도에게만 있습니다. 아무리 원숙한 사람이
라도 인격의 고매함으로는 상처를 치유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이 나를 회
복시켜 주실 때에만 나의 참된 자존감이 회복되고, 나를 통하여 다른 사람도 
치유를 받게 됩니다. 용서하고 용서받는 사랑을 통하여 우리의 상한 영혼 속
에 주님의 치유의 능력이 흘러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이 능력은 스스로 상처
를 받음으로써 죄인들을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흘러나오는 하나님
의 능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