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주의 교회가 전투하는 방법_이윤호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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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62>

개혁주의 교회가 전투하는 방법

이윤호_’선교와 비평’ 발행인

“죄를 통해서 결코 선한 승리 얻을 수 없어”

105문> 제6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내가 이웃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그들을 미워하거나 해치거나 죽이지 않
기를 원하십니다. 나는 생각이나 말이나 몸짓으로 무엇보다도 행동으로 그리
해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을 시켜서 해도 안 되며, 오히려 모든 복수심을 
버려야 합니다.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해쳐서도 안 되고 부주의하게 위험
에 빠뜨려서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살인을 막기 위해서 국가는 또한 칼을 
가지고 있습니다.

106문> 그런데 이 계명은 살인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까?
답>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인을 금함으로써 살인의 뿌리가 되는 시기, 
증오, 분노, 복수심 등을 미워하시며, 이 모든 것들을 살인으로 여기신다고 
가르칩니다.

107문> 앞에서 말한 방식으로 우리 이웃을 죽이지 않으면, 그것으로 
이 계명
을 다 지킨 것입니까?
답>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기와 증오와 분노를 정죄하심으로써 우리가 
우리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여, 인내와 화평 온유와 자비와 친절을 보
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해악으로부터 보호하며, 심지어 원수에
게도 선을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 중 어떤 이들은 교회에 대해서 말하면서 그곳에서는 싸움이 끊
이질 않는다고 비난합니다. 사실상 교회의 크고 작은 다툼에 한두 번 연루되
어보지 않은 성도들도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다툼도 
있을 수 있어

때로는 그 정도가 심하여 성도 중 일부가 교회를 떠나는가 하면, 심지어 교
회가 둘로 나누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불신자들의 지적이 반드
시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성도가 싸운다는 사실 자체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닐 수 있습니
다. 왜냐하면 성경에서는 싸움을 하라는 명령을 여러 번 하고 있기 때문입니
다. 그 싸움은 그릇된 사상과 같은 무형의 대상을 향한 것일 수 있지만, 그
러한 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에 맞선 것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
에게 보내는 그의 서신에서 선한 싸움을 싸울 것을 거듭 당부
하고 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일생동안의 삶이 싸움의 연속이었
음을 회고하는 장면에서는 전투적 모습을 잃지 않는 교회의 정체성을 되새기
게 됩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방식은 우리의 상식과 같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
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리의 어느 산에서 제자들과 함께 계실 때, 세
상 끝날 까지 그의 교회와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이것
은 악한 무리가 교회 안으로 전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으시겠다는 약속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교회 안에 불순한 세력이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심으로써 그의 백성으
로 하여금 그들과 싸우도록 하셨습니다. 이 싸움에서 승리를 확신할 수 있
는 것은 교회를 내버려두지 않고 늘 함께 하실 것이라는 주님의 약속을 신뢰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교회는 선한 싸움을 피하지 않으며 두
려워하지도 않습니다. 
그렇지만 디모데에게 선한 싸움을 하도록 명령하셨던 바울은 아주 특별한 요
구 하나를 덧붙이고 있습니다. 말다툼과 변론을 피하라는 것이 바로 그것입
니다. 우리의 상
식으로는 이해하기 쉽지 않은 요구입니다. 말다툼이나 변론
은 싸움을 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거짓 가르침으로 교회를 혼란케 하는 자들과 맞선 다툼이나 논리
적 변론은 교회를 보호하는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일을 일삼는 자들에게서 사도 바울이 본 것은, 자신의 이성적 판단에 의존하
고 있는 모습과 사랑을 소유하지 않은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살인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 소극적인 
태도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살해하지 않고, 그것의 뿌리가 되는 미움
과 증오를 품지 않는 것이 일차적으로 이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렇지
만 한 걸음 더 나아가 상대가 비록 원수라 하더라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는 적극적 순종으로 그 계명을 지켰던 것입니다. 
사실 이 계명은 교회 밖에서는 오히려 실천하기 쉬운 것일지도 모르겠습니
다. 우리가 조금의 손해만 감수한다면 세상의 이웃을 관대히 대할 수 있고 
악을 선으로 갚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겪는 진정한 어려움은 교회 안에서 악한 세력을 만날 때입니다. 

히 전투하는 교회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개혁주의 교회에서 말입니다. 
성도들을 미혹하며 교회를 혼란하게 하는 거짓 무리들을 향해서 미움과 증오
하는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미움에서 비롯된 다툼은 우리 교회에 유익을 가져다 줄 수 없을 것
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랑을 요구하는 제6계명을 범하는 죄가 되며 죄
를 통해서는 결코 선한 승리를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전투하는 교회가 사용해야 할 무기와 그것을 사용하
는 방법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신뢰할 수 있는 그 무기는 바로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며 교회가 그것을 사용하는 방법은 온유한 가
르침과 온유한 징계로 싸우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승리는 계명에 
순종할 때 얻게 돼

악한 세력과의 싸움에서 온유한 마음으로 오직 말씀을 드러낸다는 것이 적절
하게 보이지 않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승리는 계명에 대한 순종의 결
과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