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균 칼럼>
왕따가 된 장로님
어느 시골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화목하게 잘 지내오던 교회에 문제
가 생기기 시작하였습니다. 젊은 장로님 두어 분을 중심으로 목사님에 대하
여 불평이 일어나기 시작하더니 그것이 점점 공개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고,
급기야 나이드신 다른 장로님까지 한 덩어리가 되어 목사님을 노골적으로 반
대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교인들의 신망을 받고 있던 가장 나이가 많
이 드신 장로님 한 분만은 합세를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장로들이 입장을 함
께 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하였지만 이 장로님은 끝까지 목사님을 두둔하며
입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웬만하면 목사님의 실수는 그만 덮어두고 화목하
는 교회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장로님들은 이 분을 목사편이
라며 따돌리기 시작하였습니다. 동료 후배 장로들로부터 왕따를 당한 것입니
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교인들이 하나 둘 장로님들의 입장에 동조하기 시
작하더니 급기야는 교인들의 다수가 목사님을 반대하는 장
로님들의 편에 서
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교회를 떠나라는 장로들의 주장에 동조하는 교인의
수는 목사님의 결정적인 실수가 드러나면서 점점 더 많아지고 있었습니다. 교
회가 두 패로 크게 나누어지고, 서로의 사이에는 골이 깊어지려는 상황이 온
것입니다. 나이가 가장 연로한 이 장로님은 목사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목사님께 단도직입적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목사님을 반대하는 교인들의
수가 많아지고 있으니, 아무래도 교회의 평안을 위해서 목사님께서 결단을 내
려주셔야 하겠습니다. 교회를 떠나셔야 될 것 같습니다.” 이제 교회를 떠나
달라는 요청을 한 것입니다. 목사님은 많이 실망을 하셨습니다. 이 장로만은
자기 편이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는데 변절하여 역시 장로 편에 섰다고 생
각하신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목사님이 노를 품고 이 늙은 장로님을 따돌리
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이 장로님은 동료 장로들에게도 왕따를 당하고, 그
리고 목사님에게도 왕따를 당하게 된 것입니다.
이 장로님이 처음에 다른 장로들의 권유를 물리치고 목사님을 두둔하고 나
선 것은, 장로들이 싫고 목사님이 좋아서
가 아니었습니다. 나중에 목사님께
교회를 떠나시라고 권유한 것도 갑자기 마음이 변하여 목사님을 배반해서도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가지 이유, 곧 교회의 유익을 무엇보다도
앞세워야 한다는 나름대로의 확신에 따라 취한 행동이었습니다. 몇몇 사람이
목사님을 배척할 때는 목사님의 입장을 강하게 보좌하여 속히 교회의 혼란을
제거하고 교회를 안정시켜야 된다는 생각에서 목사님의 편에 서서 그 몇몇 사
람들을 설득하였고, 이미 교회의 다수가 목사님을 반대하는 입장에 서 버렸
을 때는 목사님이 속히 거취를 정하도록 요청하여 교회가 깨어지는 것을 막아
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한 것이었습니다. “이런 때에는 어떻게 하는 것
이 교회의 유익을 위하는 것인가?” 그것이 자신의 행동을 결정하는 기준이었
습니다. 장로들은 결국 그 교회에서 뛰쳐나가 따로 교회를 세웠고, 장로들로
부터도, 목사님으로부터도 왕따를 당한 그 장로님은 결국 병든 아내의 간호
와 수발을 위하여 도시의 아들네 집 근처 교회로 옮겨가 거기서 만년을 보내
며 교회의 시중을 들었습니다. 이 어른이 바로 4년 반 전에 세상을 떠나신
제 아
버지였습니다.
어머니의 병 수발 때문에 도시의 형님댁 근처로 교회를 옮겨 오시고 한참
이 지났을 때 그분은 그 때 일의 전말을 제게 상세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덧붙이셨습니다. “나중에는 목사님을 반대하는 교인들의 수가 많아져
서 내가 목사님을 찾아가서 직접 말씀을 드렸다. 이제는 목사님을 반대하는
교인들의 수가 많아져서 안되겠으니 교회의 평안을 위하여 교회를 떠나주셔
야 될 것같다고. 그랬더니 목사님이 안좋아하시더라.” 평생 목회자의 길을 가
야할 제게 교훈 삼아 의도적으로 그 말씀을 하신 것이었습니다. 언제나 교회
의 유익을 우선으로 행동을 하라는 뜻이었습니다. 요즈음 이곳 저곳에 교회
의 유익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유익을 행동의 최우선의 원리로 삼고 사는 사
람들 때문에 소란하고, 평안치 않은 교회들이 제법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