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평생동안 세례를 잘 사용해야 할 의무_이윤호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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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44>

일평생동안 세례를 잘 사용해야 할 의무

이윤호 장로_’선교와 비평’발행인

72문> 세례의 물로 씻음이 곧 죄 씻음 자체입니까?
답>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성신만이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
끗하게 합니다.

73문> 그러면 왜 성신께서는 세례를 “중생의 씻음”과 “죄를 씻음”이라 
하셨습니까?
답>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서는 몸의 더러운 것이 물로 씻겨 지듯이 우리의 죄가 그리스도의 피와 성신
으로 없어짐을 우리에게 가르치려 하셨습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의 죄가 영
적으로 씻겨 지는 것이 우리의 몸이 물로 씻겨 지는 것처럼 매우 실제적임
을 이러한 신적 약속과 표로써 우리에게 확신시키려 하셨습니다.

“세례는 신자의 삶에 역동적 효력 나타내어야”

오늘날 우리는 각자가 속해있는 교회에 대해서 무엇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
지 한 번 생각해 봅니다. 여러 가지
가 있을 수 있겠지만, ‘세례교인의 수’
가 그 교회의 가장 큰 자랑거리 중 하나로 여겨질 것 같습니다. 그 숫자는 
곧 교회의 규모를 의미하고 그 규모는 또한 교회의 부흥을 나타내는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자랑은 숫자와 무관해

교회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입교한 성도들이 세례 받은 자로서 얼마나 합
당한 삶을 사는가 하는 것보다는 세례 받은 사람의 수가 얼마나 되는가에 
더 큰 관심을 가지는 것이 어느 정도는 일반화된 경향인 것 같습니다. 
군부대나 기독교학교에서 행해지는 집단 세례는 이것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
인 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세례 받는 그 때를 신비로
운 역사가 일어나는 특별한 순간으로 생각하고 그 날 자체에 큰 의의를 두
는 것 같습니다. 
이와 맥락을 같이하는 생각이 고대 교회 때부터 있어왔는데 당시 적지 않은 
교회 지도자들은 세례 받는 때가 곧 중생을 경험하는 순간이라고 생각했습니
다. 이것은 세례의 물로 씻음이 곧 죄 씻음 자체라는 생각에 근거하고 있습
니다. 이러한 생각에서 비롯된 문제 중 하나는 임종시의 세례에 관한 것입니
다. 
복음을 
알게 되었지만 미처 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에게 갑자기 죽음이 다가
왔을 때 누구든지 그에게 세례를 베풀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세례의 
물이 곧 죄 씻음을 의미한다면 그곳에 있는 어느 누구라도 죽음에 임박한 
그 사람에게 속히 세례를 베푸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겨질 것입니다. 고대교
회의 여러 교부들에 의해 가르쳐진 이러한 생각은 로마 카톨릭 교회를 거쳐 
오늘에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이러한 생각에 반대합니다. 왜냐하면 세례 시에 사
용되는 물 자체가 신비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례를 
통해서 우리의 죄가 직접 씻겨 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영혼의 죄가 예수 그
리스도와 성신을 통해 씻겨 진다는 사실을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확실히 바
라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단지 상징일 뿐 아무런 실제적 효력이 없다는 것은 결코 아닙
니다. 실제로 세례의 상징성에만 치중하는 주장 때문에, 또 다른 방향으로 
세례의 본질이 왜곡되고 그것의 역동적 의미가 희석되는 현상이 나타났던 것
이 사실입니다. 
세례는 우리가 죄 씻음을 통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
이 단지 관념
적인 사실이 아니라 아주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사실임을 확증하는 것입니
다. 그러므로 세례의 의미가 교회를 통하여 올바로 선언된다면 그것이 성도
들의 삶에 역동적인 효력을 발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성도 각자는 세례를 일평생동안 합당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의 가르침은 참으로 의미 깊은 것입니다(167문). 이
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몸에 지닌 할례를 근거로 스스로를 아브라함의 자손
이라 했습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의 뜻을 알지도 따라 행하지도 않는 그들
은 예수님의 눈에는 그들의 조상과 전혀 관계없는 사람들로 보였습니다. 
우리가 세례 받은 날과 시를 기억하고 그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하더라도 그
것에 합당한 행실이 삶 속에서 드러나지 않는다면, 세례가 우리 가운데 올바
로 시행되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신을 통해 죄 씻음을 받은 자는 
또한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죄에 대해 절제하고 하나님이 옳다고 말씀하시
는 것을 분별하고 순종하는 삶을 추구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세례 때의 물은 그 자체가 신비한 능력을 가진 물질이 아니라 영
적 죄 씻음
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그렇지만 교회에서 그 의미가 올바로 
선언될 때, 그 물은 모든 것을 휩쓸어 가는 강물이나 홍수와 같은 큰 효력
을 지니는 실제적인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는 일 년에 한 차례 혹은 여러 차례 세례식을 통해서 새로운 성도
를 맞이합니다. 우리는 그들을 향하여 축하의 인사를 건넬 뿐 아니라, 그 시
선을 우리 자신에게 돌려 세례 받은 성도로서 합당한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 
끊임없이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세례에 합당한 삶 살아야

‘세례교인의 수’를 자랑하는 교회는 성도들이 그에 합당한 삶을 살도록 서
로 살펴야 하는 보다 큰 책임을 지고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