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했던 맹세를 기억하는가?_이윤호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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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59>

우리가 했던 맹세를 기억하는가?

“맹세 망각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 소홀히 하는 것”

이윤호_‘선교와 비평’ 발행인

101문>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으로 경건하게 맹세할 수는 있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국가가 국민에게 요구하는 경우, 혹은 하나님의 영광과 이
웃의 복을 위하여 신뢰와 진리를 보존하고 증진시키는 데 꼭 필요한 경우에
는 맹세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맹세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이며, 그
렇기에 구약과 신약의 성도들도 이것을 옳게 사용해 왔습니다.

102문> 성인이나 다른 피조물로도 맹세할 수 있습니까?
답> 아닙니다. 정당한 맹세는 오직 홀로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을 불
러, 진리에 대해 증인이 되어 주시며 내가 거짓으로 맹세할 때에 형벌하시기
를 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예는 어떤 피조물에게도 돌아갈 수 없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두 가지 측면에서 제3계명을 설명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이름을 거
짓으로 사용하는 것과 관련되고, 다른 하나는 그것을 합
당하게 사용하는 것에 관한 내용입니다. 

임직자서약은 하나님께 하는 것

첫 번째 부분은 하나님의 의가 아닌 것을 마치 그분이 기뻐하는 일인 양 여
기면서 실상은 자신의 생각과 의지를 실현하는 경우입니다. 이것은 거짓 증
거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으로써, 이미 앞서 살펴본 내용입
니다. 
그렇지만 모든 맹세가 불가한 것은 아닙니다.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맹세와 
서원은 진리를 보존하고 증진하는데 유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성도
가 국가의 공직에 취임할 때 그 직책에 대한 맹세를 할 것입니다. 이것은 국
가가 요구하는 경우입니다. 
만약 그것이 하나님의 생각과 배치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합당한 맹세이며, 
맹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눈가림이 아니라 성실함으로 실천해야 할 것입니
다.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에게 하듯 하라는 사도 바울의 말
씀을 가슴에 둔 태도로 말입니다. 
물론 국가나 사회가 요구하는 맹세가 하나님의 뜻과 마찰을 일으킨다면 마땅
히 거절해야 할 것입니다. 국가와 사회 가운데 교회의 모습을 올바로 드
러내
는 것이 맹세를 하고 그것을 이행하는 궁극적인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회에서의 맹세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요소입니다. 예컨대 유아세
례나 목사의 임직과 같은 예식은 합당한 맹세 없이는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
니다. 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베풀 때 부모는 맹세합니다. 그것의 내용은 자녀
를 하나님께 완전히 바칠 것,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칠 것, 그리고 
아이 앞에서 경건한 믿음과 행위의 본을 보일 것 등을 포함합니다. 
이 서약은 목사의 묻는 말에 부모가 대답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렇
지만 부모는 목사에게 서약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하는 것입니다. 
이 서약을 뒤따르는 목사의 공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에 그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목사는 임직예식에서 맹세를 합니다. 그 내용은 신구약 성경에 대한 절
대적 신앙,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및 대·소요리문답을 성경의 교훈과 부
합하는 것으로 믿고 그것들을 따를 것, 교회정치와 권징조례 및 예배모범을 
따를 것 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맹세는 노회장 앞에서 선서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렇지만 이 역

시 노회장에게 맹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는 것입니다. 이 원칙은 근
본적으로 장로와 집사에게도 해당합니다. 이와 같은 합당한 맹세는 교회가 
진리를 보존하고 그것을 상속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합당한 맹세는 반드시 수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맹세한 내
용을 성실히 지키는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 또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
다. 하나님의 이름을 경외하지 않는 거짓 맹세일 따름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자녀를 완전히 하나님께 바치기로 맹세한 부모가, 자신의 바람과 사
회적 기준대로 자녀를 양육하는 경우가 없지 않을 것입니다. 자녀에게 하나
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칠 것을 맹세한 부모가 학교의 공부를 더 중요하
게 생각해서 하나님의 말씀 가르치기를 게을리 하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입
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했던 맹세를 어기는 것이 되며, 결국 거짓 맹세
가 되는 것입니다.
목사를 비롯한 직분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컨대 그들은 이미 하나님
의 이름 앞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대·
소요리 문답을 따를 것을 맹세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목사가 그 속에 담긴 내용을 잘 모른다
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아니면 내용을 알더라도 그것을 성실하게 따르지 않는
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이것은 바로 임직식 때 하나님 앞에서 행했던 맹세
를 저버림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을 경솔히 여기는 우를 범한 것입니다. 
온갖 거짓 맹세가 성행하는 시대에 우리 개혁주의 교회에 합당한 맹세가 허
락된 것은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세
상 가운데 빛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게 하며, 교회로 하여금 진리를 보존하
고 전수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보존과 전수에 힘써야

그렇지만 이러한 유익은 성실한 이행이 뒤따를 때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는 하나님을 증인으로 모시고 교회 가운데서 했던 합당한 맹세
의 내용들을 망각한 채 살고 있지는 않은지 두려운 마음으로 살펴야겠습니
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경솔히 여기는 죄이기 때문입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