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 더했을 뿐이지만_이윤호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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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델베르크<19>

하나 더했을 뿐이지만

이윤호 집사_’선교와비평’발행인

29문> 왜 하나님의 아들을 예수, 곧 구주라 부릅니까?
답> 그가 우리를 우리 죄에서 구원하시기 때문이고, 또 그분 외에는 어디에
서도 구원을 찾아서도 안 되며 발견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30문> 그렇다면 자신의 구원과 복을 소위 성인에게서, 혹은 자기 자신이나 
다른 데서 찾는 사람들도 유일한 구주이신 예수를 믿는 것입니까?
답> 아닙니다. 그들은 유일한 구주이신 예수를 말로는 자랑하지만 행위로
는 부인합니다. 예수가 완전한 구주가 아니든지, 아니면 참된 믿음으로 이 
구주를 영접한 자들이 그들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그에게서 찾든지 둘 
중의 하나만 사실입니다.

바울 일행이 구브로와 소아시아 남부지역 선교여행을 마치고 파송 교회인 
안디옥교회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믿음의 형제들과 
얼마간의 시간을 보내었을 때 유대로부터 어떤 사람들이 안디옥으로 와서 형

제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들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
원을 얻지 못할 것이라 가르쳤습니다(행 15:1).

복음과 할례 동반할 수 없어

이들은 예루살렘교회에 속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예루살렘
의 사도들과 장로들이 그들을 가리켜 ‘우리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라 말하
고 있기 때문입니다(행 15:24). 바울과 바나바가 이들로 인해 발생한 다툼으
로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때 그리스도를 믿는 바리새파 중에서 그들과 동일
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행 15:5), 지금 안디옥에 올라와 할례를 
가르치는 자들은 이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시의 유대인들을 편의상 세 부류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그리스도를 거부했던 유대교에 충실한 유대인들입니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主)로 믿어 새 시대 교회의 정체성을 올바로 인
식하던 유대인들입니다. 
셋째는 새 시대의 교회에 속해 있으나 유대교적 관습을 여전히 지니고 있던 
유대인들입니다. 바울의 전도여행 중 루스드라에서 돌로 바울을 쳤던 사람들
은 첫 번째 부류의 유대인들이며, 안디옥에 올라
와 이방인 신자들에게 할례
를 강요하는 사람들은 바로 세 번째 부류의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이 세 번째 부류의 유대인들은 그리스도의 주(主)되심을 거부하던 사람들
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구속 사역을 고백하고 믿었던 사람들이었
을 것입니다. 그들이 주장한 것은 단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할례를 받아
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그리스도를 부정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다
른 하나를 덧붙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에 대한 사도의 평가는 가혹했습니다. 그들을 일컬어 
불필요한 것을 강조하는 사람이라 하지 않고 ‘거짓 형제’(갈 2:4)라고 부
르고 있는 것을 보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구원에 관하여 오직 그리스도
만이 아니라 다른 것을 덧붙였을 때, 그들의 가르침 중 일부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들이 믿고 있는 전체가 잘못되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즉 그들의 
그리스도에 대한 고백은 옳고 할례에 대한 주장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리
스도에 대한 고백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는 이를 선명하게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이러
한 유의 사람들에 대해 ‘유일한 
구주이신 예수를 말로는 자랑하지만 행위로
는 부인하는 자들’이라 규정하고 있습니다(30문). 
종교개혁 당시 부패한 교회는 그리스도 외에 다른 것을 덧붙였습니다. 교황
에 대한 절대적 충성이 그러하고, 교회의 규례에 대한 절대화도 그러합니
다. 심지어 면죄부까지 그러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개혁가들은 이
러한 것들은 관행의 문제가 아니라 진리의 문제로 인식했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건져낼 구원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습니다. 그리
고 그것에 다른 것을 덧붙인다면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자체가 거짓인 것입
니다. 오늘 우리를 잘 돌아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인가, 아니
면 그리스도에 다른 무엇인가를 덧붙이고 있는가? 그것이 열심일 수도 있고 
관습이나 제도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열심’으로 대신할 수 없어

만약 교회가 그리스도 외에 우리를 죄로부터 벗어나게 할 다른 무엇을 함께 
추구하고 있다면 그것은 연약한 교회가 아니라 거짓교회일 수 있다는 것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29문과 30문의 교훈입니다.