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용서를 구하는 교회_이윤호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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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의 용서를 구하는 교회

< 이윤호 장로, 선교비평 발행인 >

“죄 용서 구하는 교회에게 하나님 은혜 주어져”

126문> 다섯째 간구는 무엇입니까?
답>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
옵소서”로, 이러한 간구입니다. “주의 은혜의 증거가 우리 안에 있어서 우
리가 이웃을 용서하기로 굳게 결심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보혈을 보시사 
우리의 모든 죄과와 아직도 우리 안에 있는 부패를 불쌍한 죄인인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님이 가르쳐주신 기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심과 
그의 나라의 도래에 대한 간구로 시작합니다. 그 나라를 통해 하나님의 뜻
이 이 땅에 온전히 이루어질 것에 대한 소망이 뒤따르고, 그 나라의 한 복판
에서 나오는 양식으로 말미암아 그 백성들은 매순간 생명을 이어나갈 수 있
다는 고백이 그 뒤를 잇고 있습니다. 

삶의 동력이 되는 하나님 나라


렇다면 생명을 공급받을 수 있는 이 나라에는 누가 참여할 수 있을까요? 
간절히 원하기 때문에, 스스로 자격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나라에 참여
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특히 우리에게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습니
다. 바로 죄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죄에 관한 문제를 이해하고 설명할 때 교회는 다양한 태도를 보여 왔습니
다. 로마 가톨릭교회는 그 특유의 신학자세, 즉 합리적 정신에 의거하여 죄
를 분석하거나 분류하곤 했습니다. 예컨대 이해 타당한 잣대를 통해 죄의 경
중(輕重)을 판단하기도 하고 죄가 드러나는 양상에 따라 행동의 죄, 말의 
죄, 생각의 죄 등으로 열거해 보기도 했습니다. 
로마교회에서 규정한 일곱 가지 대(大)죄에 관하여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
니다. 자랑, 시기, 분노, 나태, 탐욕, 탐식, 욕망, 이 일곱 가지를 우선적으
로 절제함으로써 죄로부터 멀어지고자 하는 그들의 바람이 엿보입니다. 아
니 죄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는 그들의 희망이 엿보입니다.
그렇지만 죄와 관련한 개혁주의 교회의 우선적인 관심은 보다 근본적인 것이
었습니다. 여기서 근본적(radical)이라는 단어는 라틴어의 ‘뿌리’(radix
)
에 그 어원(語源)을 두고 있는 말입니다. 즉 우리 마음 깊은 곳까지 뿌리를 
내리고 있는 존재로서의 죄를 인식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가지 잘라내기를 
반복하여도 도저히 없어지지 않는 속성, 게다가 단지 잔존하는 정도가 아니
라 끊임없이 자라나는 죄의 속성에 대한 인식입니다. 
뿐만 아니라 근본적(radical)이라는 말은 과격하다는 의미로도 사용되는데 
뿌리나 근원적인 부분까지 흔들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를 나타낼 때 그러합니
다. 결국 죄라는 것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거나 표
면적 거부감을 가질 뿐 아니라 그것에 대해서 의지적으로 과격하게 반발하
는 특성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는 것
은 사실상 불가능해 보입니다. 도저히 제거할 수 없는 죄를 지니고 있으며, 
그 죄는 너무나 과격해서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는 것을 격렬히 방해하려 하
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기도를 가르쳐주시기에 앞서 어떤 외식하는 자들의 기도를 언급
하셨습니다. 만약 그들이 죄를 고백했다면 좀 더 절제함으로 죄 문제를 극복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만약 그들
이 스스로의 선행을 아뢰었
다면 남들보다 나은 선행을 통해 하나님 나라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
했을 것입니다. 죄에 대한 정당한 자각이 그들에게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그것과 전혀 다른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참
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우리 자신에게 돌리지 않으심으
로써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죄의 용서를 구하는 기도는 우
리의 성도됨이 오직 주님의 은혜에 달려 있다는 사실에 대한 고백이기도 합
니다. 
오늘 우리는 좋은 교회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때로는 교회의 좋
고 나쁨을 그저 단순한 비교에 의해 판단할 때가 많습니다. 상대적으로 평가
를 한다면 어떤 교회는 더 많은 죄를 짓고 어떤 교회는 더 적은 죄를 지을 
것입니다. 만약 상대적인 죄의 가벼움으로 인해 스스로를 좋은 교회로 여긴
다면 그것은 죄에 대한 정당한 인식과는 거리가 있는 판단일 것입니다. 
교회가 이 땅에 존재하는 하나님 나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는지 그렇지 않은
지는 죄의 많고 적음에 달려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은혜에 대
한 깨달음의 유무(有無)에 
달려 있을 것입니다. 다름 아닌 우리가 도저히 근
절할 수 없는 명백한 죄를 우리에게 돌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은혜 말입니
다. 
그렇다면 참 교회의 표지라 여겨지는 요소들의 외적(外的) 형식을 하나하나 
구비해 나가는 것 자체가 좋은 교회의 기준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
가 가진 뿌리 깊고 과격한 죄의 근원을 절실하게 인식함으로써 먼저는 하나
님 앞에서 그 다음은 우리의 이웃 앞에서 한 없이 겸손할 수 있을 때, 비로
소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있는 근거가 마련될 것입니다. 

죄를 극복한 삶으로 드러내야

교회의 표지가 경직되고 화석화된 모습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진실한 모습으
로 드러나는 것은 오직 진심으로 죄의 용서를 구하는 교회에게 주어지는 은
혜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