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균 칼럼> 망할 놈의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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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균 칼럼>

망할 놈의 친구

두어 주 전 참으로 끔찍한 사건이 부산의 어느 고등학교에서 벌어졌습니
다. 학생 하나가 칼을 들고 교실에 들어와서 다른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자
기 반 친구를 칼로 찔러 죽인 것입니다. 요즘은 워낙 상상을 초월하는 끔찍
한 사건들이 많아서 어떤 사람들은 그런 류의 사건들이 어디 그것 뿐이냐며 
이 사건도 혀나 몇 번 차고는 금방 잊어 버렸을런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것은 단순히 사람 하나가 다른 사람 하나를 칼로 찔러 죽인 그런 사건이 아닙
니다. 고등학생이 같은 반 친구를 교실에서 칼로 찔러 죽인 사건이 어찌 단
순히 수많은 살인 사건 가운데 하나일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그 아이가 그
런 방법으로 친구를 죽일 아이디어를 어디에서 얻었는가를 안다면 이 사건이 
단순한 개인적인 문제가 아님을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그 사건이 있고 며칠 후, 한 TV 방송에서 기자가 쇠고랑을 차고 있는 그 
아이와 인터뷰를 하는 장면을 상세히 보여 주었습니다. “왜 그 친구를 죽일 

생각을 하였는가?” “평소에 나를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에도 다른 아
이들이 다 보는 앞에서 나를 괴롭혔습니다.” 기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어떻
게 해서 칼로 찔러서 그런 식으로 죽일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 “영화 ‘친
구’를 보면서 그렇게 죽일 생각을 했습니다.” “어디에서 영화를 봤는가?” “영
화관에서 보고, 비디오 테이프 빌려다가 보고, 인터넷에서 보고… 그 영화
의 대사를 다 외웁니다.” 기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특별히 어느 대목을 보
고 칼로 친구를 그렇게 찌를 생각을 갖게 되었는가?” “그 영화의 대사를 다 
외웁니다.” 

한국영화 사상초유의 흥행을 올렸다는 그 영화였습니다. 그 아이는 친구라
는 그 영화의 대사를 다 외운다는 말을 세 번을 반복해서 했습니다. 영화 전
체로부터 자기 가 한 행동의 영감(?)을 얻었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자기를 괴
롭히는 친구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을 불태우면서 그 영화에 몰입하여 반복적
으로 보았고, 그 영화는 어떻게 화끈하고도 영웅적인 모습으로 친구를 죽여 
없앨 수 있는지를 가르쳐 준 것입니다. 말하자면 “친구
“라는 영화가 친구가 
친구를 죽이는 방법을 가르쳐 주면서 친구를 죽이도록 교살을 한 것입니
다. “친구”라는 제목을 붙인 것이라면 그것이 영화가 되었든지, 책이 되었든
지, 만화가 되었든지, 그것을 본 다음에는 깨졌던 친구 사이가 회복되든지, 
원한을 품었던 사이에 화해가 이루어지든지, 멀어졌던 사이가 가까워 지고, 
친구에 대하여 관심이 없던 사람이 친구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는 일 등 뭔
가 긍정적인 반응이 생기기를 바라는 것이 우리의 정상적인 기대입니다. 우리
의 이러한 기대를 ‘그것은 모든 예술 활동이 설교가 되라는 유치하고도 전근
대적인 발상’이라고 치부해버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친구라는 영화를 
보고나더니 친구가 친구를 그 방법 그대로 죽여버리고 싶어지고, 그래서 그대
로 일을 저질러버리고 말도록 부추기는 역할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모든 공
공성을 띤 활동들이 짊어져야 하는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인 것입니다. 친구
가 그렇게 잔인하게 친구를 죽이는 모습을 부각시킴으로서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반어법적 메시지를 의도한 것이라는 웃기지도 않는 괴변성 변명을 아
무리 늘어
놓는다 하여도 그 영화는 여전히 폭력성 화끈함에 매료되는 일반인
들의 심리를 휘어잡아 흥행에 한번 성공해보려는 폭력영화인 것은 확실합니
다. 

친구를 그렇게 죽여 없앤 그 친구는 참 망할 놈의 친구입니다. 그러나 사
람들의 심리를 잘 읽어내어 장삿속에 빠져서 그런 영화를 만들어내어 떼돈을 
번 그 작자도, 그가 만들어 낸 그 영화 ‘친구’도 망할 놈의 친구입니다. 그리
고 그 따위 폭력 영화를 보고 그렇게 열광하고 좋아하여 장삿군에게 이용당하
는 이 놈의 세태는 더 망할 놈의 세태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세태는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우리가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망할 놈의 세상을 만들
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홧김에 씩씩거리다가, 문득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사람은) 마
음에 가득히 쌓은 것을 밖으로 내놓는다.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하
게 된다”(눅6:45). 친구를 죽인 그 친구도 그 못된 폭력영화를 대사를 줄줄 
외울 정도로 그렇게 보지 않았어도, 그래서 마음과 생각을 그 악한 것으로 채
우지 않았어도 그 망할 놈의 짓은 하지 않았을 텐데… 우리가 
무엇을 주로 
보며 사는가, 무엇을 주로 들으며 사는가, 그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무엇
으로 채워 가고 있는가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