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적 통치에 대한 수동성과 능동성_이윤호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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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적 통치에 대한 수동성과 능동성

<이윤호 장로, 선교와비평’ 발행인>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관망적 태도가 문제”

124문> 셋째 간구는 무엇입니까?
답>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로, 이러한 간구입
니다. “우리와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뜻을 버리고, 유일하게 선하신 주
님의 뜻에 불평 없이 순종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각 사람이 자신의 직분
과 소명을 하늘의 천사처럼 즐거이 그리고 충성스럽게 수행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나라의 임재를 향한 기도는 그 나라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간구로 이어집니다. 하나님 나라는 결코 이 땅 사람의 뜻이 반영되
는 곳이 아니라는 고백적 기도입니다. 아무리 고귀한 사람의 마음에서 나온 
뜻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이 나라는 통치자이신 주님의 뜻만이 온전히 실
현되는 곳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통치 구현되는 나라

그렇다면 이 나라에 
속한 백성들은 자신의 뜻을 주장하는 대신 하나님의 통
치를 목격하며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나라의 백성들이 구경꾼
으로 멀찍이 물러나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주어진 소명을 충
성스럽게 수행함으로써 하나님의 통치에 기꺼이 참여하도록 요구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빈번히 만나온 난제(難題)들 중 하나는 수동성과 능동성의 문제입니
다. 실례로 성경의 저작이나 성도의 성화(聖化)와 같은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성경의 영감에 있어서 기록자는 절대적으로 수동적이었습니다. 성경 전체가 
예외 없이 성령 하나님으로부터 감동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성경기록
자는 또한 능동적이었습니다. 그들 각자의 다양한 인격적 특성들이 배제되
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수동성만을 지나치게 강조할 때 인격적으로 다가오시는 성령 하나님의 간섭
을 소홀히 여기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능동성만을 지나치게 강조할 때 성
령 하나님의 간섭범위가 점점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정도가 심해진다면 하
나님의 특별계시 자체를 부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성화(聖化)를 이해하는 방식도 이러한 경우입니
다. 성경은 성도의 신앙을 선
한 곳으로 끝까지 이끌어주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로 인하여 우리는 위로(慰勞) 가운데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서는 결코 실패하시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성도는 스스로를 
무의지(無意志) 상태로 내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적극적으
로 이루어나갈 것을 또한 명령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수동성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숙명주의(宿命主義)로 나아감으로 신앙의 활
력을 상실하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능동성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공로주의
(功勞主義)로 치달아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거나 신앙의 중심을 잃게 될 것
입니다. 어쩌면 수동성과 능동성을 동시에 생각하는 것은 모순율(矛盾律)로 
보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정통성 있는 교회는 이것의 조화를 고백
해 왔습니다.
이와 같은 조화는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간구하는 성도들에
게도 요청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 나라 통치자는 다름 아닌 주님 자신이시
므로 그 백성인 성도들은 철저히 수동적이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모
든 사고 방식은 묻히고 하나님의 
의지가 이 땅에 온전히 드러나기를 소망해
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부동(不動)의 자세를 취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나라의 백성은 왕의 통치에 능동적으로 참여해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
나님은 어떤 비인격적인 힘이나 에너지로서가 아니라 성도의 직분과 소명을 
통해 그의 뜻을 이루어 나가시기 때문입니다. 인격적인 교제를 원하시는 하
나님은 기계적인 통치방식을 사용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수동적 태도를 소홀히 함으로써 하나님의 뜻보다는 사
람의 바람이나 사회의 이념을 실현시키기에 급급했던 교회가 많이 있습니
다. 넘치는 열심이 올바른 향방을 잃어, 부흥의 본질을 상쇄(相殺)하기도 했
습니다. 이와는 반대로 능동성을 간과함으로써 역동성을 상실한 교회들도 있
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관념적으로 바랄 뿐, 주님이 주신 직분과 소명을 
충성스럽게 이행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개혁의 의지조차 상실한 채 말입니
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교회는, 오늘 우리가 소홀히 여기고 
있는 것이 무엇이며, 진력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반성적으로 살펴야 할 것입
니다
. 하나님의 통치에 관망적(觀望的) 태도를 취하며 주어진 직분에 나태하
지 않았는지, 혹은 교회를 위해 몸을 희생하면서도 하나님 앞에 자신을 포기
하는 일에 소홀하지 않았는지 말입니다. 
단, 우리가 소망하는 것은 양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적당한 절충적 상태가 아
닙니다. 오히려 온전한 상태입니다. 자신을 순전히 비울 때 온전히 역동적
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을 철저히 비워야

어쩌면 요리문답이 작성될 때에는 굳이 별도로 언급하지 않아도 되었을 법
한 것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가장 심혈을 기울여야 할 문제가 되어버렸
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찾아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