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는가?_이윤호 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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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25>

교회에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나는가?

이윤호 장로_‘선교와 비평’ 발행인

40문> 그리스도는 왜 ‘죽으시기’까지 낮아져야 했습니까?
답> 하나님의 공의와 진리 때문에 우리의 죄값은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 이외
에는 달리 치를 길이 없습니다.

41문> 그리스도는 왜 ‘장사’되셨습니까?
답> 그리스도의 장사되심은 그가 진정으로 죽으셨음을 확증합니다.

인터넷을 통해 몇 장의 사진이 소개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눈을 떼
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진 속에 나타나는 주인공은 많은 사람들을 뒤로
한 채, 무척이나 무거워 보이는 십자가를 어깨에 짊어지고 걸어가고 있었습
니다. 그 모습이 무척 힘들어 보이면서도 진지해 보였습니다. 

진지하게 보이는 십자가 짊어진 사람

그 뒤에 따라 나오는 사진은 보는 이로 하여금 멈칫하게 했습니다. 군집한 
군중들 앞에서 몇몇 사람들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
니라 그들의 손에는 실
제로 못이 박혀 있었습니다. 한 카톨릭 국가에서 고
난 주간을 맞아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하는 행사의 일부였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고통과 죽음을 기억하며 그리스도가 주신 사랑과 겸손의 
교훈을 되새기는 한 방법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방법은 아니지만 우리 역시 여러 모양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
억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아마 성도들을 가장 감격하게 하는 사건일 것
입니다. 우리를 위해서 고난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우
리는 눈물을 흘리곤 합니다. 교회에서 부르는 찬송에도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을 고백하는 내용이 많아서, 찬송 중에 다 함께 그것을 기억합니다. 
고난주간이 되어 많은 성도들이 특별히 금식을 하는 것 역시 예수님이 죽음
으로 보여주신 무한한 사랑에 대하여 감사하며 그분이 겪으셨던 고난을 기억
하는 기회로 삼기 위함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모양으로 그리스도의 죽으심
을 기억함으로써 우리가 깨닫는 것은 바로 그분의 사랑과 겸손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해서 조금은 다
른 곳에 한 차례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그 
강조점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죽으셔야만 했던 이유를 묻는데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물음에 대
한 답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의 죽음은 바로 하나님의 공의 때문이라는 것
이 그들의 고백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물론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
신 사건이지만, 이와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가 드러난 사건임을 성도들은 기
억해야 함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공의는 하나님의 성품과 섭리와 묶여있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죄에 
대해서 진노하시고 저주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태생적으
로 죄 가운데 태어날 수밖에 없는 그의 백성들을 거룩하신 섭리 속에서 구원
하시는 것을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를 위해서 스스로 선한 계획을 세
우시고 이를 성실하게 이루어 나가시는 의로운 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의 죽으
심은 바로 자신의 계획하심과 약속대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공의가 가장 분
명하게 드러난 사건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의 특별
한 공의를 통해서 그분의 사랑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억합니다. 그리스도의 고통을 
직접 체험하려
는 사람들이 있고, 금식을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 의미를 엄
숙하게 상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모든 노력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
이 몸소 실천하신 사랑과 겸손을 배웁니다. 뿐만 아니라 성도들은 그 사랑
과 겸손을 교회 안과 밖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에 아
무리 열심을 낸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작정하신 의로운 뜻을 헤아리지 않는다
면 공허한 노력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과 겸손, 이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의 공의 위에서 나타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며, 그분의 공의도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교회
가 하나님의 뜻을 외면함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가리는 실수를 범할 수 있습
니다. 구약의 교회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로 이러한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메시아의 도래를 통한 구원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의 의, 즉 그분의 계획하심과 뜻을 알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 나름
대로의 신앙생활은 열심이었고 활기가 있었지만, 그들이 간직한 메시아의 의
미는 이미 왜곡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한 왜곡된 신앙

그리
스도의 대속적 죽음 위에 서 있는 교회가 하나님의 뜻 대신에 이 땅의 
원리에 따른 부흥을 꿈꾼다면 이와 같은 경우일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를 일
컬어 하박국 선지자는 공의가 전혀 시행되지 않은 언약 백성이라 했습니다
(합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