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예정’의 불변성_김병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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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예정’의 불변성

 

< 김병훈 목사, 화평교회, 합신 조직신학 교수 >

 

 

3장 4항: “이와 같이 미리 결정이 되고(predestined) 미리 규정이 된(preordained) 까닭에, 이러한 천사들과 사람들은 하나하나 개별적으로 그리고 불변하게 계획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수효는 일정하며 한정이 되어 있어 그 수가 늘어나거나 줄어들 수가 없습니다.”

 

 

“개별적인 특정한 사람 자체를 선택하는 하나님의 예정은 변치 않아”

 

 

제3장 4항이 설명하는 바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러한 예정은 단지 예정된 수효의 전체 범위만 일정한 수로 한정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수효에 포함이 되는 대상이 각각 개별적으로 불변하게 예정이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예정한 천사들과 사람들의 수효는 그 범위가 일정한 수로 한정이 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3장 4항은 비록 짧은 고백이지만, 예정론과 관련하여 개혁신학이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주장들과 어떠한 차이를 보이는 지를 보여주는 매우 핵심적인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예정론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예정의 전체 수효나 그 수효에 포함이 되는 특정 개인의 예정에 대해서는 인정을 하지 않습니다. 앞서 3장 2항을 해설하면서 말씀드린 것처럼, 이들은 예지에 근거한 예정을 주장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미리 선택을 받기에 합당한 믿음이나 행위를 정하여 놓으시고, 어떤 이가 그러한 믿음이나 행위를 실행하는 자를 미리 보시고 선택하신다고 믿습니다.

 

개혁신학의 예정론은 하나님께서 누가 선택을 받을 것인지를 이들의 믿음이나 행동에 상관없이 개별적으로 각각 미리 정하셨으며, 그들의 수효를 또한 불변하게 한정하여 놓으셨다고 가르칩니다. 이러한 개혁신학의 설명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시는 방식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있어서 알미니안주의와 완전히 다른 이해를 갖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개혁신학은 알미니안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선택될 만한가를 미리 정하신 후에 어떤 사람들이 그에 해당하는지를 미리 보시고 그들을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즉 하나님은 단지 선택될 만한 사람들의 특징을 선택하시는 것이 아니라, 각각 개별적인 특정한 사람 자체를 선택하신다는 것이 개혁신학의 이해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다음 항목인 3장 5항을 다룰 때에 설명을 좀 더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는 개혁신학은 왜 택함을 받은 천사들과 사람들의 수효의 범위가 일정한 수로 한정이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살피고자 합니다. 우선 선택과 유기에 대한 작정도 일반적인 다른 일에 대한 작정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작정으로서 불변성을 갖기 때문에 하나님의 예정한 수효는 일정하며 불변합니다. 우선 “하나님의 뜻은 설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십니다(사 46:10).

 

하나님의 예정은 야곱과 에서의 경우에서와 같이 그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택하심으로 이루어집니다(롬 9:11). 또한 하나님께서는 구원에 있어서도 약속과 이에 대한 맹세를 주셨으며 이러한 약속과 맹세는 결코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그의 성품에 따라서 확증을 하십니다(히 6:17-18). 이처럼 구원과 예정에 관한 일도 하나님의 작정이므로 다른 일반에 관한 작정과 마찬가지로 변하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종말에 있을 환란에 대해 말씀을 하시며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 24:24)고 경계의 교훈을 주신 것은 어떻게 이해하여야 할까요? 이 말씀에 따르면, 언뜻 생각하기에 택함을 받은 자들이라도 미혹을 당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는 일이 있을 수 있음을 말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만일 그렇다면 택함을 받은 자들의 수효가 일정하며 불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이해는 잘못된 해석에 기초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이라는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께 뜻하시는 바는 오히려 택함을 받은 자들이 미혹을 받아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되는 일이 일어날 가능성은 전혀 없음을 전제로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의 초점은 종말의 때에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 얼마나 위태로운 공격을 할 것인가를 강조하기 위한 데에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에 대해서 반론을 말하기를 만일 하나님의 예정의 불변성으로 인하여 택함을 받은 자들이 넘어지는 일이 불가능 하다면, 그리스도께서 종말에 있을 거짓 그리스도와 선지자들의 위험에 대해 경계의 교훈을 주실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러한 경계의 말씀이 주어졌다는 것은 택함을 받은 자들이라도 넘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반론은 베드로의 경우만 생각해 보아도 바로 힘을 잃게 됩니다. 이와 관련해 다음호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