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떡으로 연합됨_이윤호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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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47>

한 떡으로 연합됨

이윤호 장로_‘선교와 비평’ 발행인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하는 연합의식 갖춰야”

76문>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몸을 먹고 그의 흘리신 피를 마신다는 것
은 무슨 뜻입니까?
답> 그것은 믿는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모든 고난과 죽음을 받아들이고 이로
써 죄 사함과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며, 나아가서 그리스도 안에 또한 우
리 안에 거하시는 성신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그리스도의 거룩한 몸에 더욱
더 연합됨을 의미합니다. 비록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시고 우리는 땅에 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의 살 중의 살이요 그의 뼈 중의 뼈”이며, 마치 우리 
몸의 지체들이 한 영혼에 의해 살고 다스림을 받는 것처럼, 우리도 한 성신
에 의해서 영원히 살고 다스림을 받습니다.

77문> 믿는 자들이 이 뗀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시는 것처럼 확실히, 그리스
도께서 그들을 그의 몸과 피로 먹이고 마시우겠다는 약속을 어디에서 하셨습
니까?
답> 성찬을 제
정하실 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
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
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
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3-26). 바울 사도는 거듭 
이 약속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
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
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
라”(고전10:16-17).

초대교회의 예배는 성찬과 더불어 진행되었습니다. 그들이 모여 떡을 떼었다
는 성경의 표현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흔하
디 흔한 떡에 비유한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유월절에 사용하던 양고기나 사
람들이 귀히 여기는 특별한 음식에 비유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성찬과 더불어 시작된 예배

그렇지만 성
찬의 떡은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의 원동력이 무엇인지 보
여주고 있습니다. 음식을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우리
는 그리스도의 죽으신 몸을 양식으로 삼지 않고는 한순간도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없음을 기억합니다. 사람은 자율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도 때에 따라 떡을 떼는 예식을 행합니다. 교회에 따
라 떡을 나누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가장 일반적으로는 부드러운 빵을 미리 
잘게 썰어놓고 한 사람씩 조각난 빵을 집어먹습니다. 우리와 신학적 차이가 
있는 가톨릭의 경우는 무교병을 납작한 모양으로 만들어 성찬에 사용합니
다. 그리고 어떤 교회에서는 나누어지지 않은 한 덩어리의 빵을 성도 각자
가 직접 떼어먹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이 중 맨 마지막의 방법은 여러 개가 아닌 하나의 떡이 가지는 의미를 선명
하게 드러낸다는 유익이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에 따라 다양한 방법이 사용
될 수 있지만 하나의 떡에서 떼어지는 의미는 살아있어야 할 것입니다. 한 
떡에서 여러 부분으로 떼어지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먹는 사람들도 하나의 공
동체를 이루게 되는 것이 교회
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는 떡을 떼고 잔을 나누는 예식의 의미를 두 성경
구절을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모두 고린도교회에 대한 사도 바울의 권면
입니다. 그 중 하나의 배경을 이루는 것은 교회의 분열이었습니다. 어떤 사
람들이 음식을 먼저 가져다 먹음으로 인해 하나 된 공동체로서의 모습을 드
러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태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전하는 성찬의 
의미와 조화되지 않았습니다. 동일한 떡을 나누는 성도는 동일한 메시지 안
에서 연합해야할 책임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또 다른 구절에서 한 떡에 참여하는 성찬의 의미를 말씀하고 있습니
다. 이 권면은 우상숭배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찬을 통해 이루어야 
할 한 몸에 대한 속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의 상을 말씀하는 사도 바울
은 귀신의 상을 또한 언급합니다. 주의 상과 귀신의 상을 서로 겸하여 참여
해서는 안 됨을 마음에 새기도록 강권합니다. 
성찬을 통해서 우리가 한 몸을 이루어야 한다는 소중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렇지만 그 하나 됨이란 귀신의 상에 참여하는 세상 사람들이 도무지 이해
하지 못할 연합
입니다. 왜냐하면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신 몸에 참여함
으로써 하나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치 그 자체에 의
미가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올바른 말씀을 소유할 때 한 떡을 떼는 연합
함의 의미가 살아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귀신의 상을 멀리하고 주의 상에 참여하는 것이 세상에 등을 
돌리는 의미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복음을 가감 없이 세상에 증거 하
여 그들을 주의 상에 초대하는 것입니다. 

한 몸의 연합의식 가져야

가장 보편적인 음식에 자신의 몸을 비유하신 주님께서 그의 피에 대해서는 
일상의 음료인 물 대신에 잔치에 사용되는 포도주에 비유하셨습니다. 한 떡
에 속한 공동체에 초대된 사람은 이제 그리스도의 법 안에서 잔치의 기쁨을 
맛보며, 앞으로 있을 더 큰 잔치를 기다리는 복됨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